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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화교류와 통신사 필담창화집 ; 임술(壬戌) 1682년 사행(使行)과 후지산시(富士山詩) -소신(祖辰)을 중심으로- = Cultural Exchanges in East Asia and Collections of Exchanged Correspondences and Poetry of Chosun Missions to Japan ; Mt. Fuji`s Poem of Diplomatic Missions in Chosen and Japan in 1682: The Case of So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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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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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07(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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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壬戌, 1682)년에 이르러서야 흐릿하게나마 에도(江戶)시대 통신사 일행과 일본인과의 필담창수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전 통신사 시기 린케(林家)와 이사카와 죠잔(石川丈山)의 필담창수는 일본 측의 기록이 남아 있으나 다른 문사의 필담창수는 조선 측 사행록에만 기록되어 있다. 임술년 대마번(對馬藩)에서는 필담창수하는 자리에 코야마 쵸산(小山朝三) 혹은 세잔지(西山寺) 주지(住持)인 바이잔(梅山)을 동석하게 하였다. 또 필담·창수뿐만 아니라 서화(書畵)를 청하는 것도 모두 대마번을 통해야 하였고, 일본에서 기피하는 문자를 사용하지 말 것, 특히 1655년 때 그림을 그려주는 대가로 금과 은이 지불된 사례가 있었고, 이테안(以酊庵) 승려와 남용익(南龍翼) 사이에서는 후지산과 금강산에 관한 우월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후지산(富士山)을 비방하는 것과 같은 발언이 없도록 삼사 일행에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의 필담·창수는 모두 기록하여 막부(幕府)에 제출해야 한다고 삼사 측에 전하고 있다. 이전에는 자유롭다면 자유롭고 무질서하다면 무질서한 필담창수가 행해졌는데, 임술(壬戌) 텐나(天和) 때(1682)에는 엄격한 규제를 실시하려고 한 최초의 통신사 사행이 되었다. 코야마 쵸산이 필담창수 자리에 동석하였다는 것은 대마도 종가문서(對馬島宗家文書)를 비롯한 각종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막부에 제출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코야마 쵸산 등이 필담창수를 기록한다는 방침을 고수함으로써 임술(壬戌) 1682년 때에는 『와칸쇼슈슈(和韓唱酬集)』라는 대작이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일본 사람 뿐만 아니라 조선 측에서도 취허(翠虛) 성완(成琬)은 에도에서의 필담창수를 스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和韓唱酬集』에 수록되어 있다. 기록하여 막부(幕府)에 제출한다는 방침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사 측과 필담창수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진 이테안(以酊庵) 승려와 세잔지(西山寺) 주지(住持) 그리고 코야마 쵸산(小山朝三)의 필담창수는 간행본 『和韓唱酬集』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필담·창수는 했지만 기록을 담당했던 코야마 쵸산 등은 정작 자신들의 작품은 싣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코야마 쵸산 등과 같은 입장에 있던 겐신(玄森)이라는 사람이 병에 걸려 오사카(大坂)에서 교토(京都)에 직행한 후 그 임무를 대신한 사람이 바로 난슈 소신(南宗祖辰)이다. 난슈 소신은 오사카에서 삼사 일행에게 시를 보내고 화답시를 받았으며, 또 후지산(富士山)의 시를 보내 화답시를 받았다. 또한 종사관 박경후(朴慶後)의 경우 스스로 후지산시를 읊었는데 ``후지산의 시 12구를 보내어 세잔지(西山寺) 바이잔과 타이쿄 켄레(太虛顯靈) 스님들과 코야마 쵸산 및 나에게 차운을 구한다``라는 제목이다. 타이쿄 켄레와 세잔지 주지인 바이잔, 코야마 쵸산 그리고 난슈 소신에게 화답시를 요구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차운시를 보냈을 텐데 『和韓唱酬集』에는 난슈 소신의 화답시만 수록 되어 있다. 난슈 소신은 오사카에서 겐신(玄森)과 교대되었기 때문에 필담창수에 관한 대마도(對馬島)에서의 지시를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 후지산을 칭찬하는 난슈 소신과 대조적으로 삼사측은 지극히 이성적으로 응하고 있다. 에도 시내에 있는 대마번(對馬藩) 저택에서 삼사를 초청해서 이루어진 필담창수에서 막부의 가신이 삼사에게 후지산을 어떻게 보았는지 물어보는 데 대해서도 을미(乙未) 1655년 때와 같은 우열론을 펼치는 일이 없도록 히토미 카쿠잔(人見鶴山)이 원만히 화제를 바꾸었다. 난슈 소신을 예외로 하여 코야마 쵸산을 비롯한 일본인들은 후지산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난슈 소신야말로 임술년 사행에 있어 특이한 존재였다. 처음에 난슈 소신은 후지산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삼사 측이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자제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통신사 일행은 사행록을 예외로 친다면 일본에 관한 시는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홍세태(洪世泰)와 성완(成琬)은 귀국 후 후지산을 읊은 시를 남겼다. 거기에는 금강산과 우열을 겨루는 발상은 없다. 후지산이 어떤 산이었는지가 아니라 후지산 모습으로부터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어 귀국 후 읊었던 것이다. 일본 체재 중 일본 측 문사와 논쟁을 벌이거나 우열론에 빠지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통신사 일행이 칭찬을 아끼지 않은 코야마 쵸산이라는 인물의 존재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더보기Whole content between Chosen missions to Japan in the Edo period may be inferred through Conversation, by writing the Chinese poems (筆談唱酬) between Chosen and Japan from 1682. There are some records by Hayashi`s family and Ishikawa Jozan (石川丈山, 1583~1672) from the Japanese side, though Chosen records can only be found in Korea. In 1682, Koyama Chosan (小山朝三, ?