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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후반 신라 사상계와 ‘나얼(奈乙, 蘿井) 神宮’ 건립-‘밝왕’ 炤知王의 仙·佛 정책을 중심으로- = The thinking world of Silla新羅 and the establishment of ‘Naeol(Naeul奈乙, Najung蘿井)’ national Sundo shrine神宮 in late 5th century -Centering around King Soji炤知’s policy on Sundo-Buddhism fusion-
저자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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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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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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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9-57(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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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King Noolgi訥祗’s reign, the royal family of the Kims assumed jointly with the family of the Parks who had been leading Korean Sundo 仙道, the national ideal envisioned on the founding of Silla and the current thought of that time. As the royal family of the Kims had centralized power, they wanted to lead Sundo instead of the family of the Parks. As a result ‘Naeol(Naeul奈乙, Najung蘿井)’ national Sundo shrine 神宮 had been built in King Soji’s reign.
King Soji had built national Sundo shrine in ‘Naeol(Naeul, Najung)’, the highest Sodo(蘇塗, the sacred place of Korean Sundo) of Silla. This shrine was built after removing the first facilities of Naeol Sodo, the kind of the column for Heaven天柱. As the column for Heaven symbolizes a sympathy with Heaven or Park(‘the light’) from Heaven, it becomes clear that the divinity of shrine was also Heaven or Park.
Since the foundation of Silla, the center of sacrificial rites had been just the sacred shrine for the founder of Silla始祖廟(the shrine for Park-Hyeok-Keose朴赫居世廟). After building ‘Naeol shrine’, the center of sacrificial rites had changed to ‘Naeol shrine’. Besides King Soji had professed himself as Park King. It was after the model of the father of Park King, Park-Hyeok-Keose. And he had put on ‘Gold crown金冠’ and ‘Gold belt金製銙帶’, the new sacred articles instead of ‘Geumchuk金尺’ and ‘Okjeok玉笛’, the original sacred articles by the family of the Parks.
While leading national Sundo in this way, King Soji had accepted Buddhism too. That is to say his Sundo policy was the policy to use jointly with Sundo and Buddhism. Throughout these process, the phenomena of Sundo-Buddhism fusion was developed.
Because the policy of Sundo-Buddhism fusion was contrary to Sundo tradition, the aristocratic class including the family of the Parks raised an objection to King Soji finally. After King Soji’s sudden death, the woman from the family of the Parks began the queen continuously and the royal family of the Kims and the queen family of the Parks assumed jointly once again.
눌지왕 이후 김씨왕실은 신라의 입국이념이자 시대이념이던 선도밝사상을 주도해오던 박씨족과 연대함으로써 집권화의 이념적 기반을 다져갔다. 이후 집권화가 진전되면서 김씨왕실은 선도이념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선회해가게 되는데 그 전기가 되는 사건으로 소지왕대 ‘나얼신궁’ 건립을 들 수 있다.
소지왕의 치세가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던 소지왕 9년(487) 신라 최고의 소도 ‘나얼(奈乙, 蘿井)’ 지역에서는 고래로부터의 유서깊은 天柱類 시설을 계승한 신궁이 건립되었다. 천주류가 한국선도 일반의 신격인 ‘하늘(天)=밝음’과의 소통을 상징하기에 신궁의 신격 또한 ‘하늘(천)=밝음’으로 보게 된다. 신라초 이래 국가제사의 중심이던 始祖廟(박혁거세묘) 제사는 박혁거세를 매개로 하늘과 통하는 방식이었으나 신궁제사는 제사의 주체인 김씨왕이 직접 하늘과 통하는 방식으로 여기에서 소지왕대 김씨왕실이 신라선도의 중심을 김씨왕실로 옮기고자 하였음을 알게 된다. 소지왕은 신궁 건립후 신궁제사를 신라 최고의 국가제사로 자리매김, 시조묘의 지위를 대신하였을 뿐아니라 ‘밝왕’의 원류인 박혁거세를 모방하여 스스로 ‘밝왕’을 표방하였고 신궁제사시에도 박씨족의 신물인 ‘金尺·玉笛’을 대신하여 김씨족의 새로운 신물인 ‘金冠·金製銙帶’를 착용하는 등 선도를 주도해갔다.
소지왕은 김씨족의 집권력 강화에 최우선의 목표를 두고 선도이념을 주도하는 한편으로 불교까지도 수용, 仙·佛을 두루 병행하였으니 소지왕의 선도 주도 정책은 실상 선·불 병행 정책이었다고 할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선도 전통에 점차 불교가 녹아드는‘선·불 습합’ 현상이 진전되었다. 소지왕의 이러한 사상 정책은 고래의 선도 전통 하에서 모든 귀족층이 天孫族으로 선도적 국가운영에 공동 참여하던 방식과 배치되는 방향이었기에 박씨족을 위시한 귀족층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결국 소지왕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중고기 박씨왕비족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김씨왕족과 박씨족은 다시 한번정치·사상적으로 연대하게 되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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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0-05-04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仙道文化 제6집 -> 仙道文化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07-04-13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선도문화연구원 -> 국학연구원영문명 : Korean Sundo Culture Institute -> kukhak Institute | |
2006-11-13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for Korea Sundo & Culture -> Korean Sundo Culture Institute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36 | 0.36 | 0.4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1 | 0.42 | 0.996 | 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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