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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영화, '가난 혐오'와 청년 = 21st Century Korean Cinema, 'Hatred of Poverty' and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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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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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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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절대적 빈곤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 시대이다. 그러나 빈민의 비율이 낮고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 쉬워 보인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큰 오명을 감당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가난한 사람을 혐오의 대상으로 호명하는 다양한 말들의 출현이 증명하듯이, 가난은 감춰야만 하는 부끄러움이 되었다.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서 마음의 병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논문이 관심을 두는 것은 가난을 재현한 동시대 한국영화이다. 청년의 문제적 현실로 가난에 주목한 2010년대 이후의 영화가 주 대상이다. 영화가 본질적으로 공적인 영역에 속해 있는 공동체의 이야기라는 전제 하에, 스크린에서 가난한 청년이 서사화되는 양상을 논하고, 그를 통해 이 시대의 주요한 정동을 밝혀보고자 한다. 가난을 상상하는 영화는, 우리 내부의 욕망과 불안을 대면할 기회와 함께, 이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체계와 사회 전체에 공유된 심리적 리얼리티를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가난한 청년을 서사의 중심으로 호출한 지금의 영화들은, 네이션의 역사나 사회현실과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가난을 맥락화했던 과거와는 달리, 시대적 현실과의 연관성을 지워버렸다. 가난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로 재현된다. 지금의 청년은, 성장기부터 높은 강도의 경쟁을 치르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매우 적은 세대이다. 청년 세대가 마주한 성장의 어려움과, 선택과 책임이라는 변수가 개입하면서, 영화 속 가난의 현실은 한층 복잡하고 어두운 심리적 풍경을 갖게 되었다.
이들 영화에서 청년은, 잠잘 곳을 찾아 떠도는 ‘홈리스’의 모습으로, 모든 사적 관계가 와해되는 고립의 상황으로 재현된다. 또한 가난한 청년을 구분하고 낙인찍는 다양한 혐오발언이 어김없이 등장하며, 그 중에서도 같은 처지의 가난한 청년들이 서로를 향하여 내뱉는 자기혐오는 주목을 요한다. 성별에 따라 마음의 상태가 달라지긴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가 공들여 재현하는 것은, 가난한 청년이 점유하는 공간이 좁아지는 과정과, 관계가 단절되고 낙인과 모욕을 당하는 순간이다. 일체의 희망이 없이 파멸이나 고립으로 끝나는 이들 영화는 현대인의 소외감보다 더욱 암울한 정동을 전면화한다. 주인이 되기보다 종속의 길을 선택하는 청년의 모습은, 출구 없는 세상에 대한 불안과 자기혐오를 내장한 청년세대의 우울한 자화상을 이룬다.
이러한 영화적 현상의 배후에 놓인 것은 능력주의를 전면화한 메리토크라시이다. 이 시대의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레짐인 메리토크라시는 아리스토크라시에 비한다면 민주적이지만, 지속적인 불안을 낳고 혐오를 양산하는 원인이 된다. 능력과 성과와 보상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메리토크라시 하에서는 평범한 사람들도 패배자의 마음과 가난의 정서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내면화되면서 매우 절망적인 현실인식과 자기혐오가 만연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공동체 전체가 나설 때 비로소 해결될 난제이다. 일종의 공공기록인 영화는 능력주의와 성과주의가 낳는 압력을 줄이고 혐오를 완화시킬 하나의 정동적 방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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