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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류학회와 이석락(1895~1968): 계몽과 여운 = Korean Anthropological Association and LEE Suk-nak(1895~1964): Retrospect and Pro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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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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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70(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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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seems to be necessary for us to concern about the history of Korean anthropology as far as we are doing anthropology. This article aims at a portion of the history of Korean anthropology after the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occupation. There was, as a matter of fact, an academic organization concerned about anthropology in Seoul in May, 1946 and it was named as the Korean Anthropological Association. Some members of US military government also participated into it. The first chairman was Dr. Lee, Kuk-no who left for Pyongyang in April, 1948 and the second one was Prof. Sohn, Jin-tai who was obviously kidnapped by the North Koreans right after breaking the Korean War in 1950. From the starting point of the Association, Mr. Lee, Suk-nak who was a christian pastor had a role of an executive director for the organization to the end. He was educated in Kyesung School at Taegu which was a mission school and entered next into the Presbyterian School at Pyongyang to become a pastor. He seemed to have learned some tones of the evolutionary scheme of anthropological ideas with the Christian ideology from the missionary at Kyesung School. The Korean Anthropological Association published several different kinds of publications for public enlightening and all most all of them was published by the name of Lee, Suk-nak. I would hereafter like to introduce four of them in this paper in order to verify his activities for enlightening anthropology in this country after the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colonialism. He, then furthermore, had a central role of establishing the branch of the academic organization at Taegu in 1947 and tried to widen anthropology in the area of Kyungsangdo (Youngnam). After the Korean War, he made an introductory text book titled as <General Anthropology> (1953) in the form of print and started to open a course of Introduction to Anthropology at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1954). His “book” should be considered as the first anthropology book ever since published in this country and his effort might be able to be extended potentially to the Youngnam Anthropology for the future.
더보기본고는 해방 직후 결성되었던 조선인류학회와 그 주역을 담당하였던 이석락에 관한 논고이다. 그 조직은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인류학회라 고 개명하였고,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그 활동은 종말을 맞았다고 생각된다. 그 조직의 전무위원을 담당하였던 이석락은 대구의 계성학교와 평양신학 교 출신으로서, 어떤 연유로 미군정과 연결이 잘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목사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며, 후일 천주교로 개종하였다. 그가 인류학적인 생각을 시작한 것은 이미 계성학교에 재학할 시절에 작성하였던 한시에서 기독교 중심의 진화론적인 사상의 표현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가 인류학이란 학문을 전공하였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조선인류학회의 활동 속 에서 그의 인류학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다. 그가 인류학적인 연구를 수행 한 흔적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는 해방조선에서 인류학을 계몽하는 작업을 하였음에 분명하였다. 이 논고에서는 그가 주축이 되어서 제작하였던 조선인류학회 명의의 출판물들을 네 가지 소개한다. 그는 조선인류학회 경상북도지회를 결성함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영남지방의 여 러 곳을 대상으로 인류학 강연회도 개최하였다. 한국전쟁 후, 그는 대구의 경북대학교에서 1954년부터 인류학개론을 강의하였으며, 1953년에는 <인 류학개론>이라는 서적을 제작하였다. 물론 이 서적은 유인본으로써 정식의 출판과정을 밟은 것은 아니고, 목차와 내용을 비교해볼 때, 미완성으로 끝 이 난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서적들과 미국서적들을 참고해서 제작된 그의 <인류학개론>의 내용이 지향하는 바는 대체로 프란츠 보아스류의 인류학 을 소개하는 정도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이 땅에서 이 땅의 사람에 의해 서 발간되었던 최초의 인류학 서적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조선인류학회 가 체질인류학부, 문화인류학부, 고고학부로 구성되었던 조직과 그의 <인 류학개론>이 보여주는 구성이 거의 비슷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구를 배경 으로 했던 그의 활동으로부터 영남인류학의 창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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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7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Cross-Cultural Studies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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