梵魚寺 甲契補寺碑와 高僧眞影 硏究 = A Study on the Portrait of Monk and Temple-aiding stele of Traditional private fund by Coevality(Gap-gye) in the Beomeosa Temple
저자
최춘욱 (문화재청 문화재감정관실)
발행기관
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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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83-216(34쪽)
KCI 피인용횟수
1
제공처
소장기관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 의해 사원경제가 거의 존폐의 직전까지 내몰렸다가 戰亂에서 僧軍들의 활약은 불교의 위상을 재고하게끔 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도 排佛은 계속되어져 승려들은 각종 공역이나 군역 및 제지・짚신삼기・누룩빚기 등의 수공예에 종사하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승려들의 자구적인 활동도 생겨났는데 이는 수공예 등에 종사한 승려들이 축적된 생산 기술로 잉여물을 창출하여 사유전답 조성, 각종 계의 조직 및 운영한 후 이를 통한 補寺 활동과 佛事의 거행이었다.
조선후기 사찰계는 신앙활동을 위한 계와 보사 활동을 위한 계로 구분되며 현재까지 甲契를 비롯하여 念佛契, 佛糧契, 燈燭契, 門徒契, 廳契, 지장계 등 모두 25종이다. 그중 사명대사 甲會文이 시초가 되어 조선후기 소속 사찰에 거주하는 동갑 또는 비슷한 연령의 승려들이 조직하였던 同甲契인 갑계가 대표적인 사찰계이자 가장 활발히 보사 활동을 했다. 특히 범어사 갑계의 경우 모두 25건이 조직되어 총 32번 보사 활동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보사 활동은 寺誌에 기록되어 있거나 補寺碑에 새겨져 있는데 범어사에는 현장조사 결과 총 13기가 현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더욱이 범어사 천왕문의 출입 앞쪽 향우측과 측면 향좌측에는 1863년의 ‘丙子甲契補寺壇’과 1891년의 ‘庚子甲契補寺壇’의 보사비 2기가 있으며 이들 보사비에는 보사 활동의 일환으로 元曉와 義湘 두 高僧眞影을 조성하였다는 내용이 刻字되어 있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에는 의상대사진영과 원효대사진영이 각각 1폭씩 소장되어 있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는 의상대사진영은 絹本彩色에 右顔7分面의 全身倚子像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1767년에 제작하였다는 畵記가 있다. 범어사 소장 불화로서는 가장 빠른 시기에 조성된 의상대사진영은 조선후기 19세기에 정형화되는 고승진영에 앞서 제작된 진영일 뿐만 아니라 진영의 절대연대를 제공해 주는 귀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원효대사진영 역시 견본채색에 좌안9분면의 전신의자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다만 원효대사진영은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화기가 없어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없었다.
경자갑계보사비가 1891년에 세워진 것이므로 1767년의 의상대사진영과는 서로 별개의 사항으로 파악된다. 다만 병자갑계사비에서 1863년에 원효・의상대사 양 대화상 진영을 새롭게 조성하였다는 보사 내용이 있어 주목된다. 원효대사진영은 구도라든가 세부표현 양식 및 안료 색채 등에서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진영들과 유사하다. 1859년에 제작된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虎巖和尙眞影과는 구도라든가 자세 및 색채감에서 괘를 같이 하고 있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원효대사진영과 거의 같은 초본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450-51호인 1878년의 九鳳堂智和眞影이다. 두 진영은 측면관이라든가 등받이와 배경 처리 및 화문석의 무늬, 왼손 지물의 차이는 있지만 장삼과 가사, 가사끈 고리, 오른손과 왼손의 모습, 신발의 표현, 의자 및 족좌대 형태까지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원효대사진영은 병자갑계보사비에서 밝히고 있듯이 당시의 보사 활동의 일환으로 1863년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조선후기 제작된 고승진영들이 대부분 화기가 없...
Because of the policy of pursuing-confucianism and suppressing -buddhism(崇儒抑佛), the Buddhist temples in the Joseon dynasty faced tremendous economic difficulties and was driven out the risk of maintenance or abolition. But after their participation in Japanese [Hideyoshi's] invasion of Korea in 1592(壬辰倭亂), monks begun to restore buddhist to its rightful place. Nevertheless, Joseon government consistently keep the policy of suppressing- buddhism(抑佛) until the late Joseon dynasty, and it caused monks to work in the fields of public service, military service, paper manufacture, strow shoes manufacture, liquor manufacture etc. In this poor condition, they earned lots of money through creating the extra products and bought private paddy fields. They also organized many kinds of traditional private fund of temple(寺刹契). With those fund, they made a temple-aiding activities(補寺活動) or performed a Buddhist-serving ceremony(佛事儀式).
Temple fraternities(寺刹契) in the late Joseon dynasty basically categorized into two main groups:one for religious activities(信仰活動) and the other for temple-aiding activities. There are twenty-five kinds of temple fraternities:for example, included traditional private fund by coevality(Gap-gye:甲契), Yeombul-gye(念佛契), Bulyang-gye(佛糧契), Deungchok-gye(燈燭契), Mundo-gye(門徒契), Cheng-gye(廳契) and Jijang-gye(地藏契). Among them, Gap-gye as a traditonal private fund by coevality(同甲契), which was initiated from Gaphuimun(甲會文) by Monk Samyeong(四溟大師), was one of the most active and representative temple fraternity. Especially, it is said that Gap-gye of Beomeosa temple(梵魚寺), Busan had been organized twenty-five times, and had had thirty-two times of temple-aiding activities. These temple-aiding activities was written into the temple-historic records(Saji:寺誌) or inscribed on the stele of temple-aiding. As a result of an on-the-spot survey, thirteen steles of temple-aiding which still exist today was found in Beomeosa temple. In addition, there are two steles of temple-aiding on the both side of the temple gate dedicated to the four Devas(Cheonwang-mun:天王門), which was respectively built in 1863 and 1891:one is called Byeongjagapgye-bosadan(丙子甲契補寺壇) and the other is called Gyeongjagapgye-bosadan(庚子甲契補寺壇). On the surface of two steles, it was inscribed that the potraits of Monk Uisang(義湘) and Wonhyo(元曉) were painted as a activity of temple-aiding.
The museum of Sacred treasure(聖寶) in Beomeosa temple contains the portraits of Monk Uisang and Wonhyo. The portrait of Monk Uisang which was designated as a tangible cultural property No. 55 of Busan was painted in 1767 according to its own painting record(畵記). He is depicted in three-quarter profile and seated in the chair with colour ink on the silk. It is one of the earliest products among the portraits which housed in Beomeosa Temple. The portrait of Monk Uisang has the importance in the aspect that it was painted before the monk portrait didn't have a standard pattern yet and also had the specified era. The portrait of Monk Wonhyo is depicted in three-quarter profile and seated in the chair with colour ink on the silk as well. But it doesn't have a specified era, only known as produced in the 19th century.
Gyeongjagapgye-bosadan which was built in 1891 has not associated with the portrait of Monk Uisang which was painted in 1767. But Byeongjagapgye-bosadan is regarded as the important material due to its temple-aiding record that the portraits of Monk Uisang and Wonhyo were newly painted in 1863. The portrait of Monk Wonhyo has the similarity to those painted in the late 19th century in the aspect of composition, expression of details and colours. Especially, it bears the strong likeness to the one of Monk Hoeom(虎巖和尙) which was painted in 1859 and housed in the museum of the Sacred treasure in Tongdo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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