肅宗 御製 <陳摶墮驢圖> 硏究 = A study on Chen Duan Falls off a Donkey: The Political Painting with Sukjong’s Royal Inscription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6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학 전공 , 2016. 8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709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ⅶ, 126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장진성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는 오대(五代)의 혼란한 세상을 걱정하던 진단(陳摶, 867?~989?)이 태평성대를 불러올 성군인 송 태조(宋太祖, 재위 960~976)가 즉위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웃다가 나귀에서 떨어질 정도로 기뻐했다는 내용을 담은 고사도이다. 좌측 상단에 숙종(肅宗, 재위 1674~1720)이 남긴 제화시가 쓰여 있어 1715년 8월 상순 숙종이 감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고는 〈진단타려도〉의 화제와 화면 구성, 회화적 특징에 대한 분석을 정교화하여 작자 문제를 포함한 제작 상황을 밝히고, 주문자로서 제작과정에 구체적으로 개입한 숙종의 역할에 주목하여 그림의 의미와 회화사적 의의를 새롭게 규명한 연구이다.
진단의 타려 고사는 동아시아에서 그림으로 그려진 다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예외적인 화제였으나, 고사 자체는 18세기 초 조선의 지배층에게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도사략(東都事略)』을 원전(原典)으로 하는 타려 고사는 유서(類書)와 문학 작품, 나아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인용되면서 내러티브의 확장과 변형을 거쳤다. 이에 따라 ‘태평성대를 불러온 성군의 등극’에 대한 원전의 메타포와 고사 속 진단의 이미지 또한 텍스트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었다. 특히 『용비어천가』에서는 태종(太宗, 1400~1408) 등극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장에 인용됨에 따라 원전의 메타포를 조선 왕실의 맥락에서 확장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왕위 등극에의 천명성(天命性)’을 상징하는 일화로서 새로운 은유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진단타려도〉는 고사의 내러티브를 화면으로 번역함에 있어 기존의 도상에 의존하지 않고 특정 텍스트, 즉 원전 『동도사략』과 『용비어천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유한 해석을 더해 새로이 도해해냈다. 〈진단타려도〉에서 단연 부각된 부분은 진단의 타려와 그 순간의 기쁨, 상서로움이다. 이 장면은 두 텍스트의 서술에 따른 충실한 묘사를 기반으로 산수 및 인물 요소의 창조와 변형을 통해 강조되었다. 특히 대개 수은(睡隱) 고사를 통해 도가의 은자로 묘사되던 진단을 도사가 아닌 학자의 모습으로 표현한 점이 독특하다. 이러한 의도적 부각과 변용은 곧 이 고사를 화면으로 재현한 작자 혹은 주문자의 존재와 제작 의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각적 실마리가 된다.
기존 연구에서는 대개 〈진단타려도〉를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작품으로 추정하였다. 이에 따라 그림의 의미와 회화사적 의의에 대한 논의 역시 ‘문인화가’ 윤두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작품의 세부 표현양식과 윤두서의 생애사적 기록, 그리고 숙종의 어제 부기(附記) 방식을 검토해볼 때 〈진단타려도〉를 윤두서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진단타려도〉는 전체적 화풍과 세부 표현양식, 도상 표현에 이르기까지의 전반적인 회화적 특징이 당대 궁중에서 제작된 고사도들과 높은 연관성을 보이고 있어 18세기 초 궁중화원의 작품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 특히 고사도의 인물 도상은 후대에 궁중에서 제작된 고사도에서도 같은 구성이 활용된 사례가 여럿 확인되어 〈진단타려도〉가 조선 후기 궁중회화 제작 전통에서 하나의 전범을 형성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진단타려도〉는 숙종 연간 궁중회화의 특성과 중요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재평가될 수 있다.
