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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延吉敎區의 가톨릭 운동-靑年會를 중심으로- = Catholic Action of the Diocese of Yenki under Japanese Imperial Rule -Focusiong on youth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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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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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266(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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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gregation of the Missionary Benedictines of St. Ottilien had been managing the Hamhung region of the Apostolic Vicar of Wonsan since 1920. Then from the year 1922, it included the Manchuria and Ilan region. Its first goal was to lead the Korean faithful who lived in this region. Rather, these activities have been initiated since 1928 when the Apostolic Prefect of Yenki was divided over the Apostolic Vicar of Wonsan, and developed since this Apostolic Prefect took charge of the Kando region. The period that carried out activities like the individual Diocese is only 18 years, since their central abbey: the Abbey of St.
Cross was closed by the Communist government of China- Manchuria in 1946. But at that t im e the size o f their m issionary f ield w as t he s econd largest of the Congregation of the Missionary Benedictines of St. Ottilien.
This diocese developed continuously from 1929, the percentage of evangelization in the Kando region in 1939 was 1.74%. It was the strongest of seven Korean dioceses. During this period, the Benedictines chose the way of indirect evangelization. The Benedictine monks chose the indirect way of evangelization during this period, which included the construction of the buildings around their abbey, which was the base of their activities, the education project, the charity work, the medical services and the publishing project, etc. The Benedictine monastery was the most popular in the country. This project of Culture targeted the faithful and also the pagans.
At the same time, this diocese introduced and deployed the Catholic Action so that their faithful would be united in the face of the anti-communists and counter-Catholicism. It wanted to develop the project of evangelization by educating especially the young. This diocese is particularly interested in young people over the age of 17. And it wanted to organize a youth association. This began with the Korean Catholic Church's understanding that this association is at the centre between the state and society. For this movement, he organized the study of doctrine and the conference on Catholicism. It has also launched the struggle against illiteracy with their Culture Project. Yenki's Benedictine activities, including indirect and direct evangelization, have helped to broaden the influence of a religion and also to modernize the local societies of Machuria.
독일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회는 1920년에 설정된 元山代牧區를 위임받아 함경남북도를 관할하다가, 1922년부터 滿洲와 依蘭지역까지를 관할하게 되었는데 이 지역에거주하는 조선인 신자들의 사목을 담당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었다. 그러나 조선인공동체 대상의 본격적인 사목이 이루어진 것은 1928년에 延吉知牧區가 원산대목구로부터 분립되어 間島지역을 관할한 이후부터였다.
연길지목구(즉, 延吉敎區)가 독립된 교구로서 활동한 기간은 1946년 이후 중국-만주공산정권이 간도지역을 통치하게 되면서 이 교구의 중심수도원인 聖十字架修道院이폐쇄되기 전까지 18년 정도였으나, 당시 독일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회에서 두 번째로 큰 선교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이 교구는 1929년대부터 敎勢가 꾸준히 확장되는양상을 보이는데, 1939년도 간도지역의 복음화율은 1,74%로 당시 全朝鮮7敎區 중에서가장 교세가 큰 교구였다.
이 과정에서 연길교구는 그들 선교지의 상황과 특성을 고려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곧 선교사들의 활동거점이 되는 수도원 중심의 건축물 건립, 교육사업, 의료 및 자선사업, 전례서와 교리서를 비롯한 정기간행물 발간의 출판사업 등 이러한 문화 사업을 천주교 신자는 물론 외교인까지를 대상으로 전개하였다. 동시에 연길교구는 가톨릭 운동을 추진하여 당시 공산주의 세력의 주도로 확산된 반가톨릭주의와 물리적폭력이 난무하던 상황 속에서 신자들 간의 결속과 연대를 도모하고, 나아가 이들을 교육시켜서 적극적인 전교 사업을 펼치고자하였다.
특이할 만한 것은 17세 이상의 청년신자들 중심의 청년회를 조직하여 활성화시킨것인데, 이는 당시 조선 천주교회가 청년회를 국가와 사회활동의 중심이 되는 단체라고 인식한 데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이 운동을 위하여 교리연구와 강연회를 열었고, 문맹 퇴치 운동과 자선 사업 등을 함께 추진하였다. 연길교구의 이러한 선교 사업은 교세의 확장은 물론 만주의 조선인 지역사회의 근대화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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