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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동아시아 상인 열전-상인(商人)의 창을 통해 역사를 보다-] : 19세기 전반 대청(對淸) 홍삼무역의 발전과 임상옥의 활동 = Growth of Joseon-Qing Red Ginseng Trade and Activities of Ihm Sang-ok in the Early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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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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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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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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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175(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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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상업사 연구는 활기를 띠고 있지만, 자료 부족으로 개별 상인 혹은 상인 가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상인 연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일환으로 19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林尙沃에 주목하여 개별 상인에 대한 사례 연구를 진행하였다. 임상옥을 연구할 때 참고가 되는 자료는 1930년대 문일평이 지은 임상옥 전기이다. 문일평은 임상옥과 同鄕 출신으로 口傳 일화와 行狀, 문집의 自序 등을 토대로 전기를 지었다. 임상옥은 1779년 의주에서 태어났다. 18세까지는 학문에 전념했다고 하는데, 상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닦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8세 이후 본격적으로 상인으로 나섰다. 그러나 28살에 父喪을 당하고도 계속 장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초기의 상업활동은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같다. 여기에는 당시 국제 무역의 동향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국제무역은 오랜 침체에서 막 벗어나기 시작한 때로 무역 규모가 크지 않았기때문에 전반적으로 무역 상인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29살 무렵 임상옥은 당시 勢道家 朴宗慶의 지원 하에 대청 홍삼무역권을 획득하였고 이후 10여 년 간 홍삼 무역을 주도하면서 巨商으로성장할 수 있었다. 임상옥은 박종경의 門客으로 있으면서 父喪을 당한 박종경에게 거액을 賻儀함으로써 그의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임상옥이 홍삼 무역권을 획득한 이후 대청 홍삼 무역은 도약기에 접어들어서 홍삼 수출량이 급증하고 무역 규모도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무역의호황은 국제 거상을 배출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을 이룬다. 이 기간 동안임상옥은 개인적인 수완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대청 무역의 호황이라는 환경을 잘 활용하여 국제 巨商으로 성장해 갔다. 상인으로서 임상옥이 성공하는 과정에서 勢道家 박종경의 지원이 큰 역할을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임상옥의 정치적 성향은 기성 체제에 안주하는 보수적인 것이었다. 특히 그의 정치적 성향은 홍경래 난에 대한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홍경래 난을 반대했고, 民兵將으로서 난 진압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50대 이후 임상옥은 자선사업가 혹은 관료로 특징지을 수있다. 그는 50대에 關西 지방은 물론 경기지방의 진휼 및 災民 구제를 위해 거액의 돈을 내놓았고, 그때마다 정부는 그에 대한 포상으로 관직을 내렸다. 그래서 임상옥은 곽산 군수로 2년간 곽산 지역을 다스리기도 하였다. 이 영향으로 관서 지방에서는 임상옥을 상인보다는 사대부로 평가하려는경향도 있었다. 이러한 임상옥의 활동은 조선후기 권력과 결탁하여 성장한상인의 사례로 주목된다.
더보기Recently, studies in late Joseon period commerce are flourishing but there are still very few researches in individual merchants or merchant families due to insufficient materials. This article has conducted a case study in a particular merchant named Ihm Sang-ok to fill in such an academic vacuum. The primary source used in the study is the biography of Ihm Sang-ok, which was written in the 1930s by a historian Mun Il-pyeong. Mun came from the same birthplace as Ihm, and he wrote Ihm`s biography based on oral traditions, records of the deceased, and the anthology. Ihm Sang-ok was born in 1779 in Uiju, Korea. It is said that he was committed to learning until 18, but there is also a possibility that Ihm had a certain grounding as a tradesman during this time. He started his merchant career since 18, but his early efforts seemed unsuccessful since he had to continue engaging in trade even when his father died when Ihm was 28. International trade circumstances were one factor because they were just beginning to escape long-time recession, so that it was not easy for anyone to succeed in merchant business due to its small scale. However, fortune turned to Ihm`s favor as he acquired red ginseng trading rights to China at the age of 29 under the support of Bak Jong-gyeong, court powerman. Ihm Sang-ok since then transformed himself into a merchant ‘prince’ by leading red ginseng trade for the next decade. Ihm was Bak`s ‘service guest’(門客) and offered a huge sum of condolence money to Bak`s father`s funeral, thereby winning his support. Moreover, after Ihm obtained the red ginseng monopoly, red ginseng trade with Qing China made big progress as its export and trade volume dramatically increased. Such trade boom comprises an important background for the emergence of international business mogul. and Ihm Sang-ok maximized his personal abilities to take advantage of the situation to clench multinational wealth and reputation. As seen above, Bak`s patronage played a vital role in Ihm`s enterprise, which evidently demonstrates that Ihm`s political inclination was conservative, content with status quo. Such tendency was well illustrated in his attitude towards the Hong Gyeong-lae`s rebellion, as Ihm not only opposed to the cause but actually led anti-rebellion militia forces to put it down. Ihm in his fifties can be characterized as a philanthropist or a bureaucrat. He donated large money for relief causes in northwestern area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government rewarded him by awarding office posts. Because of this, Ihm actually governed a county for 2 years. Ihm`s involvement in officialdom made some people in the related area assess him as a literati rather than a merchant. Therefore, such colorful activities of Ihm Sang-ok are indeed an interesting case study of an entrepreneur collaborating with the political powers of the late Joseon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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