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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華民國時期 兒童公育論의 變化- 아나키즘, 국가주의, 여성문제 - = Arguments about Communal Child Rearing in Republic of China(1900-194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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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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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ormers and revolutionaries in early twentieth century China advocated for a system of “communal child rearing”(儿童公育) that assigned primary responsibility for child rearing to society and community rather than individual parents. This article discusses the idea of communal child rearing, how it changed over time, and how these debates have reverberated in post-1949 policy debates.
Revolutionary anarchists in the 1900s believed communal child rearing could dismantle the hierarchical relationship between parent and child and thus would play a crucial role in their project to overthrow the existing social order and create of a more egalitarian society. In the 1920s, starting from 1919 to be exact, communal child rearing became a focal point of debate for social reform. Those who advocated for the program were radicals who also supported women’s liberation and criticized private property and family as an embodiment of traditional values. Newspaper articles published around and after this time show how their contemporaries understood communal child rearing as a necessary condition for women’s economic independence. However, the debates in the 1910s and 20s differed from those in the 1900s in terms of their utilization of scientific knowledge. Whereas radicals in the 1900s advanced their ideas based on revolutionary idealism, the 1910s and 20s groups (on both sides of the debate) grounded their arguments in the social scientific discourses of early child education and psychology.
In the 1930s, nationalists gained more ground and argued for communal child rearing for the sake of the nation. While nationalists’ views on child rearing drastically differed from the anarchists and other radicals of earlier periods, they continued to support the feminist claim that communal child rearing was crucial for women’s economic activities and social participation. The wartime conditions in China from the mid-1930s also contributed to the increase of public child rearing facilities for war orphans. Public child care in wartime China owed much to the desperate material conditions of women and children. These policies prioritizing the needs of working women and children continued after 1949 and served as the basis of institutionalized child care facilities in the early yea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아동을 부모가 아닌 사회, 혹은 공동체가 함께 키워야 한다는 ‘아동공육(Communal Child Rearing)’의 주장이 1900년대 초반 등장하기 시작하여, 1940년대까지 중국 사회의 개혁, 가족과 교육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이 ‘아동공육’의 상(image) 및 지향하는 바는 주장하는 사람들마다, 시기마다 변화했다. 이 논문에서는 이 변화의 내용과 지속의 이유, 그리고 그것이 이후 시기에 영향을 미치게 된 요소에 대해 탐색해본다.
1900년대 아나키스트들은 부모와 자녀 관계를 단절시켜 기존 질서를 전복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동공육을 실행하자고 주장했다. 1919년부터 1920년대에는 아동공육이 논쟁거리로 부상하게 되었다. 찬성 측에서는 기존 사유재산제도에 대한 비판, 가족제도의 철폐 혹은 개조, 여성해방의 이상적 지향이 선명했다. 이 논쟁 이후 신문 잡지의 담론 중에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전개되었다. 실제로 아동공육기관을 설치하려는 시도도 찾아볼 수 있다. 찬성파와 반대파 모두에서 교육학, 아동심리학 등의 근거를 가지고 논증하고자 하는 점이 1900년대의 급진적 공상적 아동공육 주장과는 차이를 보였다.
1930년대 이후의 논의에는 아나키즘적 지향이 사라지고 애국주의의 입장에서 아동공육기관을 만들어야 민족이 건전해진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에서도 일관된 흐름은 여성들의 직업활동과 사회 참여를 위해 아동공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는 여성운동 측의 주장이다. 또한 193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이 전쟁 상황에 빠지면서 고아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탁아소나 보육원 등이 새로 생겨나게 되었다. 아동을 공적으로 양육하는 실천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결국 여성들의 절실한 필요와, 아동들의 열악한 성장 환경이라는 조건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과 아동의 필요성에 우선 집중하는 현실에서의 실천은 중화인민공화국 이후 보육시설의 확충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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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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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3-21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중국사연구외국어명 : ChungGukSa YonGu: The Journal of Chinese Historical Researches | KCI등재 |
2005-03-1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CHUNGGUKSA YONGU; The Journal of Chinese -> CHUNGGUKSA YONGU; The Journal of Chinese Historical Researches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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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0-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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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28 | 1.28 |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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