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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종 역사지식의 재생산 - 1940년대 타이완 문학 속의 <국성야>이야기 = 混血/種歷史知識的再生産 - 1940年代臺灣文學中的「國姓爺」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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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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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16(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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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언: 전쟁과 문단 재편重編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 타이완 문학에는 두 가지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첫째는 문학 영역의 재개편인데, 내지(日本)와 타이완의 작가들의 활동 영역이 뚜렷하게 나뉘어 거의 서로 교섭하지 않았던 것이 1939년 <타이완 시인 협회>의 창립 이후에는 일본어 창작을 매개로 양국 작가들 사이에 협력 혹은 합작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타이완과 내지인 작가들이 선택하는 소재가 점점 근접해진 것이다. 타이완의 민속 소재, 역사 서사물이 타이완에 있는 내지인의 소설작품에서 대량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미 공동의 지식 혹은 기억이 되어 버린 역사물에 대한 재서술은 그 자체가 민족(國族)신화의 창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민족들이 동일한 역사물을 소재로 하여 경쟁적으로 썼다는 사실은 텍스트 비교 연구에도 상당히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국성야> 정성공은 일본과 중국, 타이완에서 모두 다 깊은 민족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사적에 대한 텍스트들은 매우 많은데, 특히 1940년대 타이완에서는 여러 가지 버전이 동시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역사물의 소재가 근대소설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언어의 교체와 그 이전의 이야기버전들이 텍스트 속에서 일으키는 중첩과 착잡(錯雜)은 모두 ‘텍스트’의 형성 및 존재 의미를 탐구·분석하는 데에 유효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본문에서는 ‘내지인’ 작가가 쓴 정성공 이야기의 개작 작품을 주요 텍스트로 삼아, (1) 글쓰기과정에서 일어나는 언어 맥락의 전환 및 (2) 18세기 이래 정성공의 인물 형상화 방식을 일본 사상사 및 문화사상의 논설(論說)을 참조하여 비교·분석하고자 한다.
2. 자리 매김이 불가능한 <국성야> 정성공
타이완의 개척역사를 놓고 말하자면, 정성공이 타이완 서해안을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세력을 몰아내고, 한족들에게 타이완 통제권을 확립시킨 공로의 의미는 크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의 중국·일본 및 19세기 이후의 타이완은 그에 대해 각기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정성공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정씨 일족들은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재물을 쌓았다. 또한 일본에 “은을 보내서(寄銀)”, “파병을 요청(乞師)”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정성공의 “혼혈” 형상의 상징성은 그의 실제 혈통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바로 청병입관을 하고 있던 명나라 말기 난세였고, 일본에서는 에도(江戶)막부가 시작하여 쇄국체제를 수립하던 혼란기였다. 정성공의 타고난 혈연과 지연은 단일한 정권과 지역에 속하기 어려운 혼잡성을 띄고 있었기 때문에 유동하는 동아시아 정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정성공의 행적과 그에 대한 후세의 서술, 이를 고찰하고 재창작하는 과정에는 (1)한인(漢人)중심/만인이족(滿人異族) (2)중화/일본 (3)동양/서양 등 세 가지 조합이 대립과 반영, 상생의 관계로 뒤섞여(揉雜) 있다. 이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일본의 최초 해외 식민지가 된 타이완이 각각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근거로 서술되었다.
일본에서 정성공은 “국성야(國性爺)”의 이름으로 문인 지식층과 서민 오락생활에 깊이 들어가 있었다. <국성야>의 인물 이미지를 일본의 문화유산이 되게 한 작품은 치카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의 정유리(淨琉璃)<국성야회전國性爺合戰>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이 연극은 국성야를 평호 출신인 전쟁의 신으로 그리고 있는데, 중화 영역 내에 있는 만청(滿淸)정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시하는 한편, 여성인물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구조적인 요소들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국성야”가 “현재는 대명조의 지원군이 되어 쉬지 않고 싸우고 있다”라는 문구에서는 일본이 중국의 국운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중일 관계는 “주종(主從)”관계에서 “병립(幷立)”관계로 변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이후 <국성야>는 1874년 이후 일본이 타이완을 그의 첫 해외 식민지로 얻은 시기에 다시 쓰이게 된다. 일본의 언론은 중일전쟁에서 청나라를 패배시킨 것은 그 후예들이 원수를 갚기 위한 보복과 전승(傳承) 행위였다고 주장하며, 국내 여론을 선동하고 식민지 확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청(淸)”을 국성야/일본의 적대면(敵對)으로 반복적으로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은 “빼앗긴 것”과 “되찾은 것(回歸)”이라는 두 가지 패턴으로 일본 근대 국성야 글쓰기에 반영되었다. 한편, <국성야 후일 모노가타리>에 수록한 또 다른 작품 <타이완 홍루사>는 희곡적인 재현방식과 완전히 달리 “정씨 4대 사적”사료를 읽은 서술자 “나”가 존재하며, “유창하게 읽기 힘든” “한문사료”를 소화한 후 “상냥한” 일본어로 독자들에게 정씨 역사 사실을 다시 서술해준다. <타이완 홍루사>는 여성의 존재가 남성이 주체인 역사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여성의 목소리, 민속 구전 자료 등은 방대하고 복잡한 역사자료에서 부족한 물질과 감정적인 요소를 제공해 준다. 그 밖에 정씨 역사 사실을 서술한 자료 가운데에서 타이완 경영 부분에 대해 가장 많이 기술한 것은 강일승(江日昇)의 <타이완외기>였다. 총 13권으로 된 <타이완 외기> 가운데서 제12권 <미얀마에 가사 계왕(桂王)은 모욕을 당하고, 조상의 교훈을 읽고 (정)성공은 귀천(歸天)했다> 뒷부분이 바로 정씨가의 타이완에서의 흥망성쇠과정이다. 대략 강희 말년에 쓰여진 <타이완 외기>와 기타 사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진영화와 정극장에 대한 서사와 강조 부분이다.
