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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 양완호의 생애에 대한 재고 = Reconsidering Bulmo(佛母) Yang Wan Ho`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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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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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911.8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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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48(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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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佛母) 양완호(梁玩虎)는 일제 강점기에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20여 연간 영남의 불교 미술계를 장악했던 존경 받는 불모였다. 그는 범어사의 불화소에서 불화·불상 조성을 하였고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그의 작품 경향은 전통의 계승이었다. 그가 생존했던 당시는 서양과 일본을 통한 서양문화의 대량유입과 함께 전국적으로 서양화풍의 기법이 전통화법을 무너뜨리고 있던 시기였으며, 그 시기에 완호는 전통성을 계승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해 낸 전통불화의 마지막 계승자이자 근대 불화의 시작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완호 연구는 부산 근대사의 한 부분이자 부산 문화사 정립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보겠다. 이 글은 유작에 대한 예술론은 제외하고 생애를 중심으로 한 내용 중 선행연구에서 문제점으로 거론되거나 밝히지 못한 생애의 몇 가지 의문점 가운데 7가지를 중심으로 하여 논의의 실마리를 풀어본 것이다. 생애복원을 위한 몇 가지 문제점에 관한 결론은 그의 입산 출가 연도를 27세(1896년)를 가장 근접된 연도로 보았고 혹 27세의 전후로 결론 내렸다. 출가 본사는 범어사이며, 완호가 운영했던 화소는 범어사의 해행당 건물에 설치된 범어사 화소라는 것과 범어사 화소는 제자 월주덕문이 1969년까지 운영하였다는 점, 완호가 언제 얼마의 기간동안 머물렀는지 알 수 없었던 복천암에서의 생활은 2008년에 현복천사 상량문에 의하여 복천암의 창건이 1921년임이 밝혀졌고 따라서 완호의 복천암 생활은 1921년 9월부터 입적할 때까지 약 10년 정도였음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완호의 화맥 계보는 어느 화승집단이 아니라 화면사숙(畵面私塾)으로 이루어내었으며, 마지막으로 入寂年度는 1933년이라고 한 영도구청의 재적등본 보다 문화재청의 보고서 기록을 선택하여 1931년으로 밝힌 것이다. 이 일곱 가지 문제가 풀어짐으로써 완호 생애에 좀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조선말기 영남 화맥의 끝자리에서 사숙 없이 독학으로 전통 화법을 지켜내었고 제자 양성으로 그 전통의 맥을 현대에 이어준 시대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완호는 민족적 암흑기인 불행한 시대임에도, 전통의 가치에 시대의 혼탁성(混濁性)을 뒤섞지 않고 수준 높은 예술을 창출함으로써 근대 불화에 신선한 충격을 남겼으며, 오늘날 釜山 사람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부여하면서 부산의 문화예술계를 새롭게 조명 시켜주고 있다.
더보기Bulmo Yang Wan Ho was born in Dongrae, Busan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e was respected as a figure who took the lead in the circle of Buddhist painting of Yeongnam region over two decades. He engaged in making Buddhist paintings and states in the place of Buddhist painting inside the Beomeosa Temple, where he also trained disciples. The core of his works lied in the succession of tradition. He lived in the period when estern culture was being mass introduced to this country from Japan and the West and when techniques of Western painting are rapidly substituting those of Korean traditional painting. At that time, Wan Ho established his own painting style while succeeding the traditional painting style. He was not only the last successor of traditional Buddhist painting, but also the initiator of modern Buddhist painting, Thus, researches on him is very significant in establishing the cultural history of Busan as a part of its modern history. This study does not focus on aesthetic discussions about his works which are still remained. Rather, the study focuses on seven unsolved problems or questions about his life that were raised by previous studies. Findings of the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He left home to be a Buddhist priest at the age of between 23(1892) and 27(1896). He joined the Buddhist world at the Beomeosa Temple. He managed the place of Buddhist painting which were inside Haehangdang as a building of the temple. Later, the place of Buddhist painting was managed by his disciple, Wolju Deokmun until 1969. It had been uncertain when and how long Wan Ho stayed at Bokcheonam. But as records on the construction of the present Bokcheonsa Temple were discovered in 2008, it was found that Bokcheonam was founded in 1921 and he stayed there for about 10 years from September, 1921 to his entering Nirvana, Genealogically, Wan Ho`s painting style was transmitted by a school of Buddhist painters, but by Buddhist individuals who he privately tutored, Finally, the year when he entered Nirvana was found 1931 in accordance with records by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In this case, registers filed in Yeongdo-gu Ward Office which specified Wan Ho entered Nirvana in 1933 were not considered. It is fortunate that the seven issues were solved, so that we could have more access to Wan Ho`s life. In the late Chosun period, Wan Ho was the last person who succeeded the painting style of Yeongnam region. He kept the techniques of traditional painting only through his efforts without the help of private tutoring. He brought up disciples who in turn transmitted the traditions of Buddhist painting. Even in the dark age of the Korean nation, he protected the value of traditional Buddhist painting from being contaminated by the trends of the age. He raised Buddhist art to a higher level, giving a fresh shock on modern Buddhist painting and making the cultural and artistic circles of Busan newly illumin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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