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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일제강점기 세종지역의 국권회복운동과 사회운동 = Movement for Regaining National Sovereignty and Social Movement at Sejong A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저자
이성우 (충북대학교 사학과)
발행기관
학술지명
한국 근현대사 연구(Journal of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7-67(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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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late period of Joseon, the Ganjae school was formed at Sejong area. Ganjae, Jeon Woo did educational activities in Chung-cheong-do, and Sejong area was the center of the Ganjae school. the Ganjae school produced many men of letters and tended to focus on pursuit of study rather than raising an army, so Confucian scholars at Sejong area did not actively participate in the war of righteous army. All the Confucian scholars could not be considered as the Ganjae school, but formation of the Ganjae school was one of the reason why activities of the righteous army were inactive. Jang, Jae Hak, Jang, Jae Kyu, and Jang, Hwa Jin, some of the Ganjae school led rejection census registration and tax payment after Japans’ colonization of Joseon. It was the will of anti-Japan of the Ganjae school at Sejong area.
The establishment of private schools was the central part of the enlightenment movement at Sejong. The Kiyang school, Il-eo school, Baedal school, Daedong school, Gwangdong school, Gwangdong cheuk-lyang school were established at Sejong area, and the Baedal school and Daedong school were the representative.
In 1908, The Baedal school was established, and turned to Yeonki public primary school, the first public primary school at Sejong area in 1912. The Daedong school was established at Jeonui in 1908. Founders of the Daedong school were participated in the Daedong hakhoe, and established Jeonui branch of Daedong Hak-hoe. When they established Jeon-ui branch of Daedong hakhoe, they also established the Daedong school, and instructed the science of law at the Daedong jeonmun school which was established by Daedong Hak-ho.
At Sejong area, Yeonki cheong nyeon hoe and Kumnam cheong nyeon hoewere organized and led youth movement. Compared to the national movement during 1920s, however, it was very inactive. Futhermore, the two organizations were not developed to revolutionary stage, but only conducted cultural movements.
At Sejong area, the Jochiwon labor union was organized, but was inactive. Also, Bakjeongjaesa and workers at Jochiwon station struck, but the strike did not expand to joint strike of workers at Sejong area. It was due to lack of revolutionary groups at Sejong area. There was no group of men advocating a particular doctrine of ideology, and so-called Sam-chong related groups at Sejong area.
세종지역은 한말 간재학파가 형성된 곳이다. 艮齋 田愚는 충청도를 중심으로강학활동을 전개했고, 세종지역에서는 다수의 문인들이 배출되었다. 세종지역 유림들은 의병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간재학파가 擧兵보다는 講學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세종지역 유림을 모두 간재학파로 볼 수는 없으나 간재학파의 형성은세종지역에서 의병전쟁이 활발하지 못했던 요인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세종지역문인들은 한일강제병합 후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세종지역 계몽운동은 사립학교 설립운동이 중심이었다. 세종에서는 기양학교·일어학교·배달학교·대동학교·광동학교·광동측량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세종지역 대표적 사립학교는 배달학교와 대동학교였다. 배달학교는 1904년 연기군 남면에 설립된 기양학교를 계승해 1908년 설립되었으며, 1912년 연기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받으면서 세종지역 최초의 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대동학교는 1908년 전의에서 설립되었다. 대동학교 설립주체들은 대동학회에 참여하고 있었고, 대동학회 전의군지회를 설립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전의군지회를 설립하는 시점에 대동학교를 설립하고 법률학을 중심으로 교육운동을 벌였다.
세종지역에서는 연기청년회와 금남청년회가 조직되어 청년운동을 전개했다. 두청년단체는 혁신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문화운동을 전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세종지역에서는 조치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나 노동조합차원의 활동은 전개되지않았고 백정제사와 조치원역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파업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들의파업은 세종지역 노동자들의 연대파업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일회성 파업에 머물렀다. 이러한 원인은 세종지역에서 혁신세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세종에서는 사상단체가 조직되지 않았으며 소위 3총(청년·농민·노동총동맹)과 관련된 단체도 조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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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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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6 | 0.66 | 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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