3. 서천만의 <적감기>: 역사에 수록 되고 싶은 욕구
1940년대 이후 타이완 문단을 주도했던 중요한 인물 서천만이 이 시기에 창작한 <적감기>는 <국성야 후일 모노가타리>를 이어 받은 후계작의 방식으로, 정씨 이야기가 1940년대 타이완에서 재차 “혼혈”되어 “역사”지식으로 확립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적감기>에서는 <타이완 외기>에 없지만 <타이완 홍루사>에만 있는 독창적인 플롯이 존재하는데, 가령 정극장이 죽기 전에 진부인에게 몸을 주의하라고 당부하는 장면이나, 정극장이 피살당할 때 살인자와 나누는 대화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때문에 <타이완 외기>와 <적감기> 사이에는 <국성야 후일 모노가타리>와 <타이완 홍루사>등 일본어 창작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감기>는 1940년 12월1일에 처음 <문예 타이완>에 간행한 후 같은 달 22일에 단행본 <적감기>로 출판되었다. 1942년 12월에는 소설집 <적감기> 형식으로 동경에서 다시 출판하였는데, 이 소설집에는 <운림기 云林記 >, <원소기 元宵記 >, <주씨기 朱氏記 >, <도강기 稻 江記 >, <채류기采硫記 >등 편을 수록했는데, 이는 모두 다 서천만이 초기 타이완 개척사를 소재로 하여 창작한 소설들이었다. 그리고 <타이완의 기차> 뒤에는 <두 명의 독일인 엔지니어>(<二人獨逸人技師 >), <용맥기 龍脈記 >, <타이완 종관 철도 台灣縱貫鐵道 >등 유명전이 타이완 순부(巡撫)로부터 일본 영대(領台)까지 맡고 있을 때, 철로 전신망 등 서양 문명 건설이 타이완에 들어오고, 그 과정에서 서양문화와 동양적 가치를 절충하는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의 두 계열의 텍스트는 내부 시간과 창작시간이 매우 집중되고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아, 서천만이 의식적으로 진행한 타이완 역사물의 창작이라고 볼 수 있다. <적감기>와 <타이완의 기차>는 각각 두 계열의 시작이고 또한 매우 비슷한 서사 패턴―작가 자신과 매우 중첩되는 서술자 “나”가 있으며, 그리고 책을 통해 상상을 발동하여 과거로 들어가는 시간적인 연결―이 있다. 명청 교체시기인 17세기와 1940년대의 “대동아”라는 상상적 지리를 이어주는 것은 바로 “국성야”이야기, <타이완 외기>와 <국성야 후일 모노가타리>이다. <적감기>는 “나”와 “타이완”의 공통된 역사적 소망을 드러내고, 실제 건축과 공간, 예를 들면 적감루, 개원사, 오비장대, 금정, 산전상점 등은 모두 다 “나”의 시선 속에서 과거부터 오늘까지의 변천감을 나타낸다.―이렇게 가장 좋은 현실 공간과 대상의 묘사는 확실히 <국성야 후일 모노가타리>와 <타이완 외기>에서는 부족했던 부분이다. 서천만은 현지답사를 통해서 강일승과 녹도앵항, 심지어 치카마쓰 몬자에몬에게 선천적으로 부족하였던 “현지” 특성을 그의 작품 안에 생생하게 그려 넣음으로써, 정씨 혈통을 간직하고 동서양을 멀리 내다보는 포부를 가진 정극장을 매개로 하여, “내지인”(타이완 경험을 구비하지 못한 중앙 문단 작가를 상대로 비교)의 국성야 모노가타리 서사에의 우위성을 확인한다.
4. 결어: 역사 - 소설 ― 종교
식자들은 늘 식민자들의 <적감기>의 <타이완 외기>에 대한 의도적인 인용과 글쓰기의 증가가 타이완 역사 해석에 대한 침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씨 일족이 동아(東亞) 해양에서 활약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여태껏 대륙을 기반으로 한 중국 관방의 “정사(正史)”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명청(明淸) 사이에서의 정지용의 우유부단함, 반청시기에 강호 막부에 군대와 돈을 지원해달라고 한 정성공의 일화 등은 근대 단일 민족의 정체성을 전제한 행동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정씨 이야기가 여러 정권하에서 텍스트로 사용된 이유는 정성공 자신의 혼혈 신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정씨 이야기가 예전부터 여러 문체(文體)에서 유전하였고, 그 어느 텍스트도 중심이라고 정할 수 없는 혼종(混種)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일본인의 서사 맥락 속에서만 “국성야” 정성공의 지식화와 문학화의 관점을 탐구하였다. 타이완인 작가의 텍스트는 일본의 근대문예가 아니라 민간문학과 민속 종교적 층위에 있기 때문에 방법 면에서 반드시 구분을 할 수밖에 없다. 정성공은 타이완 민간에서 신으로 모셔 제사를 받은 지 오래되었고, 역사 사실에서 언급하지 않은 부분에는 영험한 전설이 돌고 있다. <적감기>에서 신비한 진씨 청년으로부터 결말에서 신용(神龍)이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 타이완 “내지인”의 자기 역사 위치 매김 서사도 의외로 종교 숭배 색채로 기울어지었다. 역사 소재하의 소설과 종교는 민족주의 상상과 함께 비단일 대위적인 강렬한 호응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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