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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行錄에 나타난 ‘嘔血臺’의 의미 연구 = Study on the Meaning of “Guhyeoldae” appeared to Record on Diplomatic Trip
저자
김일환 (동국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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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810.000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97-23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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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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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the diplomatic trip to Beijing is included in Chinese territory, those who used that road for a long time were the envoys from Joseon. The record on diplomatic trip written by envoys built a quantity of cultural geography from Hanyang(capital) during Joseon period to Beijing, China. In particular, major battlefields along the road from Shenyang to Shanhaiguan drew substantial attention from the envoys of Joseon dynasty during the transition from Ming Dynasty to Qing Dynasty. It is because the soldiers from Joseon fought on those battlefields for Ming Dynasty at first and then Qing Dynasty. Furthermore, Joseon dynasty surrendered to Qing Dynasty felt a sense of kinship on the collapse of Ming Dynasty. In particular, Ningyuan fortress was the only place where Ming Dynasty continuously losing its territory perfectly won against the attack from later Chin Dynasty and then Qing Dynasty. Ningyuan fortress was the place for Joseon people surrendered after failing to protect Namhansanseong fortress surrounded by the army from later Chin dynasty to feel highly delighted by perfectly win against the army from later Chin dynasty. However, Yuan Chonghuan driving out the barbarians was killed by the emperor due to mischief making by those barbarians. Joseon people fell into despair due to the sad history of Ming Dynasty which demolished the Great Wall of China by itself. “Guhyeoldae(mountain where Nurhachi vomited blood due to uncontrollable anger)” demonstrated the emotion of those Joseon people.
The generation passing through Manchurian invasion to Korea in 1636 hesitated a lot when talking about Yuan Chonghuan and Ningyuan fortress. Yuan Chonghuan was punished by the emperor as being branded as the traitor and his honor was not restored yet. While people sympathized with the wrongful death of Yuan Chonghuan, it was difficult to publicly discuss it. Furthermore, that generation experienced the attack from Qing Dynasty in Ganghwado island or Namhansanseong fortress during Manchurian invasion to Korea in 1636, they couldn"t describe the horrible scenes of battle in Ningyuan fortress. They couldn"t talk about even the word “Khan” because of the memory about the ‘detainment in Shenyang’ twice. However, the generation born after the war, the generation watching the collapse of Ming Dynasty, didn"t hesitate when they talked about the injustice of Yuan Chonghuan or ‘horrible explosion’. When the intervention of Qing Dynasty to the domestic affairs of Joseon dynasty was reduced, that generation described anti-Qing Dynasty sentiment as a tale. The thrilling revenge story was made up by talking about Ming Dynasty not Joseon. The representative case is the legend of ‘Guhyeoldae’.
연행로는 중국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 길을 지속적으로 다니면서 문화적으로 향유한 사람들은 조선의 연행사들이다. 연행록은 조선의 한양부터 중국의 북경에 이르는 길의 문학지리를 구성한다. 특히 명 청 교체기를 거치면서 심양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노정에 있는 주요한 전장은 조선 연행사들의 큰 관심을 받아왔다. 이는 명나라를 위하여, 그리고 청나라를 위하여 파병된 조선병사들의 참여가 있었고, 청나라에 항복한 조선이 명나라의 멸망에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寧遠城은 지속적으로 영토를 잃어가던 명나라가 후금,그리고 청나라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낸 유일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포위된 남한산성을 구해내지 못하고 항복한 조선인에게 포위를 완벽하게 막아낸 영원성은 통쾌함을 주는 장소였다. 하지만 오랑캐의 공격을 물리친 원숭환이 그 오랑캐의 반간계에 의해 ‘황제’에게 죽임을 당하여, 스스로 ‘간성’을 허물어버리는 슬픈 역사에 절망하기도 하였다. ‘嘔血臺’는 이런 조선인들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호란을 경험한 세대들은 원숭환과 영원성의 이야기를 묘사함에 주저하는 바가 많았다. 원숭환이 황제에 의해 역적으로 규정되었고, 신원이 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원숭환의 죽음이 갖는 억울함에 공감했다 하더라도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그들은 호란 때에 남한산성이나 강화도에서 포격을 경험했기 때문에 영원성 전투의 참혹한 장면을 구체적인 묘사하기를 꺼렸을 뿐만 아니라 2차에 걸친 ‘瀋獄’의 기억 때문에 ‘칸’을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반면 전쟁이 후에 태어난 세대들, 명나라의 멸망을 목도한 세대들은 ‘원숭환’의 억울함이나 ‘영원성 전투에서의 참혹한 폭발’을 묘사함에 주저함이 없었다. 청나라의 직접개입이 줄어 듬에 따라 ‘反淸’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하였다. 오히려 조선이 아닌 명나라를 등장시켜 통쾌한 복수극을 꾸며내기도 하였으니, 그 좋은 예가 ‘嘔血臺’ 이야기였던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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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4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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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 | 0.6 | 0.7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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