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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의 ‘소사이어티(society)’ 개념 수용과 활동 = The Acceptance and Activities of Yun Chi-ho’s Concept of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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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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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는 중국과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근대적 지식을 습득하는 한편 실체로서 ‘소사이어티’를 경험하고 참여했다. 윤치호는 ‘소사이어티’를 ‘공공성’, ‘공익’을 실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결성된 단체, 또는 ‘공공성’,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토론하고 공론을 형성해 가는 ‘공론장’으로 인식했다. 그는 귀국 후 1897년부터 7월부터 본격적으로 독립협회에 참여하여 토론회를 개설하는 등 협회의 성격을 ‘공론장’으로서 ‘사회단체’로 변화시켜 갔다. 윤치호를 비롯한 독립협회 세력은 ‘개화’라는 ‘공익’ 실현을 최우선, 최상위의 목적으로 설정하면서 ‘개화’에서 벗어나거나 방해가 되는 ‘사익’ 추구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즉 개개인의 ‘사익’을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사회’의 성립을 추구하면서도 ‘공익’을 ‘사익’보다 우선시 하며 ‘공익’에 해가 되는 ‘사익’을 부정하는 ‘양가성’을 보였다. 이와 같은 ‘사회’ 지향의 양가성은 1905년 이후 ‘국권’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 ‘민권’보다 ‘국권’을 우선시하는 인식과도 맞물렸다. 1900년대에 들어 윤치호의 일기에 등장하는 ‘사회’의 용례는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단체, 조직, 학회 등을 의미했다. 그는 을사늑약 체결 이후 ‘사회’를 통감부와 친일내각을 대신해 대한제국의 ‘개혁’을 추진하고 ‘국권’을 회복할 주체로 보고 다양한 ‘사회단체’ 활동을 전개했다. 1900년대 ‘사회’에 대한 논의는 주로 개인, ‘사회’, 국가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의 확장 또는 집합이 국가라고 보았으나 국권 상실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개인보다는 ‘사회’, ‘사회’보다는 국가를 우위에 두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그 결과 각각의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리’는 국가의 ’공리’에 기여하거나 합치되어야 ‘공익’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이 ‘공익’으로 규정한 것은 ‘부국강병’, ‘문명개화’였으며, 궁극적으로 ‘국권’을 회복하여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독립협회와 이후 ‘사회단체’ 활동을 통해 윤치호가 추구했던 ‘공익’ 역시 동일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1910년 이후 일본제국의 식민지배가 지속되면서 윤치호는 ‘국권’ 회복이 아닌 ‘문명화’만을 ‘공익’으로 규정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식민권력과 타협하고 협력하는 ‘사회’ 활동을 전개했다.
더보기While studying in China and the United States, Yun Chi-ho acquired modern knowledge and experienced an entity of `Society`. He recorded diverse organizations using the word `society` in his diary. Japanese and Chinese intellectuals who came into contact with the West in the modern era began accepting Western societies as a group of people with a purposeful consciousness and translating them into various terms. Since then, the `society` of the West has gradually been translated into `Sahoe(社會)` in Chinese characters. Experiencing and participating `societies` in the United States, Yun Chi-ho also realized that many `societies` were formed with various purposes and they had one thing in common. In other words, he perceived that `society` was an organization formed with the purpose of realizing `public interests`, or `public sphere` which discusses and forms `public opinion` to realize `publicness` and `public interests`.
Since returning home in 1897, Yun Chi-ho began to actively participate in Independence Club from July. He thought that many `societies` that had been experienced in America were also necessary for the reality of Joseon, and that conditions for `society` were already established in Joseon. It was expected that `society`, which had just begun to be established, would play a role of `public sphere` forming `public opinion`, and realize `public interests`.`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was defined as `public interests`. To realize these`public interests`,`society` required the government to reform or change to a more rational way of governance.
The members of Independence Club including Yun Chi-ho recognized the realization of `public interests` as the highest priority and were negative for the pursuit of `private interests`. In other words, their aiming at society showed ambivalence that while pursuing the establishment of `society` to acknowledge and protect `individual interests`, `society` should pursue `public interests` rather than `individual interests`. This ambivalence was associated with the perception that `national right` was more important than `civil rights` in the situation where `national right` was at stake since 1905.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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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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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28 | 1.28 | 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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