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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자 오다 쇼고(小田省吾)의 경성제대 교수 활동과 조선사 인식 = Colonial Historian Oda Shogo (小田省吾)’s Teaching Profession at Keijō Imperial University and Recognition of Chosun History
저자
최혜주 (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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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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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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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83-129(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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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a Shogo (小田省吾) came to Chosun in 1908 and lived there for 37 years. He was a person that supported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to compile textbooks and found Keijō Imperial University, participated initiatively in organizing Japanese’s Chosun research groups, and contributed to creating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by laying the grounds for colonial education.
First, Oda regarded that the mission of Keijō Imperial University should be studying Oriental culture, cultivating colonial officials, and completing the project of harmonizing and unifying the two races. He insisted that the mission should be promoted by ‘Japan’s mind’ as the driving force. He devoted his whole life to etching the ‘Japan’s mind’ into Chosun.
Second, the professors of history in Keijō Imperial University took the lead in distorting history in the name of studying Chosun’s culture and history. Oda deemed that investigating and understanding Chosun history should be the most essential thing in ‘harmony and union between Japan and Chosun’. As a professor of Keijō Imperial University, the goal was to insert distorted Chosun history to students and justify Japan’s rule over Chosun.
Third, Oda wrote history of Chosun, which came from the necessity to reorganize Chosun history grounded on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to fight against Chosun’s resistance to Japan after the 3.1 Movement. Distorting the history of Dangun in Chosun that is up to 2,000 years ahead of Japan’s history, he negated Dangun. He produced Ilseondongjo-ron saying Amaterasu’s brother, Susanoo, crossed into Chosun and also Tayulseong-ron saying the south of Chosun in the ancient times was Japan’s colony.
Fourth, being engaged in Cheongguhakhoe, Oda strived to study the history of party strife by extending the research on the dismantlement of Chosun history, persecution on Catholicism, and Hong Gyeong-rae’s Revolt. He supported Dangpaseong-ron saying the cause of Chosun’s collapse was from not Japan’s invasion but its own party strife. Later, Ilseondongjo-ron stressing intimacy between Chosun and Japan and Tayulseong-ron saying Chosun had been ruled by Japan from the ancient times in the history were established. Oda spread the origin of colonial rule and the theory for justification by doing the teachings at Keijō Imperial University and activities in Cheongguhakhoe.
오다는 1908년 내한이후 37년 동안 조선에 살면서 총독부의 교과서 편찬사업을 주도하고 경성제대 교수로 활동하였다. 또한 일본인의 조선연구 단체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식민교육의 기초를 만들어 식민사관 창출에 기여한 인물이다.
첫째, 오다는 경성제대의 사명을 동양문화를 연구하고 식민관료를 양성하여 양 민족이 융화 결합하는 사업을 완성하는 것에 두었다. 이 사명은 ‘일본정신’을 원동력으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일본정신’을 조선에 부식시키는 데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둘째, 경성제대 사학과 교수들은 조선 문화와 역사를 연구한다는 미명하에 역사왜곡에 앞장섰다. 오다는 조선의 역사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일선 융화의 결합’에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경성제대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왜곡된 조선사를 주입하여 일본의 조선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셋째, 오다의 조선사 저술은 3.1운동 이후 한국인의 항일운동에 대항하여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선사를 재구성할 필요에서 나왔다. 일본의 역사보다 2천년이나 앞서있는 단군조선의 역사를 왜곡하여 단군을 부정하였다. 아마테라스의 동생 스사노오가 조선에 건너갔다는 일선동조론과 상고시대 조선의 남부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타율성론이 만들어졌다.
넷째, 오다는 청구학회 활동을 하면서 조선사적 해제, 천주교 박해와 홍경래 난에 관한 연구를 확대하여 당쟁사 연구에 매진하였다. 조선 멸망의 원인도 일본의 침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쟁 때문이라는 당파성론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근친성을 강조하는 일선동조론과 역사적으로 고대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아왔다는 타율성론이 식민사관으로 정립되었다. 오다는 식민지배의 기원과 정당성을 찾는 이론을 경성제대 교수 및 청구학회 활동을 하면서 전파시켜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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