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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해배 이후 학문과 춘천 여행 = Jeong Yak - yong’s literature and travel to Chuncheon after his ex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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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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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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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96(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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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Yak-yong traveled to Chuncheon twice ascending Bukhan river after his exile. His first travel to Chuncheon was on March 24th in 1820, at his age of 59, that he left his hometown Sonae and visited Cheonpyeongsa temple. He departed for Chuncheon by ship again on April 15th in 1823 that he visited Gok-un Valley. He compiled Cheonu gihaeng gwon (穿牛紀行卷), a collecton of poems after his first travel to Chuncheon, and edited Sansu simwongi (汕水尋源記) which was the supplementation of Daedong sugyeong (大東水經) after his second travel. He also recorded every routes in his Sanhaeng ilgi (汕行日記) and revised his Abang gangyeokgo (我邦疆域考) in between 1823 to 1836.
Jeong Yak-yong described the histories of borderland of eight counties in his Paldo yeonhyeok chongseo (八道沿革總敍) of Abang gangyeokgo to consider diachronically the life of Korean people who had lived in the Joseon territory. He tried to lay the scene of Korean ancient history in the in Korea peninsula. Recent researches based on new interpretation on old documents and archeological discovery, suggest that the territory of ancient Joseon should be extended to Yaodong area in China, and that Yeol su river that is said to have run through the center of ancient Joseon might be Yao he river. However, Jeong criticized that opinion, and what is more opposed to the viewpoint that put Goguryeo at that center of Korean history. He was also negative to include the history of Balhae in Korean history.
Jeong Yak-yong established geometrical-historical methodology, however he could not make an on-site survey of the whole country, and respected the record from Chinese history. It is true that his methodology of research has its clear limit from the viewpoint of archeology. However, it is remarkable that it emphasized the borderland of Korea, established the viewpoint of Korean history that understood the Korean history depending on geometrical environment, paid attention to the humanistic geometry of rural communities, and regarded the nature as the realization of the beauty that had been formed for a long time. He confirmed his geometrical-historical methodology and expanded his scope of scholarship in his second travel to Chuncheon.
정약용은 유배에서 풀려난 뒤 배로 두 번이나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춘천을 찾았다. 즉 59세 되던 순조 20년(1820) 3월 24일 소내를 떠나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 청평사를 유람했고, 62세 때인 순조 23년(1823) 4월 15일에도 역시 마재 앞에서 배를 띄워 춘천에 와서 곡운구곡谷雲九曲을 돌아보았다. 정약용은 첫 번째 춘천 여행 때 지은 시들을 『천우기행권』으로 엮었고 두 번째 여행 뒤에는 『대동수경』의 보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산수심원기汕水尋源記』를 집필했다. 또한 매일의 노정을 『산행일기汕行日記』로 정리했다. 그리고 순조 23년(1823)부터 몰년인 헌종 2년(1836) 사이에 『아방강역고』를 증보했다.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의 「팔도연혁총서」에서 8도 강역의 연혁을 서술하여, 조선 8도를 무대로 활동했던 우리 민족의 삶을 통시적으로 고찰했으며, 우리 고대사의 중심 무대를 반도에 두었다. 오늘날에는 고문헌의 새로운 해석과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힘입어 고조선의 강역을 요동 지역까지 넓혀 보게 되었고, 고조선 중심부를 흐르던 열수의 위치를 요하에 비정하기도 한다. 정약용은 고조선 영역을 만주 지역으로 확장해 보는 견해나 고구려를 민족사의 중심에 두는 역사 인식을 비판했으며, 발해사를 우리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생각에 대하여도 소극적이었다.
정약용은 지리-역사학 방법론은 확립했지만, 전국을 실지 답사하지는 못했고, 중국의 문헌기록을 존중했다. 상고사를 고고학적으로 연구 하는 방법론에서 보면 정약용의 문헌 고증은 한계가 뚜렷하다. 하지만 민족사가 전개된 국토강역을 중시한 점, 지리 환경을 기준으로 역사 발전의 실상을 파악하는 독특한 시각을 확립한 점, 농촌과 수로의 인문자연지리에 주목한 점, 산수자연을 역사미의 구현체로서 파악한 점 등은 현대 학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번의 춘천 여행은 지리-역사학의 방법을 재확인하고, 만년의 학문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의미 있는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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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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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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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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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6 | 0.36 | 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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