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한시작품을 통해 본 龍洲 趙絅의 歷史意識
저자
정해출 (고려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911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1-100(30쪽)
KCI 피인용횟수
0
제공처
본고는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통해 조경의 민족혼과 민족의식이 그의 한시 속에 어떻게 형상화되는지를 고찰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자 한다. 조경(1586-1669)의 삶에서 역사를 제재로 한 시에 대한 분석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주지하듯 조경의 성장기이자 수학기라 할 수 있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의 시대적 상황은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이 무렵에 우리 민족이 대내외적인 수난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7세가 되던 해에 임진왜란을 만나 강원도 홍천으로 피난하였고, 31세에는 광해조의 난정을 피하여 거창으로 낙향하여 10여 년간 향리에서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이후 42세가 되던 사환 초기에 정묘호란이 일어났고, 그로부터 불과 10여 년 뒤에는 병자호란을 만나게 된다. 정묘년에는 司憲府 持平에 제수되었는데 時事에 대해 극간하였으며, 병자년에는 司諫의 직임에 있으면서 권력의 실세였던 좌의정 洪瑞鳳의 비리에 대한 奉事를 올렸으나 기득권층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추호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국왕 인조에게 조정에 기강이 바로 서고 公道가 실행되어야 한다고 극간하였다. 古來로 상층부가 부패하고 지도층이 사익 추구에 매몰되어 있을 때면 필연적으로 외환이 엄습한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교훈이었다. 그의 일생은 고단한 역사의 현장과 대면하고 부딪히며 살았던 인물이다. 하여 중국의 역사적 사실과 우리의 역사를 통해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오랑캐의 침략으로 지식인들은 민족적인 위기를 경험했다. 그는 국토산하 어디를 가든 사적이 남아 있는 곳이면 역사적 사실을 포착하여 창작의 소재로 삼아 시작으로 남기곤 했다. 그것을 통해 鬱鬱한 심회를 토로하고 鑑戒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조경의 영사시와 회고시들은 창작동기가 다양하였다. 역사서를 읽고 난 후 독후감으로 짓기도 하고, 당대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다가 과거 역사를 연상함으로써 창작하기도 하였으며, 유적지 기행에서 시작을 남기기도 하였다. 본고에서는 그의 시세계를 세 범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古蹟에서의 애상과 感慨를 주제로 한 시, 절의의 강조와 불의에 대한 慷慨, 그리고 구국의 先鋒에 선 名將에 대한 追念 등으로 나누어 각 시세계의 특징을 보기로 하겠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gure out how the national soul and consciousness of Jo Kyung(1586~1669) are reflected and embodied in his Chinese poetry. As you can see, the period of Jo Kyung's growth and scholarship was adverse circumstances between the late sixteenth century and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because Joseon subjects had suffered from home and foreign ordeals by this time. At his age of seven when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ook place, his family sought refuge in Hongchun, Gangwondo. At the age of thirty one, to avoid the regime of Kwanghaekun, he retired to a hermitage in Geochang and devoted himself to studying for nearly 10 years. Then, he went through a Manchu war in 1627 at his age of 42 and about 10 years later another Manchu war in 1636. In 1627, he was offered the post of Jeepyong in Sahunbu and remonstrated on the current issues and in 1636 when he was at the post of Saghan, he sent up a criticism to the throne against the corruption and greed of a high public official, Hong dan-bong, a powerful figure at that time. So he met a fierce resistance from the ones who controlled vested interests, but he never surrendered his belief. Instead, he persisted his expostulation on the necessity of official discipline and justice improvement. He aptly expressed that foreign troubles inevitably occur when the corruption of the upper classes and the leaders' immersion into the private interests prevail. He spent his life confronted with many difficulties of his time and struggling his way through the adversities of Joseon Dynasty. He meant to say about contradiction and absurdity of his time by the means of Chinese and Korean history in his poetry. Many Joseon intellectuals were confronted with a national crisis by two Manchu's wars. Whenever he got to a historical site, he would write several poems which are inspired by the historical events of the site. By doing this, he expressed his gloomy heart and make an example of alert. Jo Kyung's historical and retrospective poetry was created by many different motives. Sometimes he would write an impression of a history book after he read it. And sometimes, while he pondered on the contemporary issues, he associated the thoughts with his works. In addition, when he reached ruins, he created some poetry related to the place. This study separates his poetic world into three categories; one is the poetry in which he expressed his grief in ruins, another his belief in the importance of fidelity and justice, and the third his description of great commanders who led the salvation of the country. By these three categories, this study aims to analyze characteristics of his poetic world.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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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8-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KCI후보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KCI후보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49 | 0.49 | 0.4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4 | 0.41 | 1.24 | 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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