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金剛經』신앙과 백제 帝釋寺 = Diamond Sutra Faith and Baekje Jeseoksa Temple
저자
소현숙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PAEKCHE RESEAR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3-44(22쪽)
제공처
Based on the records of Gwanseeum eungheomgi(觀世音應驗記) that the Diamond Sutra (Vajracchedika - prajna - paramita Sutra) was enshrined in the wooden pagoda of Jeseoksa(帝釋寺) Temple built by King Mu(武) of Baekje in Iksan(益山), this paper examined the influx of Chinese "the Diamond Sutra faith" into Baekje in the late 6th century and the characteristics of Jeseoksa Temple.
The Diamond Sutra belongs to the Prajna-paramita - sutra, and was first translated into Chinese characters in China in the early 5th century. By the Liang(梁) Dynasty in the early 6th century, the belief that life could be extended by reciting the Diamond Sutra spread among monks. By the end of the 6th century, the Diamond Sutra faith had spread among the people, and by the time of the Tang Dynasty, it had become more prevalent, and books that recorded the miracles of the Diamond Sutra were compiled. The range of effects that can be obtained through recitation and copying of the Diamond Sutra has also been expanded, covering all ranges of life and death. Sui and Tang emperors actively used this belief in the Diamond Sutra in their governance.
At the end of the 6th century and the beginning of the 7th century, when Jeseoksa Temple was founded, the Diamond Sutra faith was widely popular in China. The Diamond Sutra faith in China seems to have been introduced into Baekje around the end of the 6th century. It would have been Baekje's Samnon(三論) faction(East Asian Mādhyamaka) scholars who returned to Baekje after learning East Asian Mādhyamaka, which valued the Prajuāpāramitā Sutra, in China. I presume that the representative figure is Hyegyun(慧均), who was the author of the Daeseung saron hyeonui gi(大乘四論玄義記) and the position of Seungjeong(僧正) of Baekje during the reign of King Mu, and he played a major role in the foundation of Jeseoksa Temple and the enshrinement of the Diamond Sutra. On the other hand, since Jeseoksa Temple was a royal temple, King Mu's will must have been actively involved in the enshrinement of the Diamond Sutra. In other words, King Mu, who expected the political role of the Diamond Sutra faith following the case of the Sui Dynasty, would have finally approved the enshrinement of the Diamond Sutra in Jeseoksa Temple.
본 논문은 백제 무왕이 익산에 건립한 제석사 목탑에『金剛經』을 납입했다는『觀世音應驗記』의 기록을 실마리로, 6세기 후반 중국『金剛經』신앙의 백제 유입과 제석사의 성격 등을 고찰하였다.
『금강경』은 반야계 경전으로, 5세기 초 처음 한역되었다. 5세기 말 ~ 6세기 전기에 이르면,『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 수명을 연장한다는‘『금강경』신앙’이 남조의 승단을 중심으로 유포되었다.『금강경』신앙은 6세기 말에 이르러 민간으로 널리 확산되었으며, 당대에 이르러 관련 영험기가 찬술될 정도로 매우 성행했다.『금강경』독송과 抄寫의 공덕도 범위가 확장되어, 지옥 등 冥界 및 현실 諸難으로부터의 구제 등 생사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다. 수당대의 황권은 이와 같은『금강경』신앙을 통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6세기 말 ~ 7세기 초 제석사가 창건되던 즈음은 중국에서『금강경』신앙이 널리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중국의『금강경』신앙은 6세기 말경 백제로 유입되었으며, 이를 주도했던 것은 반야경을 중시하는 三論學을 배우고 중국으로부터 귀국한 백제 삼론학 승려였을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는 그 대표적 인물이『大乘四論玄義記』의 撰者이자 무왕대 僧正이던 慧均이며, 그가 제석사 창건 및『金剛經』의 납입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제석사는 왕실사찰이었으므로『金剛經』의 납입에는 무왕의 의지도 강하게 개입했다고 봐야 한다. 對隋交流를 통해 무왕은 隋 文帝가 통치에『금강경』을 이용했던 사례를 숙지하고,『금강경』신앙의 정치적 역할을 기대하며 제석사에 『금강경』을 납입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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