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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병자호란 관련 현창과 기억의 유지 = Honoring Byeongja Horan victims and preserve the memory in the late Jong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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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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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68(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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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eongja Horan(Manchu war of 1636) shocked Joseon in that Joseon was defeated, and that the winner of the war was Qing considered barbarians. As the interference of the Qing dynasty weakened after the war, and the Joseon dynasty began to honor the victims of Byeongja Horan. The first purpose was to keep the memories of the war through the honor of victims and the second was to draw loyalty from the current servants by honoring those who devoted themselves to the Joseon dynasty and the third was to reveal the fact that they fought to preserve Confusion civilization.
Basically, honor of Byeongja Horan related people was carried out by the posthumous conferment of honors, special employment of the descendants of the victims, and by the installation of the memorial gate etc. Measures of keeping memories for a longer period time were carried out in the provinces and in the capital. The government provided the expenses necessary for regular ancestral rites and daily management when shrines for the main victims were built and were royally bestowed in the provinces. In the capital, measures were taken to involve the descendants of the Byeongja Horan victims in the Altar for Great Recompense(大報壇) honoring the Emperor of the Ming Dynasty.
Large-scale honor measures were taken in Byeongja Horan Jugap(周甲), that is, the 60th year. In celebration of 120 years (2 Jugaps) after the outbreak of Byeongja Horan in the 32nd year of Yeongjo(1756), broad-scale ancestral rites were carried out in the related shrines. This gave precedent, so ancestral rites for Byeongja Horan related people and shrines were also performed in the 16th year of Sunjo (1816) and 13th year of Gojong (1876) and the scale was expanded especially during the reign of Gojong. The fall of Ming acted as another factor to remember Byeongja Horan. 60 years after the fall of the Ming Dynasty (1704), the Altar for Great Recompense was created and measures were also taken to honor the victims of Byeongja Horan in 36th year of Yeongjo (1764), 24th year of Sunjo (1824), 21st year of Gojong(1884) even though there was no direct relationship with fall of the Ming Dynasty. In addition, the visit of the king to Namhan-sanseong, the battlefield of Byeongja Horan, led to the honor of Byeongja Horan victims.
The Joseon used regular ancestral rites of capital and provinces, events in every 60 years and visit to Namhan-sanseong to maintain the memories of Byeongja Horan and to secure political authority from time to time. And these practices seem to have had a certain influence on maintaining the foreign recognition and self-recognition of Joseon.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조선이 패배한 전쟁이라는 점, 더구나 전쟁의 승리자가 오랑캐로 간주한 청이라는 점에서 조선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전쟁이 끝나고 청의 간섭이 약해지자, 조선왕조는 병자호란에서 희생당한 이들을 현창하기 시작했다. 이는 첫째 희생자 현창을 통해 전쟁의 기억을 유지하고, 둘째 왕조를 위해 헌신 이들을 기림으로써 현재 신하들에게 충(忠)을 이끌어내며, 셋째 중화(中華)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싸웠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병자호란 관련 인물의 현창은 기본적으로 관직 및 시호의 하사, 희생자 후손의 특별 제수, 기념물[旌門]의 설치 등을 시행하였다. 보다 장기적으로 기억이 유지되는 조치들은 지방과 중앙에서 각각 실시되었다. 지방에는 주요 희생자를 위한 사우(祠宇)를 건립하고 사액(賜額)해줌으로써 정기적 제사와 일상적 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해주었다. 중앙에서는 명 황제를 기리는 대보단(大報壇) 의례에 병자호란 희생자 후손을 대거 참여시켰다.
병자호란을 기억하기 위한 특별한 조치로서 병자호란 주갑(周甲) 즉 60년이 되는 시기에 대규모의 현창이 이루어졌다. 영조 32년(1756) 병자호란 발발 후 120년(2주갑)을 맞이하여 관련 사우들에 대대적인 치제(致祭)가 시행되었다. 이것이 하나의 전례가 되어 순조 16년(1816)과 고종 13년(1876)에도 병자호란 관련 인물과 사우들에 대한 제사가 치러졌으며, 특히 고종대에는 치제 대상이 확장되었다. 명 멸망은 병자호란을 기억하는 또 다른 요소로 작용했다. 명이 멸망한지 60년이 지난 후(1704) 대보단을 만든 것은, 중화의 마지막 왕조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영조 36년(1764), 순조 24년(1824), 고종 21년(1884)에는 명 멸망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병자호란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아울러 국왕이 병자호란의 격전지인 남한산성을 방문하는 일도 병자호란 희생자들의 현창으로 연결되었다.
조선왕조는 지방과 중앙의 정기적 제사, 60주년 단위의 행사, 남한산성 방문 등을 통해 병자호란에 대한 기억을 유지시키고 때로는 정치적 권위를 확보하는 데 이용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은 조선의 대외인식 및 자기인식을 유지시키는 데 일정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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