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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과 태극기 = Independence Movement and Taegeuk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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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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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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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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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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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1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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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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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1883년 제정이 반포된 이후 조선의 군권, 부모형제, 조선백성을 의미하였다. 국권 상실 이후에는 국권회복과 독립의지, 애국심을 상징하였다.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 3ㆍ1운동 때였다. 태극기를 만든 이들은 주로 학생들이었는데, 학생들 외에도 여공, 기생, 농민회 및 청년회 회원들은 물론 일제식민통치의 하부조직원인 순사와 면서기도 태극기를 만들었다. 태극기를 만든 이들이 주로 학생이었던 만큼, 만든 장소도 교장실과 기숙사 등 학교 안에서였다. 학교에 이어 태극기가 많이 만들어진 곳은 개인 집이었다. 태극기 제작은 비밀리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태극기는 만세운동 참여자 수와 장소에 따라 제작 매수에 차이가 많았다. 개인 단위로는 수십 장이, 십여 명 이상이 함께 준비할 경우에는 수천 장이 만들어졌다. 태극기에는 ‘대한독립만세’와 같은 만세운동 참여자들의 열망이 글로 표현되었다.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에 앞장선 이들은 일경에 손을 절단당하여 순국하기도 하였다. 일제는 태극기를 만든 사람은 물론 태극기를 지닌 자들도 독립운동가로 간주하고 탄압하였다.
태극기는 독립을 외치는 이들과 함께 했다. 팔에 태극기를 새겨 독립운동에 함께 한다는 마음을 다짐하였고,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하였다는 증거로 삼았다. 각종 기념식에 태극기가 등장하였고, 임정의 모든 행사가 태극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일제는 태극기를 엄중 경계하였지만, 6ㆍ10만세운동 때도, 광주학생운동 때도, 그리고 이후에도 태극기는 한반도 이곳저곳에서 만세를 외쳤고 독립을 갈망하였다.
태극기 논란은 제정 이후 명확한 국기 도안과 사용이 전국적으로 교육ㆍ홍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권이 상실되었고, 국치 이후에는 태극기의 의미가 독립해야 할 국가인 때문이었다. 독립운동과 함께 하였던,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던 태극기의 중요성이 컸으므로 태극기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를 분명하게 규정해줄 국권이 없는 가운데 ‘논란’의 형태로 태극기에 대한 관심이 표출된 것이다. 따라서 ‘논란’은 태극기가 국가ㆍ민족ㆍ독립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는 의미이다.
Since its establishment in 1833, Taegeukgi represented right of Chosun's ruler, parents, brothers and sisters and people of Chosun. After loss of national right, it represented restoring national right, will for independence and patriotism. It was clearly shown when the independence demonstration on March 1 broke out. Students made Taegeukgis and woman workers, gisaeng and members of agrarian and student unions as well as low rank police officers and myeon officials also participated in making Taegeukgis. Since it was mainly students who made Taegeukgis, principals' offices or dormitories in schools were the places where Taegeukgis were made. People's homes were the next. Making Taegeukgis should be kept secret.
Number of Taegeukgis for production varied depending on the number of participants or places. Several tens per person, several thousands per over 10 people were allocated for production. On Taegeukgi, words of participants' hope such as 'hurrah to Daehan's independence!'were expressed. Those who led the demonstration with Taegeukgi in their hands were killed on site for their hands amputated by Japanese police. Japan considered those who made Taegeukgi or had it as activists and oppressed them.
Taegeukgi had always been with those who exclaimed independence. Some had Taegeukgi imprinted on their arms to show their support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proof of participation. Taegeukgi was displayed in every ceremony and every event of provisional government began with a salute to Taegeukgi. Japan was on alert for Taegeukgi; however it was seen throughout the country during independence demonstration on June 10, Gwangju Students Movement and so on representing people's hope for independence.
Controversy over Taegeukgi rose because the country lost its right while nationwide education and promotion were insufficient and after national disgrace, Taegeukgi should represent independent country. The importance of Taegeukgi as a symbol of independence movement grew and the need to know the meaning of Taegeukgi grew accordingly. But when there was no national right to define it, interest in Taegeukgi emerged in a form of 'controversy'. Therefore 'controversy' suggests Taegeukgi has been recognized as a symbol of the country, nation and independenc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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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6-10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전남사학 -> 역사학연구 | KCI등재 |
2006-03-21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전남사학회 -> 호남사학회영문명 : Chonnam Historical Association -> Honam Historical Association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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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8 | 0.68 | 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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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 | 0.6 | 1.183 | 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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