회화화된 전례를 찾기 힘든 낯선 화제를 고유한 해석을 더해 새롭게 구성한 〈진단타려도〉가 궁중화원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이 고사도가 화원의 단독 구상이 아닌 해당 고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주문자, 즉 숙종의 구체적 개입에 의한 작품임을 말해준다. 〈진단타려도〉에 어제를 남긴 숙종은 다수의 고사도를 주문하고 감상하였을 뿐 아니라 서화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제작 과정 전반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군주였다. 또한 숙종은 고사도에 어제를 더함으로써 고사도가 가지는 우의와 상징성을 군왕의 통치철학과 그가 마주한 정치적 현실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시각물로 삼았다. 〈진단타려도〉는 화제의 예외성부터 새로운 도상 표현과 족축의 장황 형태, 어제의 부기에 이르기까지 숙종 연간, 특히 1715년 숙종이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사도들과 밀접한 유사성을 지닌다. 더구나 〈진단타려도〉는 처음부터 어제가 더해질 것이 계획된 구성을 취하고 있어 숙종이 1715년의 당대적 필요성에 입각하여 제작과 감상의 전반을 기획한 고사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숙종의 어제 고사도로서의 〈진단타려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숙종이 개입한 작품 내적 요소와 당시 그가 마주한 작품 외적 정황의 종합적 고려가 필요하다.
〈진단타려도〉는 화면과 어제를 통해 진단의 타려가 태평성대를 불러온 ‘참된 군주(眞主)’의 등극에 있음을 명시하였다. 특히 어제에서 참된 군주의 ‘천명’을 강조하였다는 점은 고사도의 이해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숙종의 고사도 감상에서 군주의 ‘천명’에의 강조는 그가 마주한 정치적 혼란과 맞닿아 있었다. 1715년 역시 〈진단타려도〉의 화면과 어제가 노래한 태평성대와는 요원했다. 후계 문제를 근간에 둔 노소론의 대립은 심화되어만 갔고 노년의 숙종은 거듭된 병환의 위협 속에서 이 갈등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킬 재위 말년의 정국을 구상해야 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진단타려도〉에서 송 태조의 ‘천명’을 강조한 데에는 숙종 자신을 신하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참된 군주’로 선전하고자 하는 목적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는 숙종이 태평성대를 이끄는 성군임을 시각적으로 환기함으로써 그가 내리는 정국 구상에의 결단에 당위적 권위를 더하는 것이기도 했다. 〈진단타려도〉 속 ‘참된 군주’ 송 태조는 타려 고사가 인용된 『용비어천가』 100장을 통해 조선 왕실에서 ‘천명을 받은 왕재’를 상징하게 된 군주인 동시에 이상적 문치(文治)를 실현한 국가 송의 창업주였다. 왕실의 적장자로서 창업주 태조의 천명을 이어받은 군왕이자 유학의 이상적 군주상인 ‘군사(君師)’의 지위를 공식화한 숙종에게 송 태조의 성군됨과 등극의 경사를 강조한 타려 고사는 당시 그가 가진 왕권의 지엄함을 내보이기에 적합했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부분은 〈진단타려도〉가 ‘천명’을 강조한 여타 고사도들과 달리 ‘참된 군주’의 존재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고사(高士) 진단의 타려 장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성군의 등극에 기뻐 나귀에서 떨어지면서조차도 함박웃음을 지은 타려 순간의 진단을 포착한 〈진단타려도〉의 화면은 그의 군자된 면모를 극적으로 부각한다. 특히 유자(儒者)의 의관을 갖춘 진단의 모습은 마치 당세(當世)의 사대부들을 투영하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 숙종은 유난히 많은 수의 현신 및 충신의 일화를 소재로 하는 고사도를 감상하고 어제를 남겼다. 이러한 작품 내외적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학자 진단의 타려 장면을 통한 태평성대의 도래와 이를 이끌 참된 군주의 존재에 대한 강조는 그 자신을 ‘참된 군주’로 선전함과 동시에 당대의 사대부들에게 시의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선택으로 사료된다. 즉, 〈진단타려도〉는 붕당을 일삼는 신하들에게 나라의 태평을 먼저 염려하고 태평성대를 이끌 성군의 치세에 기뻐 따르는 군자된 면모를 갖춘 신하의 자세를 권계하고자 한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상서로움이 가득한 배경 속 진단의 타려를 표현한 화면과 어제가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참된 군주’의 존재와 그로 인해 도래할 태평성대였다. 〈진단타려도〉의 ‘참된 군주’는 이상적 교훈으로서의 송 태조인 동시에 1715년의 숙종 그 자신이기도 했다. 결국 숙종의 어제가 담긴 고사도로서 예외적 화제와 구성을 취한 〈진단타려도〉는 1715년 숙종이 스스로가 가진 왕권의 지엄함을 환기하고 ‘참된 군주’인 그가 구상한 말년의 정국을 충신된 자세로 따를 것을 신하들에게 천명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획한, 오롯한 숙종의 고사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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