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이광정 초상 : 중국과 조선에서 그린 조선 문인의 초상화 = Yi Gwangjeong and Portraits of Joseon Envoys by Chinese Painters from the Ming and Qing Periods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8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89-216(28쪽)
KCI 피인용횟수
5
DOI식별코드
제공처
1609년 사은사로서 북경에 파견된 이광정은 이곳에서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원승광이라는 북경의 화가가 제작한 그의 초상화는 조선의 관복을 착용하였으나 두 손은 허리와 무릎에 얹은 채 정면을 응시하는 명청대의 초상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조선에 돌아온 이광정은 1604년 호성공신에 녹훈되며 하사받은 공신화상과 중국본의 초상을 비교하였다. 그의 공신화상은 엄격한 제도적 규정을 따라 정형화된 도상과 형식으로 제작된 초상화였다. 두 그림을 비교한 이광정은 중국본의 초상이 자신의 모습을 더욱 근접하게 재현하였다고 결론 내렸다.
17세기 들어 북경을 방문하는 조선 사절들 사이에는 중국본 초상화를 제작해오는 풍조가 성행하였다. 사절에 의해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초상화에 주목한 기존 연구자들은 이들 초상이 지닌 명말청초의 초상화 양식에 관심을 두었으며 이들이 조선의 초상화 제작에 미친 회화적 영향을 집중적으로 규명하였다. 이 시기에 중국에서 유입된 다수의 초상화는 중국 특유의 초상화 양식을 향한 문인들의 선호를 반영한다. 그러나 북경에서 초상을 제작하는 데에는 화가와의 만남 외에도 제작비, 사절의 체류 기간 등 현실적인 제약이 따랐다. 이와 같은 다양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초상을 제작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단순한 선호를 넘어서는 의식적 차원의 강한 동기를 목격할 수 있다. 이 연구는 17-18세기 중국을 방문한 조선 사절들이 남긴 중국본 초상화가 지닌 문화적 함의를 논구하며 각국의 초상화 제작 방식, 형식적 특징을 비롯하여 초상 제작의 이면에 놓인 문사들의 인식에 주목하였다. 중국과 조선에서 모두 초상을 제작하고 양자를 비교 · 평가하였던 이광정을 중심으로 조선 사절이 남긴 중국본 초상화와 관련 기록을 섬세하게 살펴보며 이들이 지닌 초상화를 향한 의식적 측면에 접근하고자 시도하였다.
이광정 외에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1735에 중국을 방문한 이덕수이다. 그는 남경출신의 직업화가인 시옥이 그린 중국본과 도화서 화원으로 추정되는 장학주가 그린 조선본의 초상화를 모두 소장하였다. 두 초상을 비교한 이덕수는 섬세하지만 규범적으로 그려진 조선의 초상화보다 닮음은 부족하지만 생동감 있는 시옥의 초상화를 높이 평가하였다. 중국의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는 당시에 관찰한 바에 의거하여 그려졌으며 여기에는 주인공의 개성과 감정이 표현될 여지가 높았다. 이 때문에 초상화가 자신의 진면모를 보여주기를 기대한 문사들에게 중국본은 더 높은 만족감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이광정이 남긴 자신의 초상에 관한 소회에서 그가 초상화를 후대와 관계 맺는 매체로서 여기고 있음이 간취된다. 후대와 보다 긴밀한 소통을 위하여 그에게는 자신이 핍진하게 재현된 초상화가 필요하였다. 공신화상은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최적화된 형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자 할 때 공신화상의 추상적이고 정형화된 회화 표현은 이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이것은 이광정이 중국에서 초상을 제작한 이유일 것이며 다수의 문인들이 중국본 초상화를 높이 평가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17세기의 시작과 함께 제작된 이광정의 두 초상은 초상화가 자신의 존재를 후대에 전하는 시각적 매체로서 작용하기를 기대하였던 조선 문인의 초상화 인식의 일단을 확인해 준다.
Yi Gwangjeong (李光庭,1552-1629) had his portrait painted in Beijing, the capital of Ming China, while he was dispatched there as an envoy in 1609. In this portrait by a Beijing-based professional painter Yuan Chengguang (袁承光), Yi is depicted as a Joseon envoy in formal attire. However, his posture follows a typical Chinese portrait style wherein a figure is seated on a chair covered with the tiger skin rug, facing at the front and exposing the hands to the audience. After returning to Joseon, Yi Gwangjeong compared this portrait with his other portrait produced in 1604 to commemorate his designation as Hoseong gongsin, an honorable title granted to meritorious vassals who escorted the King in 1592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hereafter, “gongsin portrait”). His gongsin portrait followed the formal style and iconography strictly prescribed by rules and regulations. Yi considered that the Chinese-style portrait represented him closer to his true self than the formal gongsin portrait.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it was popular among Joseon envoys to commission Chinese-style portraits in Beijing. Existing studies on such portraits from China generally pay attention to the styles and techniques of Ming- and Qing-period portraits reflected in these examples and also investigate the artistic exchanges between Joseon and China. The portraits of Joseon envoys produced in Beijing clearly reflect the Joseon literati’s preference for Chinese culture. However, high production cost, short period of stay in Beijing, lack of skilled artists, and other factors must have imposed constraints on commissioning portraits in Beijing. Considering these limitations, it is likely that stronger motivation beyond cultural preferences was behind the commission of Chinese-style portraits. This essay investigates portraits of Joseon envoys produced in Ming-Qing China from the seventeenth to eighteenth century. Focusing on Yi Gwangjeong’s two portraits, it will closely examine the extant Chinese portraits of Joseon envoys and related records to understand Joseon literati’s perceptions of portraits in the seventeenth century.
Yi Gwangjeong’s remarks on his portraits reveal that he saw a portrait as a visual medium to make a relationship with posterity. For better communication with later generations, Yi wanted to leave a lifelike portrait of him. While his formal gongsin portrait was made in accordance with high standards of the royal academy, another portrait by the Chinese painter faithfully described what the painter observed. The Joseon literati of the time, who expected an authentic portrayal of one’s true self from a portrait, must have been hardly satisfied with conventional Joseon portraits. That is why Yi Gwangjeong intended to make another portrait of him in China even though he already had a gongsin portrait, the most authoritative portrait in Joseon. The two portraits of Yi Gwangjeong painted in Joseon and China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represent Joseon literati’s belief that a portrait should serve as a visual medium that expresses the true self of the subject and forges a link between the subject and posterity.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0-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45 | 0.45 | 0.5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5 | 0.5 | 0.831 | 0.15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