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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직물의 역사적 재고(再考)와 소창의 가능성 = Reconsideration on the History of Ganghwa County Fabric and valuation of So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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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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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강화는 직물로 유명한 고장이었다. 강화는 역사적 질곡을 겪으면서도 ‘직물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공고히 하였으나, 국가의 경제개발 정책과 값싼 직물의 등장, 환경문제 등으로 인해 여러 종류의 직물들은 점차 소실되었으며, 이에 따라 직물 산업은 쇠락하였다. 그 결과 현재 직물 중 소창을 생산하는 공장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실정이다.
때마침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19년 인천 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소창’을 선정하여 조사·연구했다. 1년 동안 소창의 직조과정과 직기, 소창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연구 내용이었다. 조사 및 연구를 통해 소창의 가치를 조명하는 성과를 냈었지만, 강화가 타 지역에 비해 직물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게다가 사료 또한 충분치 않아 연구의 다양성이나 전문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직물과 관련하여 다양한 각도로 방대한 양의 연구가 축적된 데 비해, 강화지역의 직물 연구는 매우 소략하다.
현재 강화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소창 공장은 강화 직물이 처한, 소외된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 소외된 강화 직물, 특히 소창에 주목하고자 한다. 강화 직물의 등장 배경과 역사적 발전 및 쇠퇴과정을 살펴보면서, 강화지역에서 직물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원인 및 요인을 고찰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재 강화 직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소창의 역사적 가치를 재고하였으며, 해방이후 쇠락한 직물 산업의 현실을 직시하는 의미로 소창 공장의 운영 현실을 두루 조망하는 한편, 소창의 경제적 효용성에 입각하여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우리나라 직물업의 종사자는 주로 부녀자들이었다. 일종의 부업으로 겸했기 때문에, 각 가정에 족답기 한 대씩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편 러일전쟁 직후 조선에 대한 독점권을 장악한 일본은 부녀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생산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각 지역마다 농업모범장과 공업전습소를 설치하는 등 경제구조를 개편하였다. 만주사변 이후 일본은 지리적으로 근접한 조선을 본격적인 투자대상으로 삼았다. 강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강화는 1910년대부터 직물 산업의 중심지로 주목을 받았다. 가내수공업 위주로 직물을 생산했던 강화는, 지역유지 황우천(黃祐天)과 김동식(金東植)의 노력으로 기계식 직기를 들여오며 획기적인 전환을 맞았다. 기계식 직기의 도입 및 기술 향상으로 강화에는 조합과 공장이 설립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공업화되었다. 강화에서는 견직, 인견, 마포, 소창 등 다양한 직물들을 생산하는데 일조했다. 인견직은 가격이 저렴하고 광택과 감촉이 좋아 인기가 많았다. 마직물의 경우 강화산업조합에서 장려하여 활성화시킨 직물이었다. 소창은 무명이라고도 불렸는데, 당시 직물들 중에서 고급 면사에 속했다. 인견직이나 마직물 등은 나일론이나 중국산 직물 등으로 대체되었지만, 소창은 우수한 품질과 기능성으로 인해 아직까지 유일하게 생산되는 직물이다. 소창의 생산연도와 기원은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기록을 참조했을 때 일본의 면직물인 ‘고쿠라오리(小倉織, ゴクラオリ)’가 우리말의 ‘소창’으로 대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직물 산업이 강화에서 유독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강화 부녀자들의 정교함과 꼼꼼한 손재주와 풍부한 노동력, ...
Ganghwa County has long been well-known for textiles. Ganghwa once consolidated its reputation as ‘the home of the textiles’ despite its historical hardships. Due to the national economic development policy, however, the emergence of cheap textiles and the environmental problems, various kinds of textiles gradually disappeared, and thus the textile industry declined accordingly. Consequently, only the factory that once produced sochang (cotton fabrics) among the textiles now remains.
Fortunately, as part of its ‘2019 Incheon Folk Culture Year’ project,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chose ‘sochang’ and conducted research. The one-year research includes weaving process, weaving loom, and the stories of the weavers. Though the investigation and research shed light on the value of sochang, the definite answer for its cause on how Ganghwa textile industry was developed further compared to other regions was not clarified. Also, limitations existed in the diversity and professionalism of the research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records. Even in relation to textiles, a vast amount of research has been accumulated from various angles, whereas the textile research of Ganghwa had been neglected.
Currently, the few remains of the sochang factory proves the marginalized reality of Ganghwa textiles. This text concentrates on the marginalized Ganghwa textiles, especially sochang. Through a closer look at the background of the emergence, the historical development, decline of Ganghwa textiles, the cause and the factors have been contemplated carefully as to how the development of the textile industry was possible in Ganghwa of all places. In the process, the historical value of sochang, the only remaining Ganghwa textile, was reconsidered. Also, the operational reality of the sochang factory was widely reviewed in a sense of facing the reality of the declining textile industry after liberation. Solution was also sought based on creative economic utility.
The workers in the textile industry of Korea were mainly women. As it was seen as a side job, each family owned a step-powered weaving machine. Meanwhile, Japan, which had taken exclusive control over the Joseon dynasty immediately after the Russo-Japanese War, reorganized the economic structure by setting up agricultural model farms and industrial training centers in each region to exploit the labor force of women and to expand its production base. Since the Manchurian Incident, Japan chose to fully invest in Joseon, a geographically close country, and Ganghwa was no exception.
Ganghwa drew attention as the center of the textile industry since the 1910s. The region originally produced textiles through the domestic industry but marked a breakthrough by bringing in mechanical textiles through the efforts of the community leaders Hwang Woo-Cheon and Kim Dong-Sik. It helped produce a variety of fabrics, including silk, artificial silk, linen cloth, and sochang. Artificial silk was popular due to its low cost and good glossy texture. In the case of linen cloth, the fabric was encouraged and invigorated by the Ganghwa Industry Association. Sochang was also known as cotton cloth, which was one of the finest cotton fabrics of the time. Artificial silk and linen fabrics have been replaced by nylon and Chinese fabrics, but sochang is the only fabric still produced due to its high quality and functionality. It is not easy to clarify the exact production year and the origin of sochang. However, referring to the records, it can be seen that the Japanese cotton fabric ‘kokura-ori (小倉織, ゴクラオリ)’ was translated into the Korean word ‘sochang.’ There are several factors behind the development of the textile industry in Ganghwa. The sophistication of Ganghwa women, their ambidexterity and abundant labor force, the introduction of improved looms and joint workshop operation, and the structural completion of the peddlers to sell goods are some of the developmental...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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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6-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미등록 ->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5-05-27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민속학연구외국어명 : Korean Journal of Folk Studies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5 | 0.5 | 0.4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4 | 0.39 | 1.048 | 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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