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조선시기 영남 사족들의 조상 찾기와 先祖관련 기록물의 편찬 = Finding Ancestors and Compiling Ancestral Records among the Local Gentry in Youngnam Areas during the Joseon Dynasty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101-130(30쪽)
KCI 피인용횟수
1
DOI식별코드
제공처
Not only paternal line but also maternal line were very important during Koryo Dynasty and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Additionally, the marital type where the bridegroom had entered the bride’s house was common in those days. Therefore, the interest in the paternal lineage was less than that of late Joseon Dynasty and the ancestors’ tombs had been often lost.
As views of neo-Confucianism were increased in the 16th century, the local gentry paid attention to their ancestors, but it was difficult to obtain concrete data on ancestors. The gentry in Andong area traced the ancestors in search of records of the family register which had been collected at local administrative office(邑司) of Andong-bu and had been passed down in the family. Due to such situations, most of ancestors who the local gentry had traced were in the late Koryo people(14th century).
Lee Hwang searched for the paternal ancestors in the 1550s and drew their genealogy. He also compiled a book entitled ‘Kaseyusajabrok (家世遺事雜錄)’after tracing the activities of ancestors such as Lee Jasu, Lee Jung, Lee Kyeyang, and Lee Sik. In particular, Lee Hwang collected only records after Lee Seok who had been considered to have earned the status of gentry. This was a kind of task of searching for the tombs of the ancestors with deepening their awareness of their paternal ancestors.
Ryu Seongryong also compiled ‘Jongcheonyeongmorok(終天永慕錄)’ to inform relatives and descendents of their ancestral achievements. In fact, because he had been uncertain about the ancestral activities until 16th century, Ryu intended to arrange data on his ancestors and confirm their tombs. In the 16th century, the most important purpose of which the local gentry had searched for their ancestors was to confirm as many of the ancestral tombs as possible and to protect the tombs. For this process, they identified Namin ancestors’achievements and protected the tombs, by collecting family registers in local administrative offices and various kinds of data in relatives’houses. In the 16th century, what the local gentry tried to find the tombs again that they had lost only 100 years ago would be related to the emergence of Sarim in each region as well as the dissemination of Confucian ethics.
Youngyang Nam clans, a local gentry in Kyoungsang-do, compiled a family book for direct ancestors but the contents and facts of the book were uncertain. Nam Jaemyoung compiled ‘Namjongtongki(南宗通記)’as organizing and collecting various records and family registers which had been preserved in local administrative office and descendents’ houses. Youngyang Nam clans tried to ascertain the genealogy from the time of their progenitor Namin until 17th century through the data that they had been able to obtain as much as possible. However, due to limitations of the data which could be verified, they had to exclude several generations after Namin. After all, Youngyang Nam clans could confirm their family lineage as recognizing Nam Hongbo as a mid-progenitor who had been identified by the data.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기 사족층의 조상 찾기를 부계혈통 의식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16세기부터 진행되어 온 사족들의 선조 관련 자료의 수집과 편찬 동기를 이황의 『先祖遺墨』(필사본), 류성룡의 『終天永慕錄』을 통하여 살펴보고, 이후 이들이 어떻게 족보, 문집, 세고 등 자료에 수록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고려시기와 조선전기는 부계만이 아니라 모계도 매우 중시되는 사회였고, 혼인형태도 男歸女家婚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므로 부계 혈통에 대한 관심은 조선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고, 선조의 무덤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16세기 성리학적 관념이 증가함에 따라 사족들은 자신들의 조상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나,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안동지방 사족의 경우 안동부 등 邑司에 소장되어 있던 호적관련 기록을 찾아 선대를 추심하기도 하였고, 가내에 전승되어 오던 선조의 호적을 바탕으로 추심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사족들의 선대 추심이 시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려후기(특히 14세기)의 인물들에 그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황의 경우 1550년대 부계 선조들의 행적을 찾는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족보를 직접 그리고, 『家世遺事雜錄』이라는 제목으로 선조들인 李子修-李禎-李繼陽-埴의 행적을 수습하여 정리하였다. 이황은 사족의 지위를 획득하였다고 판단한 李碩부터의 기록만을 수집하였다. 이는 부계 선조들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서 선조들의 분묘를 찾아 정리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류성룡도 『終天永慕錄』을 편찬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살았던 16세기까지 선조들의 행적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선조들의 행정을 정리하고 그들의 무덤을 확정하여 친족과 후손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16세기 사족들의 가장 중요한 조상 찾기의 목적은 조상들의 묘를 찾을 수 있는데 까지 찾아 확정하고, 그 묘를 수호하는데 있었다. 이를 찾는 과정에서 남계 선조들의 활동을 邑司에 소장되어 있는 호적이나, 친족들의 집에 소장되어 있는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확증하고, 분묘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16세기 사족들의 경우 불과 100여 년 전의 선조들의 무덤을 실전하고 다시 찾기에 나섰던 것은 각 지역별로 사림들의 등장과 더불어 유교적 윤리의 보급이 이루어진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경상도 지역의 재지사족인 영양 남씨들은 자신들의 직계 선조들을 중심으로 家譜를 작성하였는데 그 세계와 사실에 대하여 혼선이 빚어지고 있었다. 이를 통합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남제명에 의해 『南宗通記』가 편찬되었고, 邑司와 후손들의 집에 보존되어 있는 호적 등 각종 기록을 수집하여 정리하였다. 영양 남씨들의 경우는 최대한 자신들이 확보할 수 있었던 자료를 통하여 시조로 인식되고 있었던 南敏으로부터 17세기 자신들까지 계보를 확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러나 실증할 수 있는 자료의 한계로 인하여 南敏 이후 여러 대를 실전처리하고 자료로 확인 가능한 南洪輔를 중시조로 하는 영양 남씨들의 가계를 확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보기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2-0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9-2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28 | 1.28 | 1.1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97 | 0.89 | 2.254 | 0.21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