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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현 사키토정 「埋火葬認許証交付簿」 등재 조선인 사망자 분석(1940~1945) = The analysis of the dead people of Joseon listed on the Certificate of Burial or Cremation of Sakito-cho, Nagasaki-ken, Japan(1940~1945)
저자
김명환 (건국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55-294(40쪽)
KCI 피인용횟수
1
제공처
본고에서는 일본 나가사키현 사키토정 「埋火葬認許証交付簿」에 등재된 조선인 사망자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사망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키토정의 탄광산업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하였다.
사키토정은 본래 한적한 어촌이었으나, 1907년 규슈탄광기선(주)이 설립되고 곧이어 사키토탄광이 개발되며 급속히 탄광촌으로 변모하였다. 사키토탄광은 개설 이래 꾸준히 성장하여 1930년대 중반에는 일본 내 탄광 중 10위권에 들어가는 유명한 채탄장으로 발전하였다. 1940년 9월 미쓰비시광업(주)은 규슈탄광기선(주)을 합병하여 사키토탄광을 흡수하였다.
사키토탄광은 1910년대 초부터 조선인 노동자를 채용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조선인이 대규모로 동원되기 시작한 것은 전시체제 성립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 동원은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 양 지역에서 이루어졌으며, 노무관리는 매우 혹독하게 이루어졌다. 1944년 1월 당시 사키토정 거주 조선인 규모가 전국 탄광촌 중 5번째였다는 점에서 사키토탄광으로의 조선인 동원이 대규모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埋火葬認許証에는 사망자의 인적사항 및 사망과 관련된 정보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분석대상이 된 1940~1945년 사키토정 「埋火葬認許証交付簿」에 등재된 조선인 사망자는 211명이다. 분석결과 다음과 같은 내용이 확인되었다.
첫째, 사망자들의 연령별 분포를 살펴보면 5세 이하 영유아 및 16세 이상 30세 이하의 청년층 사망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된다. 청년층 사망자가 많은 것은 이들이 위험한 직종이나 작업장에 몰려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키토탄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5세 이하 영유아 사망자가 많았다는 점에서 당시 사키토정에는 젊은 조선인 부부 혹은 가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사망자들의 출신지역을 살펴보면 경상도 및 전라도 출신이 전체 사망자의 88.6%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사키토탄광으로 동원된 조선인들이 대부분 영호남 지역에서 모집되었다는 증언과 일치하는 것이다.
셋째, 사키토정 「埋火葬認許証交付簿」에 직업이 기재된 조선인 사망자 114명 중 112명은 탄광노동자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직업이 기재되지 않은 사람 중에서도 사망장소 및 사망이유로 보아 2명은 탄광노무자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즉 사키토정 「埋火葬認許証交付簿」 등재 조선인 사망자 211명 중 114명은 탄광노무자였다.
넷째, 사망원인으로는 갱내 탄광사고가 14.2%를 차지하고 있고, 落磐事故에 의한 사망이 가장 많이 발견된다. 變死變傷死가 28건이나 확인되는데, 사망원인으로 보아 구타 등 가혹행위에 의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갱외 부상 및 질병 등에 의한 사망은 143명으로 전체의 67.8%를 차지하는데, 여기에는 15세 이하인 자가 76명 포함되어 있다. 탄광노무자로 확인되는 114명 중 갱내 사망자는 47명으로 역시 낙반에 의한 사망이 가장 많다. 갱외에서 사망한 67명 중 24명은 질병이 아닌 부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This paper attempted to analyze the death of Korean people, which was listed on the Certificate of Burial or Cremation(埋火葬認許証) in Sakito-cho, Nagasaki-ken, Japan. And it also overviewed the coal mine industry in Sakito-cho that was considered to exert influence over the dead.
Sakito-cho was originally a remote fishery town. However, it underwent a rapid transformation into a coal mine village as Kyushu Colliery & Steamship Co.(九州炭鑛汽船株式會社), was established in 1907, and consequent development of Sakito coal mine(崎戶炭鑛). Since its establishment, Sakito coal mine continued to expand to become a famous coal mine, ranked among top 10 Japanese coal mines by the mid 1930s. On September 1940, Mitsubishi Mining Co.(三菱鑛業株式會社) merged Kyushu Colliery & Steamship Co., to absorb Sakito coal mine.
It was confirmed that Sakito coal mine had hired workers from Joseon (the last dynasty of Korea) since the early 1910s. However, it seemed that the fully-fledged mobilization of labors from Joseon took place after the establishment of war-system. The mobilization was mainly occurred in Gyeongsangdo(慶尙道) and Jollado(全羅道) provinces and labor management was carried out in a very severe manner. As of January 1944, the size of Joseon people living in Sakito-cho marked the 5th in the rank of the all coal mine towns in Japan, indicating that there was a massive mobilization of Joseon people to Sakito coal mine.
The Certificate of Burial or Cremation contained the details of the personal data and death of the dead. The number of the dead people of Joseon listed on the Certificate of Burial or Cremation of Sakito-cho from 1940 to 1945 was 211, which was the subject of the analysis. The analysis revealed the followings:- First, the age-based distribution of the dead showed that many of them were children under age 5 and young people from age 16 to 30. A high number of youth deaths indicated that they had been engaged in dangerous occupations or workplaces. It is considered to be related to Sakito coal mine. The large number of children under age 5 let us presume that there were a number of young Joseon couples and/or families in Sakito-cho at the time.
- Second, looking at the native regions, we could find that 88.6% of the dead accounted for those who had been from Gyeongsangdo(慶尙道) or Jeollado(全羅道). It coincided with the testimony saying most of them mobilized to Sakito coal mine were recruited from Yeongnam(嶺南) and Honam(湖南) regions at the time.
- Third, among 114 Joseon people whose occupations were recorded in the Certificate of Burial or Cremation of Sakito-cho were confirmed to be coal miners. The two who did not have the record on their occupations, their places and causes of death elucidated their occupations as coal mine workers. In other words, 114 people out of the 211 dead people of Joseon listed on the Certificate of Burial or Cremation of Sakito-cho was mine workers.
- Fourth, as for the cause of death, mine accidents in the pit accounted for 14.2% and mine cave-in accident was the primary cause of death. 28 people died violent deaths and the cause of death allowed us to presume that they were dead due to abuse such as beating. The number of death by injury outside pit and illness was 67.8%, including 76 people under the age of 15. Among 114 people who were confirmed their occupation as mine workers, 47 people were dead in the pit and the highest cause of death were cave-in. Among 67 people killed outside the pit, 24 workers appeared not by illness but by injury.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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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1 | 0.81 | 0.7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5 | 0.66 | 1.616 | 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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