~1684) and bonze from Seizanji Baizan (西山寺 梅山, ?~?) came to the Tsushima clan and get a position charged with writing, but not only writing, also all pictures were requested through the Tsushima clan. As a result, they had to avoid the characters disliked in Japan. In 1655, huge amounts of money were paid for pictures. Moreover, because of the dispute about the superiority or inferiority of Mt. Fuji and Mt. Kumgan between the Iteian (以酊庵) temple monks and Nam Youngik (南龍翼, 1628~1692), it was requested that the highest ranked representatives of the Chosen mission did not make any slanderous statements about Mt. Fuji. All correspondences were conveyed to representatives of the Chosen mission. It can be confirmed by various documents that when Koyama Chosan was charged his writing position in 1682, Koyama Chosan`s group published their first collection of writings called Wakansyousyusyu (和韓唱酬集). In Wakansyousyusyu, we find not only Chinese poems written by Japanese poets, but also Chinese poems written by Korean poets. Whether the anthology was made by the Shogunate order or not, we cannot confirm. However, in Wakansyousyusyu, we cannot see any Chinese poems written by the Chosen representatives, Iteian temple monks, Seizanji monks, or Koyama Chosan. In spite of the fact that Koyama Chosan`s group published Wakansyousyusyu, they did not include their own lyrics. Nansyu Soshin (南宗祖辰, 1631~1715), who replaced Genshin (玄森, ?~1682), was assigned the same position as Koyama Chosan. In Osaka, Nansyu Soshin gave lyrics to representatives of the Joseon mission and received the next verse, then provided a lyric about Mt. Fuji and again received the following verse. Afterwards, while going over these lines, Park Kyong Hoo (朴慶後, 1644~?) composed his own poem. He asked to add some lyrics to Taikyo Kenrei`s (太虛顯靈), Seizanji Baizan`s, Koyama Chosan`s and Nansyu Soshin`s verses. However, in Wakansyousyusyu, we can see only Nansyu Soshin`s verses. This may be due to Nansyu Soshin himself, who had reassigned Genshin and who did not know about Tsushima`s agreement. In opposition to Genshin`s poem, which extolled the marvelous nature of Mt. Fuji, the lyrics written by the representative of the Chosen mission were restrained. When officials of the Shogunate asked the Chosen representatives about their impressions with Mt. Fuji, due to Hitomi Kakuzan (人見鶴山 1638~1696), the questions about the superiority or inferiority of Mt. Fuji did not continue and the delicate situation was resolved. However, Nansyu Soshin, Koyama Chosan and others were not impressed with Mt. Fuji. Rather, Nansyu Soshin took a unique stance in 1682. At first, he had shown preference for Mt. Fuji, but then started to change his mind after receiving the verses from the representatives of the Chosen mission. In general, the Chosen representatives never left any written comments about Japan (except travel reports). However, Sea Tea Hong (洪世泰, 1653~1725) and Wang Song (成琬, 1639~?) left their poems about Japan. There were no competing disputes between Mt. Fuji and Mt. Kumgan. After returning to Korea, the poets focused on the landscape around Mt. Fuji instead of writing of Mt. Fuji as a mountain. During their stay in Japan, they did not dispute with the Japanese and did not yield to feelings of superiority or inferiority. And it is all thanks to Koyama Cho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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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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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4-01-20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DONG BANG HAK CHI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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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23 | 1.23 | 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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