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日本 出土 百濟(系)土器: 出現과 變遷 = Baekje Style Pottery excavated in Japan: Its Advent and Changes
저자
츠치다준코 (충남대학교)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PAEKCHE RESEAR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81(81쪽)
KCI 피인용횟수
4
제공처
본고에서는 일본 출토 백제(계)토기 연구에 대한 성과를 집성한 후 공반된 須惠器의 편년을 통해 백제토기 편년의 흐름을 살펴보려고 시도하였다. 또한 백제(계)토기의 반입지를 추정함으로써 언제, 어떤 지역 집단과 교류했는지 검토한 후 일본 출토 백제(계)토기의 추이와 역사적 의의를 추출하였다.
일본에서는 2세기 후반대 마한토기가 처음으로 출토되었고 4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양이부호를 비롯한 이중구연토기, 견부압날문토기가 북부 九州에 국한해 분포했다. 북부 九州에 서울, 청주 등 백제 중앙 지배지역으로부터의 반입품으로 추정되는 조족문 호가 확인된 것은 백제가 4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북부 九州의 호족들과 교섭한 흔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시기 近畿지방에서 처음으로 마한토기가 출현했던 점도 주목된다. 그러나 5세기 전반이 되면 一變하여, 다량의 마한토기가 출토되던 近畿지방에 갑자기 백제지역의 토기(백제 중앙의 토기와 신백제영역의 토기)도 함께 확인되기 시작했다. 이는 백제 중앙뿐만 아니라 일부 백제의 지방세력들이 각자 倭의 수장들과 대외관계를 맺고 있었던 증거로 볼 수 있다. 이러한 近畿지방에서의 마한 및 백제토기의 증가는 고구려의 남침에서 파급된 한반도 정세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세기 후반이 되면 다시 마한ㆍ백제토기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대해 475년 고구려의 한성 함락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발생한 백제 난민들 중 일부가 渡倭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분명 한성 함락 이전에도 교섭활동으로 반입된 토기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최근 일본 須惠器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6세기대 백제와 大和정권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일본 내 백제(계)토기 출토 현황을 보면 이전 시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난다. 그 원인에 대해 백제의 중앙집권체제의 강화, 일본 내 도래인 기술자 수요의 저하와 도래지식에 대한 왕권의 독점 등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시 백제토기가 증가하는 시기는 7세기 이후이다. 九州에서의 출토량은 현저히 줄어들고 近畿지방에 집중된다. 출토 기종구성을 보면 벼루, 전달린토기, 대부완 등 왕실이나 상류 계층에서 사용한 토기이기 때문에 백제 사절단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대부분 사비에서 반입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중앙집권체제 아래 일원화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urrent of chronology of Baekje style pottery through the chronology of associated Sueki in an effort to compile Baekje style pottery excavated in Japan. In addition, this study investigates changes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Baekje style pottery with the focus on its time and active local groups of changes by estimating entry locations.
For the first time, Mahan’s pottery from the late 2nd century were excavated in Japan. Also, Baekje style pottery were discovered in Kyusyu area in the late 4th century.
However, this trend was changed all of a sudden at the beginning of 5th century. In specific, Baekje style pottery was discovered mainly in the outskirts of capital, which may support the idea that not only powerful groups in the capital areas but also leading local influences had a foreign relation with heads of Japan. Increased pottery may be considered as the results of changed political situation, influenced by Koguryeo invasion of the South. On top of that, MahanㆍBaekje potteries were increased in the late 5th century, which may indicate that some refugees arrived in Japan temporarily after the capital was captured by Koguryeo.
Even though it is clear that Baekje and Yamato government had a close relation in the 6th century, Baekje style pottery was dramatically decreased in Japan during this time. This may manifest that centralization of power was enhanced; demand of migrants technicians from Korea was decreased in Japan; and migrants’ knowledge was monopolized by royal authortiy.
However, Baekje style pottery increased again after the 7th century, mainly discovered in the area nearby capital. There is great possibility that delegation of Baekje might use them because potteries forthe upper classes were excavated during this time. Also, most of them were confirmed to be carried into Japan from Sabi. This can be interpreted that the route of relation between Baekje and Japan was unified as a result of the centralization system of government.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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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2 | 0.82 | 0.8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5 | 0.87 | 1.843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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