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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민족주의의 행태적 특성: 건준ㆍ인공ㆍ반탁운동의 현대적 함의 = Behavioral Characteristic of Korean Nationalism in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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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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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해방 직후 정치상황 전개를 ‘민족주의운동’이라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영역에다 초점을 맞춰서 그 과정을 재구성, 재해석 한 것이다. 근 현대 세계 각지에서 전개되어온 민족주의의 전개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민족주의 운동의 행태적 모형을 근거로 한 비교분석 조망과 분석틀을 적용했다.
해방직후 전개되었던 건준중심의 ‘건국민족주의’운동, 인공중심의 좌파 민족주의운동, 그리고 김구ㆍ임정계 중심의 ‘반탁 민족주의’운동에 대한 분석결과는 Anthony Smith가 말하는 민족의 자치성, 단일체적 통일성, 그리고 정체성을 확립하려했던 당시의 민족지도자들의 노력과 대중적 차원의 열정이 대단한 수준이었음을 확인했다.
건준의 민족주의운동은 Smith와 Breuilly가 말하는 ‘민족주의 독트린’, 예를 들어 민족적 가치와 이익은 다른 모든 가치보다 우선하며 민족독립과 정치적 주권을 필요로 한다는 류(類)의 독트린을 적용하여 대중과 엘리트 모두를 조정ㆍ동원ㆍ정당화 기능을 통해 신 국가권력의 형성목표로 향하도록 했다는데 엄청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박헌영의 공산계열이 건준 세력을 분열시켜 건준 민족주의 운동조직을 극좌파의 것으로 전취시켜 나가면서 한국 민족주의운동은 ‘하나의 정치적 형식’(a form of politics) 이라는 전형적 특징을 드러낸다. 인공수립 결행은 ‘임정추대’를 중심으로 결집되기 시작한 민족우파의 움직임에 대한 선 제압의 필요성 때문이고 여운형의 ‘임정봉대’에 대한 꺼림과 경쟁심을 교묘하게 활용한 결과다.
이제 새로이 조직화되기 시작한 우파세력(한민당계열)은 좌파 모두에 대한 극단적 불신감을 갖고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고, 이후 한국 민족주의운동은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 구도 하에서 분열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극좌파 주도의 인공은 ‘타협적 대미노선’과 ‘친일파잔재 청산’ 주장을 교묘하게 같은 고리에다 묶고 임정봉대를 주장하는 공략에 부심했고, ‘친일ㆍ반민족세력타도’를 내세워 포퓰리즘ㆍ대중동원 전략을 구사해 나갔다. 한편, 이승만의 환국 후 우파주도의 민족주의 동원력이 강화되자 극좌파들은 민족우파 진영을 싸잡아 ‘반민족’ 혹은 ‘반민족세력에 대한 보호자’ 범주로 위치 지워 놓으려 했고, 이에 따라 우파세력이 극좌파에 대한 부정적(negative) 민족주의 운동공세를 취하자 좌파는 경성에서의 권력투쟁과 지방에서의 계급투쟁적 민중동원을 민족주의 운동의 핵으로 삼았던 것이다.
반탁운동 과정에서 좌ㆍ우 세력은 ‘반외세 배타성’과 ‘국제주의연대’의 슬로건을 들고, 민족주의란 ‘민족주의 주장’(nationalist argument)을 통한 국가권력 장악투쟁이라는 도식이 한반도에서 전개되는 모습을 시현했다. 이때 김구 중심의 반탁민족주의운동은 민족독립ㆍ민족자주ㆍ민족정기의 가치에 대한 국민적 각성과 열정을 재확인 시킨 기념비적 운동사례로 평가될 수도 있으나, 자기중심적인 ‘민족지상주의’에 도취되어 국제적 환경제약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냈고 좌파의 ‘민족지상주의’에 도취되어 국제적 환경제약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냈고 좌파의 ‘민족주의정책화’ 전략 능력을 간과함에 따라 결국은 향후의 분열적 역사의 전개에 일조를 한 셈이 되었다. 결국 민족주의운동은 일시적으로 민중동원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현실주의적 전략체계를 결할 경우 본래의 민족주의 운동 목표에 반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이상의 연구결과는 해방직후 ‘반제ㆍ반봉건 과제’ 실현과 ‘일제 잔재의 청산’이 이뤄지지 못한 것과 통일정부수립에 역행한 책임이 해방직후부터의 민족우파와 미국 때문이라는 최근 수십 년 간의 좌파적 역사인식의 도그마를 교정하는데 부분적인 기여다.
This research aims at analytic reinterpretation of the political history for the period of 6 months after the end of Japanese colony. Comparative perspective and analytic framework of nationalist movements by Anthony Smith and John Breuilly are the main reference of the analysis. The three cases are set forth for the study: ① the nationalist movement by the Committee for the Prepa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② the Leftist movement through the Korean People"s Republic, ③ the anti-Trusteeship movement by the Rightist nationalists.
One of noticeable findings of the study is that passions and endeavors of mass and elite groups during the movement of the Preparation Committee were enormous in order to achieve national autonomy, unity, and identity. For the purpose of state-building, the nationalist leaders applied "nationalist doctrine" effectively, while well performing multi-facet function of coordination, mobilization, and legitimacy.
The Korean nationalism, however, began to reveal itself a form of politics soon after extreme Leftists made the "Preparation Committee" dissoluble for their own Korean people"s Republic. The Rightist nationalists who became distrustful about the Leftists now adopted a negative campaign against the Communist. The Korean nationalism thereafter undertook itself toward the disunited direction.
"The Korean People"s Republic" led by the Communist proclaimed its compromise line with U.S Military Government, and claimed "Clearing Up Japanese Remnants" in the process of attacking the Rightists who support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Chung-Ching. Since Syngman Rhee"s coming back home, which inspired Rightists upsurging, Leftists tried to place the Rightists under the category of either "national traitors" or "protector group of the traitors", in the process of national mobilization, showing a typical model of populist tactic.
The nationalist movement of "anti-Trusteeship" was the leading example of nationalism which used to aim at searching for state power through "nationalist argument". The nationalist movement led by Kim Ku gained the highest level of public popularity and mass participation at the time. The anti-Trusteeship movement, however, left a historical legacy that ignorance of international constraint and overlooking the Leftist capability of nationalistic tactics eventually called for ideological antagonism as well as division of the nation.
Finally, this study suggests that Korean people"s some distorted view on the history of the "post-liberation period" should be corrected since the Leftist-nationalist doctrine has been dominating to say that all the reasons for failure of such tasks as "anti-imperialism and anti-feudalism" and "national unification" lie at the responsibility of the Rightist nationalists and the U.S. military occupation of the time.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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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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