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尺牘을 통한 淸代學人과의 학술교류 = Academic Exchanges through Letters with Chinese Intellectuals of Qing Dynasty - Cases of Lee Deok-Mu and Park Je-Ga -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주제어
KDC
810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03-128(26쪽)
DOI식별코드
제공처
조선의 문인이 청의 지식인을 직접 만나 교유한 것은 1765년 홍대용의 연행에서 비롯되었다. 홍대용은 연행에서 돌아와 그들과 주고받은 필담을 『건정동필담』이라는 기록물로 남겼다. 이 책은 당시 많은 문인들에게 널리 익혔고, 조선후기 문인들 사이에 청의 지식인을 직접 만나 필담을 나누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자신이 직접 연행에 참여하기를 열망하게 하였고, 실제 연행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특히 이덕무와 박제가는 이러한 분위기에 가장 격렬하게 반응하였고, 청대 문인들에게 먼저 척독을 보내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후 이덕무와 박제가는 연행에 참여하여 북경에서 청의 지식인들을 직접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1778년의 일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들은 청의 지식인들에게 척독을 보내 인간적 교유를 맺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학술적 교류를 하고 있었다. 이덕무와 박제가가 청의 지식인에게 보낸 척독은 각각 9편과 3편으로 모두 12편이다. 이들 척독은 단순히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인간적 교유에만 머물지 않았다. 척독을 보내면서 자신이 지은 시문과 글씨를 함께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문집 혹은 시문에 품평을 부탁하거나, 서문.기문.편액.글씨 등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덕무는 척독의 뒷부분에 ‘별지’ 양식으로 평소 궁금하던 학술적 궁금증을 問目으로 덧붙이고 있다. 이덕무가 청의 지식인에게 보낸 문목은 모두 37개로, 이들의 내용은 자녀의 명수와 나이, 이름 등을 묻는 개인적인 것도 있고
조선과 중국의 풍속의 차이를 묻는 문화적인 것도 있다. 하지만 문목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서책에 나오는 문구나 단어의 뜻과 연원을 묻거나’, ‘중국에서 간행된 조선의 서적에 대한 것’이나 청의 畵壇 및 사상계의 동향에 대한 것들이다. 이는 이덕무가 청의 서적을 널리 읽고 청의 문단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조선 문단의 동향을 대변하는 것이라 하겠다. 본고에서는 지면관계상 문목의 일부만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이덕무가 양명학에서 모기령의 고증학까지 反朱子의 계보를 인지하고 있었고, 四庫全書라는 중국 지식의 집합체에 관심을 가
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홍대용의 연행이후 10여년 동안 조선의 문단에는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청으로부터 유입된 서적과 청의 지식인들과의 교류가 주요 원인이 되었다. 척독은 청의 지식인들과의 교류의 수단이었고, 척독 속 問目은 조선의 지식인 이덕무의 지적 관심사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이덕무는 博學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고, 서책의 동향, 특히 청으로부터 유입되는 서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앞선 위치에 있었다 하겠다. 그러
므로 이덕무 개인의 지적 관심사를 통해 조선 문단에서 일어난 지적 변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하겠다.
During the Chosun Dynasty, the government dispatched a group of ambassadors to China ("yeonhangsa") more than 500 times in 250 years since 1637, or 15th year of King Injo's reign. However, it was not until Hong Dae-Yong visited China in 1765 that Chosun literary classes began to directly interact with Chinese intellectuals. After returning from the visit to China, Hong Dae-Yong wrote 'Geonjeongdongpildam,' to record his exchanges with Chinese intellectuals. The book became popular among the literary classes, and by the late Chosun Dynasty, it became quite fashionable for the intellectuals to have written exchanges with Chinese scholars. Chosun intellectuals longed to join the group of ambassadors to China, and sought such opportunities. Lee Deok-Mu and Park Je-Ga were one of the enthusiasts for such exchanges, and they sent letters to Chinese intellectuals. Later they joined the group to visit China in 1778. Even before that, they sent letters ("cheokdok") to form friendly relationships, which developed into academic exchanges. Lee and Park sent nine and three letters respectively, to Chinese intellectuals. The purpose was not just to exchange greetings and personal news. They
enclosed their poem, calligraphy, and gifts. They would ask Chinese intellectuals to review their writing, and ask for writing, calligraphy or framed pictures in return. At the end of the letters, Lee would attach an annex, a list of questions ("munmok"). Thirty-seven questions remain to date, some of them asking personal questions such as the number of offsprings, their ages, names, and others more culture-related questions asking unique customs of China and so forth. A majority of the questions were on the meaning and origin of words and
phrases found in Chinese writing, Chinese books on Chosun, as well as artistic and philosophical trends of Qing Dynasty. These show that Lee widely read Chinese books and had great interest in Chinese literary circle. Such interest was quite prevalent in Chosun literary circle at the time. The short letters of Lee and Park were important vehicle for cultural exchanges with Chinese intellectuals. The enclosed questions show the scope of
intellectual interests of the time. They are revealing documents that show changing trend of Chinese intellectual society that transpired between the time of Hong Dae-Yong's visit to China and that of Lee Deok-Mu and Park Je-Ga some ten years later.
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