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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의 개혁사상과 민족개조론 = Dosan An, Chang-ho`s reformative thoughts and national reformation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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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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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Chang-ho(Dosan) was the leader who guided the modern national movement of Korea both as a thinker and activist during the period from the late Chosun dynasty to colonial Korea under Japanese rule. He advocated a far-reaching reformation through which the individual Koreans and nation as a whole, their society, their state and even the wider world should be improved. Dosan envisaged four different objects or levels of reform: the nation, the society, the state, and the world, for which he developed four respective reformation theories. Above all, Dosan put particular emphasis on self-reconstruction of the Korean people. He thought that the Korean nation had to make a fundamental change on its own in order to secure its survival and compete with the imperialistic powers in the 19th century, who had been forcing Korea to open its door. It should be noted that the ``new Korean nation`` as he emphasized was the body of modern citizens who consciously recognized their sovereign power over the democratic republic. For the purpose of making the new nation, Dosan devoted his whole life to public enlightenment movement, school education, and citizenship training, all of which, in the colonial context under the Japanese rule, were ultimately intended to foster champions of Korea`s independence movement. Despite this background, some have dismissed the importance of Dosan`s national reformation on the ground that it was more a mere reformism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an an active movement for independence. Such underrating, however, is resulting from inattentively identifying Dosan`s theory with << The National Reformation Theory >> written by Lee, Gwang-soo(Chunwon), who has been condemned as a representative pro-Japanese intellectual. In the preface of his essay, Chunwon wrote as if he intended to spread Dosan`s theory among Korean people according to Dosan`s will. Naturally, this led to a wide misrepresentation of Dosan`s national reformation theory as identical with that of Chunwon. It should be stressed, however, that even though the two national reformation theories had a lot in common, they, at the same time, differed from each other in a crucial way. Whereas Dosan set out his theory of national reformation envisaging the independence of Korean nation, Chunwon`s national reformism was based on the recognition of Japanese rule. Therefore, the national reformation theory of Dosan, an independence fighter, and the national reformation theory of Chunwon, a home-rule - or assimilation - advocate, had entirely different purposes.
더보기도산 안창호는 한말 일제시기에 한국의 근대민족운동을 사상과 실천의 양면에서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각 개인과 그 집합으로서의 민족은 물론이고 사회와 국가 그리고 나아가서는 세계까지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실천에도 앞장섰다. 그의 개혁사상은 그가 변화시키려고 했던 대상의 층위에 따라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나뉘어 진다. 민족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각각 그 대상이었으니, 즉 민족개조론과 사회개조론과 국가개조론과 세계개조론이 그것이다.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한국민족의 자기 변화를 중요시하고 강조하였다. 19세기 말 제국주의가 치성하던 시기에 열강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민족이 생존권을 확보하고 나아가 그들과 경쟁하면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때 그가 강조한 새로운 한국민족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임을 자각한 근대 시민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일생동안 대중계몽과 학교교육과 시민훈련에 헌신하였는데,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아래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 최종적인 목적은 결국 독립운동의 투사를 양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그가 주장한 민족개조론이 독립운동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하에서의 민족개량주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는 그의 주장을 춘원 이광수가 쓴 << 민족개조론 >>과 동일시 한데서 오는 오해의 결과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식민지시기 대표적 친일 지식인으로 지탄받고 있는 춘원이 << 민족개조론 >>을 쓰면서 마치 도산의 뜻에 따라 그의 사상을 그대로 국내동포들에게 전하기 위해 쓴 것처럼 그 서문에서 밝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춘원과 도산의 민족개조론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산이 가졌던 민족개조론과 춘원이 썼던 < 민족개조론 >은 내용상 많은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고 있음을 또한 유의해야 한다. 그 핵심은 도산의 민족개조론이 민족의 독립을 지향한데 비해 춘원의 << 민족개조론 >>은 일제의 지배를 수용하는 전제 위에서의 민족개량주의 논리였다는 점이다.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민족개조론과 자치론자 내지는 동화론자 이광수의 << 민족개조론 >>은 그 목적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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