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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학’ 개념에 대한 고찰 = A Study on the Concept of “Silhak” in th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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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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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학자에게 학문은 과거시험의 준비과정이기도 했으나 그들 대부분은 독서인으로서 생을 마감하였다. 修己治人을 지향해야 하는 유학자로서,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 존재의 의의에 대해 사고하고 발언하였다. 조선시대의 ‘실학’론은 이러한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며, 유학 자체 혹은 조선시대 유학의 주 동향에 대한 그들의 문제의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천보다, 실천을 가능하도록 하는 ‘실학’ 축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결과론적 유용성을 예상하여 종사하는 일은 ‘실학’을 해치는 것으로서 매우 경계하였다. 한편, 이러한 조선의 ‘실학’ 개념과 상반된, 결과론적 유용성을 기준으로 한 ‘실학’ 개념은 메이지(1868~1912) 시대의 일본에서 계몽가들이 유학가치를 부정하는 동시에 서양 과학의 유용성에 주목하여 얻어낸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유학이 통치이념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쿠가와(1603~1868) 시대 이래로 유학이 이 사회에서 유용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유용성 추구가 도쿠가와 시대로부터 메이지 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과론적 유용성을 추구하는 일본식 ‘실학’ 개념으로 조선시대 유학사의 한 줄기를 논하는 연구가, 조선의 유가지식인이 아니라 일본인인 이나바이와키치나 일본에서 유학한 최남선에게서 시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론적 유용성을 염두에 두는 일을 극도로 경계했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특징에서 보자면, 조선사회에 유용한 결과를 가져올 ‘학’을 추구하는 동향은 쉽게 생성될 수 없으며, 실제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면, 조선유학자 세계의 이 혁명적 변화에 대한 원인과 과정을 철저히 밝혀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보기Confucian studies were a preparation for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s during the Joseon period, but most of the Confucians spent their lives as learners (讀書人). As Confucian scholars who pursued self-cultivation and governing the people (修己治人), under these circumstances, they steadfastly thought and spoke about the meaning of their existence. Their mention of Silhak emerged from this background and did not reflect a feeling there was a problem with their learning itself or the main trend of Confucianism at that time. They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study to enable and illuminate practice rather than practice itself. Advocates of the original concept of “Silhak” during the Joseon period were steadfastly wary of utilitarian ideas and approaches. Meanwhile, another concept of “Silhak” based on utilitarian ideas, contrary to the concept of Joseon"s was formed in Japan during the Meiji period, when “Enlightenment” thinkers denied the value of Confucianism while admitting to the utility of Western science. In Japan, the problem of the impracticality of Confucianism, which was not an official governing ideology there, had existed ever since the Tokugawa period (1603-1868). This pursuit of utility had continued from the Tokugawa era to the Meiji era (1868-1912). It is quite obvious that the studies, which discussed a Korean Confucian history with the Japanese concept of “Silhak” began with the Japanese scholars, not the Confucian scholars of Joseon. This trend started with the Japanese scholars and Choe Namseon, who studied in Japan. In view of the characteristics of Joseon-era scholars who were extremely wary of utilitarian ideas, the new idea of “practical learning” would be difficult to derive from the original Korean context. Even if this idea actually existed in Joseon Korea, it would be necessary to find out examples, as well as the causes and process thoroughly.
더보기조선시대 유학자에게 학문은 과거시험의 준비과정이기도 했으나 그들 대부분은 독서인으로서 생을 마감하였다. 修己治人을 지향해야 하는 유학자로서,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 존재의 의의에 대해 사고하고 발언하였다. 조선시대의 ‘실학’론은 이러한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며, 유학 자체 혹은 조선시대 유학의 주 동향에 대한 그들의 문제의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천보다, 실천을 가능하도록 하는 ‘실학’ 축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결과론적 유용성을 예상하여 종사하는 일은 ‘실학’을 해치는 것으로서 매우 경계하였다. 한편, 이러한 조선의 ‘실학’ 개념과 상반된, 결과론적 유용성을 기준으로 한 ‘실학’ 개념은 메이지(1868~1912) 시대의 일본에서 계몽가들이 유학가치를 부정하는 동시에 서양 과학의 유용성에 주목하여 얻어낸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유학이 통치이념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쿠가와(1603~1868) 시대 이래로 유학이 이 사회에서 유용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유용성 추구가 도쿠가와 시대로부터 메이지 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과론적 유용성을 추구하는 일본식 ‘실학’ 개념으로 조선시대 유학사의 한 줄기를 논하는 연구가, 조선의 유가지식인이 아니라 일본인인 이나바이와키치나 일본에서 유학한 최남선에게서 시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론적 유용성을 염두에 두는 일을 극도로 경계했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특징에서 보자면, 조선사회에 유용한 결과를 가져올 ‘학’을 추구하는 동향은 쉽게 생성될 수 없으며, 실제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면, 조선유학자 세계의 이 혁명적 변화에 대한 원인과 과정을 철저히 밝혀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보기Confucian studies were a preparation for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s during the Joseon period, but most of the Confucians spent their lives as learners (讀書人). As Confucian scholars who pursued self-cultivation and governing the people (修己治人), under these circumstances, they steadfastly thought and spoke about the meaning of their existence. Their mention of Silhak emerged from this background and did not reflect a feeling there was a problem with their learning itself or the main trend of Confucianism at that time. They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study to enable and illuminate practice rather than practice itself. Advocates of the original concept of “Silhak” during the Joseon period were steadfastly wary of utilitarian ideas and approaches. Meanwhile, another concept of “Silhak” based on utilitarian ideas, contrary to the concept of Joseon"s was formed in Japan during the Meiji period, when “Enlightenment” thinkers denied the value of Confucianism while admitting to the utility of Western science. In Japan, the problem of the impracticality of Confucianism, which was not an official governing ideology there, had existed ever since the Tokugawa period (1603-1868). This pursuit of utility had continued from the Tokugawa era to the Meiji era (1868-1912). It is quite obvious that the studies, which discussed a Korean Confucian history with the Japanese concept of “Silhak” began with the Japanese scholars, not the Confucian scholars of Joseon. This trend started with the Japanese scholars and Choe Namseon, who studied in Japan. In view of the characteristics of Joseon-era scholars who were extremely wary of utilitarian ideas, the new idea of “practical learning” would be difficult to derive from the original Korean context. Even if this idea actually existed in Joseon Korea, it would be necessary to find out examples, as well as the causes and process thoroug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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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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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2-0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9-2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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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28 | 1.28 | 1.1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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