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익의 <심문(心紋)> 연구 : 소설의 담론적 특징을 중심으로 = A Study Choi, Myung-Ik's novel <Sim-Mun>
저자
문재호 (숭실대)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700.00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45-175(31쪽)
제공처
본 연구는 최명익의 단편 소설「심문(心紋)」에 나타난 담론적 특성을 고찰해보기 위한 것이다. 담론이란 실제 발화상의 상황을 전제로 서술의 국면과 인물들 간의 논쟁적 대화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 있는 소설 속의 현실이다.
작품의 서사구조는 크게 보아 '근원적 과거→과거→현재①(소설 속의 현재)→현재②(서술상의 현재)'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이러한 시간의 분할은 인물들이 느끼는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 인물들간의 대화와 서술의 국면을 살펴볼 때, 주요인물이랄 수 있는 명일, 여옥, 현혁(현일영) 등이 모두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추론해볼 수 있다. 따라서 각 인물들은 시간의 구조와 맞물려 강박관념을 형성하게 되고, 이로부터 서로간의 대화가 단절되거나 지연되는 현상을 빚고 있다.
인물들간의 대화가 비껴가면서 서술자를 포함한 모든 인물들은 외부로 향한 언술을 지양한 채 내적 진술과, 드러나지 않은 외부 화자와의 내부적 논쟁 현상을 보여준다. 상대의 반응을 미리 예측하여 자신의 언술을 왜곡하거나, 진실을 외면하면서 자의식의 세계를 과다하게 노출시키는 양상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담론 현상을 통해 각 인물들이 '타인의 말을 지향하는 말, 이중적 목소리의 말'을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의 강박관념과 타인과의 대화의 단절 양상은 곧, 내면적 자아의 세계가 그만큼 주눅들어 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인물들은 미래로 열려진 담론을 지양하고 자아의 내면 깊숙이 숨어버림으로써 근원적 과거를 지향하는 모순적 존재 양태를 띤다. 즉, 무기력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미래보다는 과거를 지향함으로써 퇴행적 자기 고백을 불러오는 셈이다.
작품의 결말에서 인물들의 퇴행성은 여옥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귀결된다. 여옥의 죽음은 절망적 현실과 과거 지향의 존재적 양상을 자각한 데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모든 인물들이 이러한 과정을 겪었거나, 겪을 것임을 암시하는 셈이다. 이러한 결말은 작품의 진행 과정에서 명일이나 여옥이 지연시키고 지체시켜왔던 중심 담론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 준다. 이는 그만큼 인물들을 억누르고 있는 현실의 무게가 컸음을 반증하는 것이면서, 지향점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인물들의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서술자는 이러한 상황을 명일의 시점에서 '설움'이라는 단어를 통해 부각시키고 있다. 명일이 맞이한 여옥의 죽음은 '여옥이다운' 죽음이지만, 그것은 결국 미래성이 거세된 퇴행적 인물들 모두의 죽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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