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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일본의 공무역과 사무역에 대한 고찰 = A Study on the Public Trade and Private Trade of Japan in the 8th Century
저자
발행기관
계명대학교 국제학연구소(THE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KEIMYUNG UNIVERSITY)
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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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20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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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3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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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k-il-bon-gi』, which records the history of the Nara era in the 8th century, shows that more exchanges were made between Silla and Japan in this period than any other era. Most of the exchanges were unilateral from Silla to Japan. The two countries had a friendly relationship with external factors for a while in the early 8th century, but since the 830s, when external factors disappeared, they had returned each other’s public delegations and showed sharp political and diplomatic confrontations. On the other hand, it was also a time when Silla people actively developed trade in Japan. Of course, it goes without saying that this was because the royal family and nobles, who were Japanese ruling leaders at that time, desperately needed Silla's exchanging trade goods.
Therefore, the trade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e 8th century (Nara era)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Japanese ruling class in the Nara period recognized Silla and Balhae as countries of the prosperity. However, this was because the Japanese ruling class was caught up in the ideology of the statute law and they embellished for their benefit, so the Silla ruling class did not accept it. Rather, Taeryeom Kim's public delegation in 752 conducted diplomacy with Japan an example of a higher country than Japan.
Second, the Silla ruling class started to develop public trade by dispatching a large-scale public delegation from the mid 730s, based on the tribute trade system, which was learned from the (China) Tang dynasty. The typical example was the 700 people-consisted public delegation visit of Silla prince, Taeryeom Kim, in 752.
Third, it is considered that the private trade in Japan actually began from 750s, when Silla merchants crossed over to Dazaifu. An article, in which the Japanese ruling class purchased a large amount of Silla exchanging trade items by using the officials of Dazaifu, tells it well. In the 9th century, the officials and barons of Dazaihu engaged in trade activities independently with Silla merchants.
Fourth, since the 750s, the distribution system had been formed as Silla people constantly crossed over to Dazaihu. And Silla merchants had gradually resided in Dazaihu. These 'immigrated Silla people' became core members of the huge East-Asian trade area centered on Bogo Jang in the early 9th century along with the maritime forces of the 'immigrated (China) Tang people' on the south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As such, since the trade area centered on the private trade were formed around Dazaihu from the mid 8th century, such an international maritime trader as Bogo Jang appeared in the early 9th century.
8세기 나라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속일본기를 통해 신라와 일본 간에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교류가 이워졌다. 다만 그 교류는 대부분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일방적인 형태였다. 양국은 8세기 초기에 잠시 대외적인 요인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보였으나, 830년대부터 대외적인 요인이 사라지자 서로의 공적사절단을 돌려보내는 등, 정치외교적으로 첨예한 대립관계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일본에서 교역을 활발하게 전개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지배층인 황족과 귀족들이 신라의 교관물(무역품)을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8세기 양국의 교역 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나라시대 일본지배층은 신라와 발해를 번국으로 인식하였다. 이것은 일본지배층이 율령법의 이념에 사로잡혀 관련기사를 윤색한 것이므로 신라지배층은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752년의 김태렴의 공적사절단은 일본보다 상위 국가로서의 예를 갖추어 일본과 외교를 진행하였다. 둘째, 신라지배층은 당에게 배운 조공무역을 기반으로 하여 73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공적사절단을 파견하여 공무역을 전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752년 700여명의 공적사절단으로 구성된 신라왕자 김태렴의 방일이다. 셋째, 일본에서의 사무역은 신라상인들이 7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다자이후에 건너오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768년에 일본지배층이 다자이후의 관리들을 이용하여 신라 교관물(무역품)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기사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9세기에 들어서면 이제 다자이후의 관리들과 호족들도 신라상인과 독자적으로 교역활동을 벌이게 된다. 넷째, 750년대 이후 신라인들이 다자이후로 끊임없이 건너오면서 유통시스템이 형성되었고 점차 신라상인들도 다자이후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들 '재일신라인'은 이후 '재당신라인', 그리고 한반도 남해안의 해상세력 등과 함께 9세기 초기에 장보고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동아시아 교역권의 핵심 멤버를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8세기 중엽부터 사무역을 중심으로 한 교역권이 다자이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9세기 초기에 장보고와 같은 국제적인 해상 무역가도 출현하게 된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4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2-01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URNAL OF INTERNATIONAL SYUDIES -> JOURNAL OF INTERNATIONAL STUDIES | KCI등재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20-02-10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 The Keimyung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 KCI후보 |
201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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