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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의 시조 한역 양상과 그 의미 = A Study on Aspect and Meaning of Kim Yang-Geun’s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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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59(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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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 1734~1799)의 시조 한역 동기와 양상을 분석한 다음, 18세기 중·후반 시조 한역의 시조사적 의미를 고찰하려 했다. 그의 문집 『동야집』에는 <동조(東調)>라는 제목 아래 한역 시조 64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동조>의 서문에 따르면 그는 본디 180수의 한역 시조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수의 시조를 한역한 내적 동력은 무엇인지, 시조의 문학적 가치를 인식한 계기는 무엇인지 묻고자 한 것이다. 게다가 안동 출신인 그는 서울에 올라와 당시 중앙의 풍류 문화를 경험했기에 18세기 중·후반의 시가 문화와 결부하여 김양근의 시조 한역이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김양근은 청풍계에 집을 짓고 그 집을 김상용에게 물려준 김영의 11세손이다. 장동 김문의 족친인 그는 유학 생활을 계기로 청풍계에 머물며 당시 서울의 문화를 체험한 듯하다. 아울러 낙론의 종지를 계승한 김원행의 문하에 들어가 천기론을 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동조>의 서문은 시조의 가치가 천기를 발현하는 데에 있음을 인식한 그의 면모를 드러낸다. 비록 그 곡조를 알지 못해도 느낄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견해를 제시한 뒤, 웬만한 가집에 비견할 만큼 많은 수의 시조를 한역하면서 시조에 담긴 진정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남긴 것이다. 따라서 김양근은 시조를 한역하여 풍속을 교화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시조의 가치를 알리며 내면의 진실을 좇으려 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동조> 64수의 체재를 검토하면 한역 시조를 여타의 악부와 함께 수록했고 그것을 15항의 주제로 분류했으며 18, 19세기에 걸쳐 가곡창 가집에 활발히 전승된 작품, 특히 장동 김문과 그 주변 인물이나 『청구영언』에 이름이 오른 작가의 작품을 한역한 사실이 발견된다. 이러한 양상은 18세기 중·후반의 문화적 원숙성, 즉 가곡창이 구심이 되어 한시와 악부, 장가 및 단가가 한데 어우러지고 중국 노래와 우리 노래를 구태여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사대부 계층과 중인 계층이 함께 예술 행위에 참여하게 된 문화적 토대 위에 놓여 있음을 고찰했다. 나아가 가곡과 악부의 상관성이 부각된 것은 각자가 지닌 경험과 자질에 따라서 어떤 예술을 즐겨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대두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해 보았다.
김양근은 6구체 장단구 형식을 활용하여 시조의 의경과 표현을 재현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시조의 가치가 천기를 발현하는 데에 있다고 인식한 김양근이 6구체 장단구 형식을 토대로 시조의 형식과 리듬, 표현과 주제를 재현한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약간의 굴절도 없는 것은 아니다. 시조에 담긴 진정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김양근이 그 진정에 자신의 삶과 감정을 투사할 때 역자의 존재를 시사하는 표현이 첨가되면서 굴절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김양근이 시조의 진정을 좇으며 한역에 임한 과정은 자신의 진정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김양근의 시조 한역은 시조에 담긴 진정을 향유하는 동시에 자신의 진정을 노래하는, 예술 행위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본 논문의 첫 물음은 시조 한역이 “시가 찬집시대”인 18세기에 도리어 활기를 띠고 “창곡 왕성시대”까지 지속한 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동력을 시조 향유의 각 주체가 자신의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자기 시대에 대응한 데에서 찾았다. 곧 한편에서 가객 집단이 전승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동안 한편에서 황윤석, 김양근 등의 사대부 계층은 시조 한역을 통해 시조의 진정에 가닿고자 애쓰며 문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18세기 중·후반의 원숙한 문화를 꽃피웠다. 나아가 그들이 짊어진 사명은 음악과 유흥에 경도된 19세기에 한시의 쇄신과 새로운 창작을 바란 신위 등의 문인에게서 다시 발견된다. 비록 시조의 형식과 표현은 사상되었으나 어떻게 해야 진정을 담아낼 것인가 하는 고민의 중심에 시조가 있었던 것으로 추론된다.
결론적으로 김양근이 시조 한역을 통해 예술 행위에 가담하여 시조에 담긴 진정을 향유하고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 것은 18세기 중·후반 시조 문화의 원숙미에 기반한 것이며 문인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려 한 당시 사대부 계층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In this paper, the author tried to analyze the motives and patterns of the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by Dongya (東埜) Kim Yang-Geun (金養根, 1734~1799), and then analyze the Sijo's historical meaning of the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in the middle and late 18th century. In his book of writing, 『Dongya-Jip(東埜集)』, 64 Sijos translated to classical Chinese are contained under the title 「Dongjo(東調)」.
In particular, the preface of 「Dongjo」 reveals his aspect of recognizing that Sijo's value lies in expressing the secret of nature. He presented the view that it would not lack if they could feel it even if they didn't know the tune. He left a trace of striving to deliver the true emotion in Sijo by playing a large number of Sijos comparable to that of song book.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Kim Yang-Geun played Sijo not only to edify customs but also to promote Sijo's value and pursue the truth inside.
On the other hand, when review the listing system of 64 Sijos in 「Dongjo」, Sijos translated into classical Chinese were listed along with other pieces of music, and was classified into the subjects of 15 items. It is also discovered that the works of the artists whose name were listed in 『Cheonggu-Youngeon(靑丘永言)』 were remarked. This aspect shows that the cultural maturity of the mid- and late of the 18th century, that is, Gagok-chang(歌曲唱), and the Chinese poem, music, long-song, and short song harmonized together didn't need to be dis-tinguished between Chinese songs and Korean songs.
It can be said that Kim Yang-Geun tried to reproduce the meaning and expression of Sijo using the 6 lines long and short term format(6句體 長短句) recognizing that Sijo's value lies in expressing the secret of nature. Therefore, it will not be surprising that Kim Yang-Geun reproduced Sijo's form, rhythm, expression, and theme based on the 6 lines long and short term format. However, he had a slight refraction. When Kim Yang-Geun, who tried to convey the true emotion in Sijo, projects his life and emotions to the truth, an expression suggesting a translator's existence was added, and refraction occurred.
The first question in this thesis is where was the driving force that the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became active in the 18th century when the “Sijo Collection Era” was “Golden Days of Changgok? In response to this, Kim Yang-Geun's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expanded the Sijo culture in the 18th century, when Sijo's creation and enjoyment were at its heyday. In the 19th century, when Sijo was transformed into Changgok,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was inevitably degraded as a means of verbal translation. As a reaction, it suggests that such translation became a platform for innovation in poetry, a medium for new creation.
In conclusion, Kim Yang-Geun enjoyed the true emotion contained in Sijo and sang his sincerity through the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that is, participating in artistic acts reveals the maturity of Sijo culture in the middle and late of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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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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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4 | 0.24 | 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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