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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사회사업 전개와 대구 사례 = Development of Social Work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Case of Dae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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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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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4(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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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일제시기 총독부의 빈민 및 근로 대중의 사회적 위험에 대한 정책의 전개를 살펴보고, 이와 관련하여 대구지역의 사례를 검토하였다. 1910년대 사회사업은 노동능력이 부족한 요구호자(要救護者)를 중심으로 한 자선 · 구휼사업이 전개되었고, 대구부의 사회사업 역시 자연재해로 임시 생계위협에 처해 있거나 노동능력을 결여한 요구호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구휼사업이었다. 이는 전통적인 구빈사업과 다를 바 없다고 보여진다.
1920년대에는 일본에서 `쌀소동`이후 사회사업 개념이 형성되면서 조선에도 `방빈적`사회사업을 시행하였다. 이는 1차 대전이후 `전후공황에 따른 중하층의 경제적 몰락에 대한 대응으로 도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구에서도 이와 관련 직업소개, 공설질옥(公設質屋), 공설세탁장 등 사회복지서비스류의 정책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공장법, 건강보험법 등은 도입되지 않았고, 복지정책이라기보다 사회시설의 미비, 시장의 미발달에서 비롯된 정책에 가까웠다.
방빈적 사회사업은 1920년대 후반부터 파급된 세계공황의 영향으로 급증하고 있었던 빈곤의 문제에 대응할 수 없었으며, 이에 1930년대 전반에는 궁민구제라는 명목으로 궁민구제사업이 도입되었다. 대구에서도 1910~20년대 시구개정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토목사업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공업의 미발달이라는 조건에서 이루어진 것인데다 저임금 문제, 청부업자의 농간 등으로 실제적 구호가 되지 못하였다.
한편 1935년을 전후 식민지 조선도 준전시체제로 재편되기 시작하였는데, 이와 관련 서북조선의 공업화와 개발을 위해 남부 지역 노동력의 동원이 주요과제로 부각되었고, 대구지역에서도 직업소개소가 중심이 되어 노동력을 이동시켰다. 아울러 세궁민에 대한 관리 강화를 위해 방면위원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는데, 대구에서도 1936년 방면위원제가 도입되었다.
전시체제기에 이르러 사회사업은 총동원체제 이념에 종속되어 전쟁승리라는 국가의 목표하에 노동력 강제동원과 후생사업으로 변질되었다. 노동력의 강제동원과 가혹한 노동조건하의 노동 수탈은 사회사업 본래 개념과 전면 상반된 것으로 사회사업의 파탄이라는 점에서 파악이 가능하다. 대구에서도 총동원체제의 구축과 더불어 노동력의 강제 동원, 후생사업개념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This research reviewed the case of Daegu region on the division of period into relief business during 1910s, poverty-relief(防貧的) social work during 1920s, poverty-relief(窮民) business during the early 1930s and change to quasi-state of war system, compulsory mobilization of labor during the wartime and public welfare, mainly with the policy on poverty and social risk of public labor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general.
Social works during 1910s progressed charity·relief work mainly with relief-requiring people(要救護者), lacking labor ability, and the social work of Daegu region also was the relief business targeting relief-requiring groups which were facing livelihood threat or lacking labor ability. This seems to be exactly the same as the traditional relief business. Japanese public relief policy during this period was also based on 「Poverty relief rule(恤救規則)」, however this partly recognized governmental relief policy.
During 1920s, as the concept of social welfare was formed since `rice disturbance` in Japan, and `poverty-relief` social work was also implemented in Joseon. This can be said adoption as the response to economic fall of lower-middle class along with after-war crisis since the First World War. In Daegu, also, social welfare services such as relevant job introduction, Gongseoljilok(公設質屋), Gongseol laundry field, etc. were introduced. However, differently from Japan, Factory law and public health insurance law were not adopted in Joseon, which was close to a mere policy out of insufficient social facility and underdevelopment of market.
Poverty-relief social work was not able to respond to the problem of poverty, which rapidly increased due to the influence of global economic crisis that was spread since the late 1920s, accordingly, a poverty-relief work was adopted in the name of poverty-relief during the early 1930s. In Daegu, also, civil engineering business was progressed in the extension of city reorganization business during 1910s~20s. However, this was basically based on the condition of underdevelopment of industry, which was not the actual relief due to low pay problem and contractors` trick, etc.
On the other hand, in 1930s, Japanese all-out war began since the Manchurian incident, and around 1935, the colony Japan also was reorganized as quasi-state of war, accordingly, mobilization of southern region labor stood out as a major task for industrialization and development of northwest Joseon, also in Daegu, labor was moved mainly with employment agency. Also, relief committee was spread on the whole nation for the reinforcement of management over the poor, Daegu, also, introduced relief committee in 1936.
During the wartime, social work changed to compulsory mobilization of labor and welfare work under the national goal, war victory, subordinated to the idea of general mobilization system. Compulsory mobilization of labor and labor exploitation under severe labor condition were contrary to the original concept of social business on the whole, which can be comprehended as the view of breakdown of social business. In Daegu, also, it changed to compulsory mobilization of labor and welfare business concept along with establishment of general mobilization system.
(ASIATIC RESEARCH Institute Korea University / gm9gm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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