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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암 박인호의 동학 이해와 근대성- 천도교 개편과 민족문화운동을 중심으로 - = Donghak Understanding of Chun Am Park, In-Ho and Modernity- For the Cheondogyo Reorganization and the National and Cultural Movement
저자
조극훈 (경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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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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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79-228(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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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paper I will try to investigate the present meaning of the Park, In-Ho’s Thought of Donghak through his Cheondogyo Reorganization and the National and Cultural Movement. Park, In-Ho(1855-1940) was born 1855 in Deoksan, Chungnam and entered Donghak 1883 and he was become the 4th highest priest of Cheondo Religion and National Leader acting the modern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He has participated in a recourse for Donghak’s truthful Meaning in Gwanghwamun and in Revenge of the founder of a religion movement in Jangaeri, Boeun and after win a victory in Seungungok Combat and Shilaewon Combat as a leader of Deoksan during Donghak Revolution.
After the Cheondogyo Reorganization he has reorganized the System of Cheondogyo through setting the Church Law, reestablishing of the 5 ritual of the Church, and unfolding the Educational and Cultural Movement. In particular, he has participated in Samil Independence Movement, 6.10 Hurrah Movement and Shinganwhae through the monetary support. This movement remains open-minded character of him in present day. Because he had embrace all the differential political ideology and partisan Also he launched Prayer Movement to ruin Japan. This movement has a spiritual value that it is the religious resistance movement in the inner religious society.
In this study we know that his Donghak Understanding is so colourful as revolutionist, religious leader, educator, and cultural and political leader. In particular he lived simultaneously with period of Donghak and Cheondogyo that he practiced the Donghak meeting Choi, Shi-Hyung of Donghak and learned modernity from Son, Byeong-Hee of Cheondogyo. The spectrum of his thought and mind is so deep and colourful that the dichotomy between old party and new party, Donghak and Cheondogyo, Shi Chun Ju and In Nae Chun, I and You has all but collapsed in it. This broad-mindedness is present meaning of him.
본 연구는 동학의 천도교 개편 과정과 민족 문화운동을 중심으로 박인호의 동학이해와 근대성의 의미를 반성함으로써 박인호 사상의 현재적 가치를 밝혀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춘암 박인호(1855-1940)는 충남 내포 출신 동학 천도교의 제4대 교주이며 자주독립운동을 주도한 민족지도자였다. 1883년 동학에 입도하여 광화문 복합상소와 보은 장내리의 교조신원운동에 참여하면서 교단의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덕산의 대접주로서 면천의 승전곡 전투와 예산의 신례원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동학농민혁명 이후에는 동학 재건에 노력을 기울였으며 갑진개화운동을 주도하면서 동학교도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려고 노력하였다.
1908년 천도교 제4대 교주가 된 박인호는 천도교대헌을 제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교단의 정비를 시작하여 교당이전이나 교구의 증편, 주문, 기념가, 법문, 오관종규 등의 의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교리강습소를 설립하여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하는 한편, 보성학교와 동덕여학교 등을 인수하여 체계적으로 교육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박인호는 3.1운동에 경제적 지원을 했으며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에 대해서도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 참가하였다. 다양한 정치 이념과 분파를 넘어서 하나의 단일 정당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박인호 사상의 포용성을 보여준다. 또한 멸왜기도운동도 교단 내 종교적 저항운동으로서 높은 정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상의 논의에서 박인호의 동학이해는 그 스펙트럼이 다채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혁명가로서, 종교지도자로서, 교육자로서, 또는 문화인으로서 다양한 모습을 통해 천도교의 근대화에 앞장섰다. 더욱이 박인호는 해월 최시형을 만나 동학 입도 및 수련을 하였고, 의암 손병희로부터는 도통을 이어받음으로써 동학 시대와 천도교 시대를 함께 살았던 것이다. 그만큼 그의 생각과 사상은 그 스펙트럼이 다채로울 뿐만 아니라 깊이도 깊다. 구파 신파, 시천주 인내천, 동학 천도교, 교정쌍전 교정일치와 같은 이분법은 박인호의 폭넓은 동학의 스펙트럼에서는 해소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박인호의 인품이며 인문정신이다. 동시에 오늘날 천도교가 처해있는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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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12-23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urnal of Donghak Studies ->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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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 | 0.7 | 0.6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8 | 0.55 | 0.797 | 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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