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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왕과 서동설화의 역사성 = King Mu in Baekje Dynasty and Historicity of Folktale of Seo-dong
저자
강종원 (한밭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61-87(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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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scovery of <Saribongangi> brought a highly controversial discussion about the historical record of Seo-dong folktale though it has been key material for study of Mu. Hence, I examined the historicity of Seo-dong folktale, and the time, background and forces of its creation through comparison with the historical situation in the period of King Mu. Seo-dong folktale is understood by largely dividing into 3parts; origin of King Mu and his life before reign, marriage process with Princess Seonwha from Silla Dynasty, and the background and process of building Mireuksa.
The origin of King Mu and his growth period in Seo-dong folktale reflect the historicity when considering the historical situation of his enthronement. By the way, Princess Seonwha whom King Mu married is most likely to be a woman from local gentry, not a princess. Also, Mireuksa was actually built in phases and lasted to the period of King Euja as though the record says it was constructed in a manner of gathering 3 temples together at once. It turned out that the principal agent of the first construction was a power group in Iksan and the second one was built by influential Sa family centered on Queen Satak. But the fact that the second main agent of Mireuksa was Queen Satak is not confirmed. The stories of marriage relationship with Silla Dynasty and of the aid of King Jinheung at the time of construction of Mireuksa can be discovered in Seo-dong folktale, which are not true. There is not a friendly relationship with Silla Dynasty as the relationship of intense conflict with it was formed in the periods of King Mu and King Euja.
Therefore, the time of forming Seo-dong folktale is estimated either after the destruction of Baekje Dynasty, or treason of Daemun in the 4thyear of King Sinmun in unified Silla Dynasty, or any time after which and before the 18th year of King Seongdeok(719) when thunderbolt on Mireuksa was recorded. Also, a power group related to the formation of the folktale was the local gentry in Iksan who had marriage relationship with King Mu and involved in the first construction of Mireuksa. As for the background of its formation, there were the historical fact of Iksan in the period of King Mu where the palace was located as an advanced base for Silla Dynasty, and the intention to eliminate negative perception of the treason by Goguryeo wanderers and to have a close relationship with Silla Dynasty.
서동설화는 무왕대를 연구하는 핵심적인 자료였지만 <舍利奉安記>의 출현으로 사료적 성격에 대해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이에 무왕대의 역사적 상황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서동설화에 내재된 역사성, 서동설화의 형성시기와 배경, 창작세력 등을 검토해 보았다.
서동설화는 크게 3부분으로 구분하여 이해하는데, 무왕의 출신과 재위 이전의 생활, 신라왕녀인 선화공주와의 혼인과정과 즉위 배경, 미륵사의 창건배경과 창건과정 등이다.
서동설화에서 확인되는 무왕의 출신과 성장기 생활모습은 무왕 즉위 당시의 정국 상황으로 볼 때 역사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지만 무왕이 혼인한 선화공주는 신라왕녀가 아닌 익산지역 재지세력 출신의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미륵사가 일시에 3원식 가람으로 조성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는 단계적으로 조영되었으며, 의자왕대까지 지속되었다. 조영 주체도 초창은 익산세력, 중창은 사탁왕후를 중심으로 한 사씨세력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설화에서 미륵사 중영의 주체가 사탁왕후였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서동설화에는 신라와의 혼인관계, 미륵사 창건시 진흥왕의 도움 등의 내용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무왕·의자왕대는 신라와 치열한 대립관계가 형성된 시기로 신라와의 우호관계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동설화의 형성 시기는 백제멸망 이후로 보아야 하며, 통일신라기인 신문왕 4년(684) 大文의 모반과 그 무리의 반란 이후에서 미륵사에 낙뢰가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된 성덕왕 18년(719) 이전의 어느 시점으로 추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창작세력은 무왕과 인척관계에 있고, 미륵사 초창에 관여했던 익산지역의 재지세력이었다고 하겠다. 서동설화의 형성배경은 미륵사를 매개로 무왕대 익산이 신라진출의 전진기지로서 왕궁이 위치했던 역사적 사실과 고구려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던 지역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신라와의 친연성을 내세우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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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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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5 | 0.25 | 0.2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21 | 0.34 | 0.727 | 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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