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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역 천도교인의 3ㆍ1만세운동 전개 = Development of the March First Movement among Cheondoists in Chung-nam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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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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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39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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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2월 1일 천도교가 창건된 후 교단은 체제정비에 착수했다. 이러한 중앙의 체제에 맞추어 충남에서도 1905년부터 꾸준히 교구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될 정도로 교세가 빠르게 확대되어 갔다. 충남에서는 1906년 서산과 홍주교구를 시작으로 총 14개 군에 25개의 교구가 설립되었고, 서산과 당진 두 곳에 대교구가 조직되었다. 이러한 충남지역의 교세신장은 다양한 포교활동 덕택이었다. 천도교는 교단 자체적으로 교구장과 지방의 각 교구들을 감독하는 등의 제도와 교단의 청년조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조직적인 포덕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16년 7월에 충남지역의 천도교구수는 11개, 신도수는 16,219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러한 충남의 급격한 교세 신장은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던 전교실 신축과 교구 확장으로 인한 교구 마련 등을 통해 반영되었다.
1905년 동학이 천도교로 바뀐 이후 조직이 정비되어 각 지방까지 자리매김을 한 결과물이 천도교의 3․1만세운동이었다. 서울에서 먼저 일어난 3․1만세운동은 독립선언서가 각 지방으로 배포되면서 확산될 수 있었다. 충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독립선언서가 배포된 곳은 논산이었다. 논산과 지리적으로 이웃한 전라북도 익산군 함열 천도교구에서 논산의 천도교구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고, 이를 받은 논산의 천도교인 김태호와 이백순이 부여와 논산에 배포하면서 충남지역의 3․1만세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다.
충남의 각지에 있던 천도교인들은 3․1만세운동을 주도하거나 참여하는 방식으로 독립의 염원을 표출했다. 공주지역의 천도교인들의 3․1만세운동은 어느 지역보다 높은 강도의 실형을 받았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3․1만세운동이 펼쳐진 지역이며, 논산은 3․1만세운동의 시작과 끝을 천도교인이 주도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부여는 논산에서 배포한 독립선언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많은 천도교인들이 참여한 3․1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서산은 기독교와 천도교가 연합하여 3․1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아산은 권병덕의 지시를 통해 3․1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대교구가 설립될 정도로 천도교 세력이 강했던 당진에서는 천도교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3․1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지역이다. 이밖에도 예산, 홍성, 태안에서도 천도교인들의 3․1만세운동 참여 등이 확인된다.
Right after its foundation in December 1st, 1905, Cheondo-kyo Order started the organizational adjustment.
To keep up with the systematic progress of the headquarters, there had been various attempts to establish the local diocese in Chung-nam. Cheondoism rapidly gained broad acceptance and expanded the congregation.
Starting with the Seosan and Hongju dioceses in 1906, a total of 25 dioceses had been established in 14 counties, organizing the archdiocese in Seosan and Dangjin respectively.
This rapid expansion was all due to diverse mission activities.
Cheondo-kyo successfully utilized the youth organizations for missionary work. They supervised bishops and local dioceses by themselves.
Consequently, the number of local dioceses in Chung-nam had reached 11, with 16,219 followers.
More dioceses were organized and more temples were built nationwide. These led to rapid growth in congregation in the area.
Cheondo-kyo, originated from Donghak("Eastern Learning") in 1905 had evolved and came to be widespread in the country. And its outcome was labed the Cheondoist March First Movement.
The March First Movement, which first started in Seoul, was spread by distributing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t was Nonsan where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as handed out in Chungnam area.
The Nonsan diocese received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through the Hamyeol diocese of Iksan, Jeonbuk which is geographically adjacent to Nonsan. Kim Taeho and Lee Baeksoon, Cheondoists in Nonsan, received and distributed the Declaration in the area of Buyeo and Nonsan. And , as a result, the March First Movement in the Chungnam area could develop.
Cheondo-kyo followers took part in the March First Movement, and often very actively. It was their way of expressing their greatest wish for the Independence.
Cheondo-kyo believers in the Gongju area were severely persecuted, implication being they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3.1 Movement. It is extremely significant that the Cheondo-kyo followers took the lead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of the Movement.
It is also considered very meaningful that Cheondoists in Buyeo joined the 3.1 Movement inspired by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from Nonsan whereas Christians and Cheondoists joined forces in Seosan. Kweon Byung-deok led the Movement in A-san.
Cheondo-kyo was so influential in Dangjin that it could even open the archdiocese, It is noticeable that a large number of Cheondoists gathered for the March First Movement in the area. It was recorded that Cheondoists in Yesan, Hongseong, Tae-an, and many more areas volunteered to joine th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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