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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숙종ㆍ예종대 여진정벌과 별무반의 전술체계 = Goryeo’s Conquest of the Jurchen and Tactical Systems of Byeolmuban during the Reign of Sukjong and Ye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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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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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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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8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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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its foundation, Goryeo had implemented the Gimi policy (Conciliatory Policy) on the Jurchen. Goryeo was able to stabilize its northern border areas to meet economic desire of the Jurchen living in the region. Goryeo also carried out military measures such as building forts and implementing advanced weapons to protect its border because the Jurchen invaded them from time to time. In response to the Jurchen’s invasion, Goryo launched military attacks twice during the reign of Munjong and was able to continue to take control of the Jurchen. In 1104, Oasok expanded its power among others Jurchen tribes and began to clash with Goryeo. Goryeo’s King Sukjong sent general Im Gan and Yun Gwan to put down the Jurchen but both of them failed to do so. As the Jurchen were mostly mounted troops, Yun Gwan urged Sukjong to establish Byeolmuban in order to strengthen the cavalry.
Although they were not able to strengthen the cavalry that much, there were special forces units armed with advanced weapons such as bows and catapults in Byeolmuban.
Goryeo sent 170,000 troops to crush the Jurchen. But the Goryeo army did not launch a full-scale attack because they aimed to secure strategic points rather than destroying the enemy’s strongholds completely. The Goryeo army built several fortresses in the places they secured in order to defend the area efficiently. In fact, most of the Goryeo troops were sappers rather than combat soldiers. It illustrates that Goryeo’s conquest of the Jurchen in this period aimed to expand its territory in the long run rather than to simply retaliate against the Jurchen’s attack.
고려는 국초부터 여진에 대해 번인으로서 인식하며 기미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진인들의 대부분은 고려의 서계와 동계 주변에 흩어져 살면서 고려에 내조하여 물자를 얻어가면서 생활하였다. 때로는 고려의 국경을 침범하여 일찍부터 이들에 대한 방비태세를 갖췄다. 동여진에 대한 대책은 기본적으로 동계 방면에 성보를 축조하여 이들의 침구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이 군사기지에 주진군이 배치되어 군사적 대비를 하였다. 또한 궁노 등 다양한 무기들을 변경에 배치하기도 하였다. 고려는 거란 침략이후 커다란 침략을 겪지 않았는데, 이로 말미암아 군사적역량이 약화되어 갔다. 숙종대 문제가 된 동여진은 문종 때 변경을 침범하여 두차례에 걸친 정벌을 감행하였다. 동계가 안정된 이후 문제가 된 숙종 9년 이전에는 커다란 침구는 없었다. 여진의 오아속이 여진부족을 통합하고 함경도 지방으로진출하면서 고려 국경에 위기를 가져왔다. 특히 정주관문 근처에 주둔하면서 고려를 위협하였다. 이에 숙종은 임간을 출전시켜 여진에 대한 군사작전을 전개하는데, 뜻하지 않게 패전하였고 이어 윤관을 보내 다시 정벌에 나섰으나 그 마저 실패하였다. 윤관은 적은 기병이고 아군은 보병이라서 패하였다고 하여 별무반 설치를 건의하였다. 별무반은 기병을 강화가 명분이었으나 기병은 생각만큼 강화되지못하였다. 전마를 낼 수 있는 계층이 문무산관 정도였으며, 더 중요했던 것은 마상무예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별무반내에는 弓과 弩가 중심이 되는 특수부대를 집중적으로 편성하였다. 경궁, 정노, 강노, 대각, 사궁 등이 그것으로 이들 무기는 오랜 훈련을 받지 않아도 사용할 수있으며, 성보 등 방어시설에 들어가서 접근해 오는 적을 먼 거리에서도 사격을 할수 있었다.
고려군은 17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여진정벌에 나섰으나 여진군의 본대와 대규모 전면전을 치루지 못하였다. 고려의 전술은 기동성을 바탕으로 여진의 본거지를완전히 토벌하여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주관으로부터 여진의 통로인 함주, 길주 등지로 이어지는 요충지를 점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고려군은 대규모공격작전 보다는 점령지역에 대한 성곽을 수축함으로써 수성전을 통해 여진의 침구를 막고자 하였다. 17만 명의 대군이 동원되었지만 실제 신보반에 소속된 주· 부·군·현민들의 대부분은 전투병으로써 보다는 성보를 수축하는 공병적 성격의 부대를 이루었다. 이들은 기존의 주현군들이 대부분이었다. 고려의 여진정벌은 단순히 國恥를 씻기 위해 여진의 정치적 항복을 받아내기 보다는 거점 성을 구축하여향후 장기적으로 고려의 영토로 편입하고자 한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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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5-0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3 | 0.3 | 0.2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6 | 0.38 | 0.553 | 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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