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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 결전 직전의 국제정세 = The International Situation before the Battle of Hwang San B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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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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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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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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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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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stern problem was urgent-for Tang China(唐). The situation that Western Truks(西突闕) put Tang China to the sack continued. AD657, Tang China and western Truk finally entered into a state of the major war. Tang China won the ultimate victory. But Tang China needed to consolidate its position as the ruling class in the area of western Truk, the countries bordering on Western China. In November 659 a rebellion broke out against Tang China. The powerful Tibet Empire(吐蕃) that increased the power in Tibet Plat also watched for an opportunity to get the Silk Road. The situation was bad, but Tang China made the decision to send troops to Paekche(百濟) in 660. It was an incontestable fact that the decision of Tang China was insane. it was closely connected with the replacement of the ruling powers. Kao-tsung(唐高宗)(649-683)was in bad health. The Epress Wu(則天武后) take over the reigns of Tang Court. The Court was divided into two factions. They were San-tung(山東) and Kuan-lung(關隴). The Epress Wu stood proxy for San-tung. The elarly governing classes of Tang China were Kuan-lung aristocracy(關隴集團). But Kao-tsung deprived the member of Kuan-lung aristocracy The Epress Wang(王皇后) of the position. Kuan-lung aristocracy tried to acquire rights about the Silk Road. On the other hand San-tung aristocracy made an endeavor to acquire concessions about Manchuria and Korea. The Silk Road of the countires bording on Western China that did not belong in the profit of San-tung aristocracy was a secondary issue. The Epress Wu seizure of power was a decisive factor in the Tang invasion of Paekche in 660.
더보기백제는 신라왕 김춘추가 당과 군사동맹에 오랫동안 힘을 쏟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과 신라의 군사동맹이 체결되어 백제를 협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희박했다.
백제 의자왕은 당고종 즉위 후 651년과 652년에 2회에 걸쳐 당나라에 사신을파견했다. 그것이 마지막 백제 견당사였다. 백제는 서역에서 장기화되고 있던 서돌궐과 당나라의 전쟁 소식을 듣고 신라와 당나라의 동맹은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당에 대한 서돌궐의 도발은 지속되었고, 신라의 파병요구도 힘을 잃었다. 결국657년 당과 서돌궐은 본격적인 전쟁상태에 돌입했다. 소정방이 서돌궐과 교전해대패시키고 승리을 거두었다. 8세기 동아시아, 제작자 : 이소재당의 주력 군대는 서돌궐을 제압한 후 서역에서 지배체제를 굳히고 있었다. 伊犁계곡과 Issyk-Kul지역에 있던 서돌궐의 옛 영토를 두 개로 분할 통치해야 했고,러시아령 타쉬켄트와 Oxus계곡 일대의 신강(新疆)서부에 위치한 서돌궐의 피지배민들도 당나라의 지배에 편제해야 했다.
당제국은 황해에서 페르시아 인근까지 세력을 뻗쳤다. 당은 서쪽으로 지나치리만큼 팽창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라센제국의 팽창에 맞서기 위한 당제국의 세계정책 때문이었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사라센제국의 침입에 의해 이미 멸망되었고,장안에 망명정부가 수립된 상태였다.
백제 수뇌부는 당나라가 파미르고원 넘어 실크로드지역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그보다 시장성이 떨어지는 극동의 한반도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659년 11월에 실크로드에서 당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타림 분지에서 서돌궐의 부족의 하나인 사길부 추장 도만이 소륵, 주구파, 알반타 3국과 함께 카슈가르를 공격했다. 더구나 티베트고원에서 흥기한 강력한 토번제국이 실크로드를노리고 있었다사정이 이러함에도 당조정은 660년 백제에 군대파병을 결정했다. 당조정이 너무나 비상식적인 판단을 한 것이 명백했다. 그것은 측천무후가 당조정의 권력을완전히 장악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당 고종은 건강이 좋지 못하였고, 559년 則天武后가 당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무후 옆에는 믿음직한 신흥지배집단 山東集團(東北中國河北․山東)의 거두 李世勣이란 거물이 버티고 있었다. 무후는 산동집단의 꽃이었다. 唐의 초기 지배집단은 關隴集團(西北中國陝西와 甘肅)이었다. 하지만 고종이 그 일원인 王皇后를 폐했다. 당조정에 지배층이 교체되었다.
관롱집단이 서역 실크로드에 이권이 많이 걸려 있었다면 산동집단은 한반도와만주에서 그러했다. 산동집단은 그들의 이익과 직접관계가 없는 서역 실크로드의유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산동파와 측천무후의 정권장악은 660년 당의 백제침공에결정적인 변수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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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3-26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육군본부 -> 육군군사연구소영문명 : Army Headqarters -> ROK Army of Military History Institute | KCI등재 |
2015-03-2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ROK Army of Military History Institute -> ROK Army Military History Institute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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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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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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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18 | 0.18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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