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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義湘)의 행로(行路)와 사상적 변화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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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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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220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85-107(23쪽)
제공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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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의상의 생애를 지엄과의 만남, 귀국의 동기, 부석사행, 그리고 부석사 시절의 사상적 경향과 특징이라는 네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검토의 결과를 간단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첫 번째는 스승인 지엄과의 만남은 유식에서 화엄가로의 사상적 전환을 의미하는 사건이다. 두 번째는 중국 화엄교학의 기초자인 지엄의 입적 및 동문의 사제인 법장과의 갈등을 계기로 이루어진 귀국인데, 이 귀국은 지엄 이후 의상과 법장을 대표로 하는 海東華嚴敎學과 中國華嚴敎學의 사상적 분기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浮石寺行인데, 이 부석사행은 의상이 중국 화엄의 전래자가 아니라 해동화엄사상의 開祖로 나아가는 계기로 작용한 사건이다. 가정이지만 의상이 왕경인 경주 인근에서 주석하였다면, 이후 의상계 화엄 혹은 해동화엄이라 불리는 독특한 사상적 전통의 형성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의상계의 문헌들은 대부분 이두를 사용하여 작성되었고,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깨달음의 전승방식 등 당시의 신라 불교계 혹은 중국 화엄종과는 대단히 다른 독특한 사상전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전통은 좀더 오픈되어 있었을 신라 왕경의 불교계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되기는 조금 무리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논자의 의견이다. 또한 의상의 제자들이 좀더 당시 王京 경주의 주류불교의 흐름에 익숙했던 王京 출신의 상류층으로 구성되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의상계만의 독특한 전통은 역시 형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곧 부석사행은 일정 부분 신라 왕경 지역 불교계의 흐름과 격리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것은 역으로 의상계 화엄이라는 독특한 전통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네 번째는 부석사 시절의 독특한 사상적 경향에 대해서인데, 부석사 시절의 사상에는 북종선과 지론종 그리고 삼계교의 사상적 영향이 훨씬 더 구체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의상과 그의 직전제자들에게서는 지론종 그 중에서도 대단히 특징적이고 예외적인 흐름으로 생각되는 지론종의 『七宗禮法』및 교리집성문헌 Φ180의 영향이 보인다. 이들 예외적이고 독특한, 그리고 지엄의 입적을 전후해서 의상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이는 지론종 一派의 사상은, 부석사 시절 제자들에게 사상이 전승되는 동안 더욱 구체화되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를 계기로 성기사상이 더욱 강화된 것은 물론 구제론적이고 구체적이면서 실천적인 화엄의 형성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동아시의 불교사상의 한 주류를 이루는 화엄사상의 성립과 그 양대 조류의 분기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보기In this paper, I divided Uisang(義湘)`s life into four periods: his visiting Zhiyan (智儼), his motive of returning to homeland, his entering Buseoksa(浮石寺) Temple, and his ideological tendency and characteristics in Buseoksa Temple. The brief result is as follows: First, his visiting his teacher of Zhiyan was an ideologically transformative event which changed the Weishi(唯識) scholar into Huayan(華嚴). Second, his returning to homeland, which was brought by the death of Zhiyan, the drafter of Chinese Huayan Thoughts, and by conflict with Fazang(法藏), a fellow student under Zhiyan, could be a ideological watershed, after Zhiyan, between Korean Hwa-eom Thoughts with Uisang as the representative and Chinese Huayan with Fazang. Third, his entering Buseoksa Temple was an event that invested him with the founder of Korean Hwa-eom Thoughts, not the successor of Chinese Huayan. If he had dwelled near the capital city of Gyeongju, we cannot assert easily that the unique ideological tradition, which is called Korean Hwa-eom or Uisang-line Hwa-eom, could have been able to be formed. As is generally known, Uisang-line masters wrote most their books in Idu(吏讀) system, which is old Korean notation with Chinese characters before inventing Korean own characters, and they formed specific tradition including the way of which enlightenment was passed down from a teacher to a student, which was very different from Silla buddhism or Chinese Huayan School in that time. They might have had difficulties to form such specific tradition by themselves, I think, if they had been within buddhist world near the capital city which had been even opener than Buseoksa Temple. Also, I think, if Uisang`s students had been from the high class, more familiar with main stream of Buddhism of the capital city, they could not have built their own specific tradition as we know now. In a word, Uisang`s entering Buseoksa Temple brought about a result of isolation from Buddhist tendency of the capital city to some degree, and inversely, this isolation would be benefit for them to form their unique tradition of Uisang-line Hwa-eom. Fourth, his ideological tendency in Buseoksa Temple was characterized as much more concretized ideological influence of Northern Zen, Dilun(地論) School, and Sanjiejiao(三階敎). Especially, Uisang and his direct students were affected from Dilun School, and their thoughts show influence from the Qizonglifa(七宗禮法, the Seven Kinds of Worship) and the Collected Texts of Doctrine Φ180 which are taken as extraordinary and exceptional Dilun texts. These exceptional and specific thoughts of one sect of Dilun School seem to exert influence on Uisang before or after Zhiyan`s passing away, and seem to more concretize while being transmitted to his students at Buseoksa Temple. With this as a moment, they was not only thought to tighten their thoughts of Nature Arising(性起) up, but also to build their soteriogical, concrete, and practical Hae-eom thoughts. These established, we can see, specific Hwa-eom thought which became mainstream of East Asian buddhist thoughts, and played a role of a sort of watershed between Fazang line and Uisang line, two major trends of East Asian Huayan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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