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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통신사행의 三使 선발과 대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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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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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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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2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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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통신사행에 참여한 사행원들 가운데 사절의 책임자로서 사행을 이끄는 三使에 주목하고, 삼사의 선발을 통해 조선후기 대일정책의 일환으로서 통신사가 능동적으로 파견된 외교사절임을 밝히고자 한다.
삼사는 통신사와 동격으로 간주될 만큼 사절의 책임자로서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래서 사행 준비에서도 가장 먼저 선발되었으며, 사행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여 대일외교의 분위기를 익혔다. 이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삼사의 관력에 대한 검토로 이어졌으며, 삼사의 선발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대일업무 체계에서 구심적 기관이었던 비변사와 예조를 중심으로 삼사의 관력을 살펴본 결과, 삼사에는 비변사나 예조관원을 역임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시기는 대체로 1646년~1762년 사이에 집중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1655년 사행을 기점으로 비변사나 예조관원과 같이 대일정책의 의결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던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사행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삼사의 선발양상이 변화하는 데에는 조선의 대일정책의 변화에서 기인하였다. 대일무역의 전개상에서 오는 폐단이 커지면서 조선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결과 밀무역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1652년에는 ‘禁散人各房約條’가 마련되었다. 한편 조선으로 도항해 오는 무역선의 수가 증가하면서, 영남지역의 부담을 덜기 위한 방편으로 1655년 통신사의 파견을 통해 무역선의 추가를 막고, 무역선을 매개로 하여 대마도의 통제를 꾀하였다.
이러한 대일외교상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선이 대륙정세의 변화 추이에 따른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에서 대일정책의 변화를 시도한 것이 크게 가시화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이 조?일 관계에서 안착된 것이 1682년 사행 이후이며, 조선이 양국관계를 주도하는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계해?신미 약조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따라서 1655년 통신사행이 조선 후기 대일외교사의 전개에서 가지는 의미는 명확하며, 앞으로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와 적극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This paper is aiming to clarify that Tongsinsa(Communication Envoy) was a envoy dispatched activly as a part or its diplomacy toward Japan through selection of Samsa(Three envous) in the latter period of Chosun, focusing on Samsa which led Tongsinsa in charge of the delegate.
Samsa who was considered as Tongsinsa undertook an important assignment in charge of the envoy. So, they were the first selection in the delegate in preparing, and participated in tortuous process of preparing and adjusted to atmosphere of diplomacy toward Japan. The expectations about the role of these Samsa led to a review of the experience of the government posts, it influenced their selection for Samsa. Thus, as the result of analyzing their government posts with Bibyensa(the office of Border Defense) and Yejo(Ministry fo Rites) which was a central institute in the system of the diplomacy toward Japan, majority of them already worked for these institutes. That time largely concentrated between 1646~1762. In other words, people who participated in approval process of diplomacy toward Japan such as Bibyensa or Yejo officials consistently took part in Tongsinsa from the envoy in 1655.
These changes of selection of Samsa were caused by changes in diplomacy toward Japan of Chosun. As the ill effects of trade with Japan increased, it became an opportunity to think more deeply about this issue for Chosun. In result, "Geumsanipgacbang Yackjo(禁散入各房約條)",was enacted to prevent smuggling in 1653. Meanwhile, as the number of trading vessel which came to Chosun was increasing, Chosun tried to prevent its increasing for alleviating the economic trouble of people in Youngnam Province and to control Tsushima(對馬島) with fluctuation of trading vessels through dispatch of Tongsinsa trip in 1655.
Despite the specific change in diplomacy toward Japan, it has not properly assessed. Because the attempt to change of diplomacy toward Japan in the narrow situation with circumstances of continents in China would not be significantly visible difference. However, it is parked in relation between Chosun and Japan since Tongsinsa trip in 1682,Chosun could take the lead at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ntries in the stable atmosphere, and sign such as the Kyegae Treaty of 1683 and the Sinmyo Treaty of 1711. Thus the meaning of Tongsinsa trip in 1655 on the development of diplomacy toward Japan in the latter period of Chosun is very clear. That"s why we need to understand in different perspectives and active evaluation in the future.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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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5 | 1.5 | 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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