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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世和의 華陽講會와 「華陽講會日記」에 대한 고찰 = A Study on Park, Sehua(朴世和)'s Huayangkanghoe and 「華陽講會日記Huayangkanghoe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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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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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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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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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39(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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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dang(毅堂) Park, Sehua(朴世和 1834~1910) had carried out the Huayangkanghoe(華陽講會) which had assembled Yoorims of disciple 200 people and so on at Huayanggugok of presently in 1904. In 1905 was before 1 year ago when Eulsaneukyak had accomplished conclusion. At that time he was 71 years old, when he departed to Huayanggugok, although he had situation of dizziness but he did not give up or postponed, and he had enforced the Huayangkanghoe. Park, Sehua(朴世和(1834~1910)) entered Buleok-mountain(茀億山) which was upper valley of Yonghagugok(用夏九曲) which was located in Eoksu-ri, Deoksan-myeon, Jecheon-si, Chungbuk at that times winter when Myeongseong Empress regicidal incident took place in August of 1895. And he composed Seosiseosadongji(書示書社同志). In this writing, he emphasized that Eui(義)was that if tremble(動搖) took place, But did not tremble according to death of a duty(道). And he required to study the scriptures. He set up Yonghagugok in1898. In the Huayangkanghoe(華陽講會), special lecture of Jonhuayangi thought caused for Cheokyangcheokwae(斥洋斥 倭), that is to say, for inspiring of sense in anti-Japanese. In 1905 to 1907, Park, Sehua's participation of anti-Japanese struggle was practice of those senses.
Park, Sehua had said, in 「Huayangkanghoeil Seosimjegunja華陽講會日 書諗 諸君子」“Hua(華) never to be I(夷), but person never did not to be animal.
Please, gentleman had effort each their will and kept willing(義) for hoping of each helping. Do(道) could not perish and would not recover." Therefore Huayangkanghoe is 'Jonhuayangi sense defending resolution conference' and Huayangkanghoeil Seosimjegunja can be 'the declare of Jonhuayangi sense'.
This lecture meeting had resonance the 「Mandongmyobimun萬東廟庭碑文」․ Pilmyong「畢命」․「Baekrokdonggyu白鹿洞規」. They all had contained contents of reinforcement in Jonjudaeui sense, that is to say, Jonhuayangi sense.
This conference's ultimate purpose of performance was reinforced and heighten of Cheokyangcheokwae sense.
From 1904 to 1916 when Gyeongsulgukchi undergone the yoorims who adored Uam and adhered Jonhuayangi sense, and they visited Huayanggugok in order to spread firmly Jonhuayangi sense and case of Mandongmyo sacrifice.
Yet I did not find the case of special lecture of awareness and Cheouijase(處義 姿勢)about the state of affairs at that time.
Park, Sehua had comparatively and realistically discribed the experienced contents as he had gone and worshiped at Huayanggugok and Uam's graveyard at Cheongcheon so we can be Known the real statement and circumstance of kindheared prevailing state of society and observed cultural heritage within 박세화는 「Huayangkanghoe Journal 華陽講會日記」.
Late Choson the maximum national important event was the power of the state and national protect in the Japanese accelerated omen of liking disseisin to Choson. In 1904 when the tense season, Park, Sehua had enforced Huayangkanghoe in order to strengthen of Jonhuayangi sense and Cheokwae sense for Yoorims. Therefore we can be recognized the contemporary literary meaning of contents in the 「Huayangkanghoe Journal 華陽講會日記」and Park, Sehua's Jonhuayangi sense and Huayangkanghoe.
毅堂 朴世和(1834~1910)는 1904년 지금의 華陽九曲에서 제자 등 200여명의 유림들을 모아놓고 華陽講會를 결행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1년 전이다. 그 때 그의 나이 71세이며, 화양구곡으로 출발하려고 할 때현기증이 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거나 연기하지 않고 화양강회를추진 강행했다. 박세화는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그 해겨울, 지금 충북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用夏九曲의 상류인 茀億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書示書社同志」를 지었다. 이 글에서 그는 道를 따라 죽고動搖가 일어나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 義라는 점을 강조하고 경전을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1898년 용하구곡을 설정했다. 華陽講會에서 존화양이사상을 특강한 것은 斥洋斥倭 즉 항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박세화가 1905년과 1907년 항일투쟁에 참여한 것도 그런 의식의 실천인 것이다.
박세화는 「華陽講會日 書諗諸君子」에서 “ 華는 夷가 될 수 없으며, 사람은 짐승이 될 수 없다. 청컨대 제군들은 각자 뜻에 힘쓰고 義를 지켜 서로 돕기 바란다. 道는 망할 수 없고 회복될 것이다.” 라고 했다. 따라서 화양강회는 ‘존화양이의식수호결의대회’이자 「華陽講會日 書諗諸君子」는존화양이의식수호선언서’라 할 수 있다. 이 강회에서 「萬東廟庭碑文」․「 畢命」․「白鹿洞規」를 낭송했다. 모두 존주대의의식 즉 존화양이의식을 강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화양강회를 거행한 궁극적인 목적은, 來復을 인식시키고 척양척왜의식을 고취앙양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1904년부터 경술국치를 당한 후인 1916년까지 우암을 숭상하고 존화양이의식을 견지한 유림들이 존화양이의식을 공고히하기 위해 화양구곡을탐방하고 만동묘에 제향한 사례는 몇몇 있다. 그러나 시국에 대한 경각심과 處義姿勢에 대한 특강을 하지는 않았다.
박세화는 「華陽講會日記」에 견문한 당시의 인정세태와 문화유산, 그리고 화양구곡의 유적 탐사, 또 청천의 우암묘소를 참배하면서 경험한 내용들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기술해놓아 그 실상과 실황을 알 수 있다.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려하는 징조가 가속화돼가던 조선말 최대의 국가적 중대사는 국권수호와 국가수호였다. 그 긴박한 시기인 1904년 박세화는 유림들에게 존화양이의식과 斥倭意識을 강화하기 위해서 화양강회를강행했다. 따라서 박세화의 존화양이의식과 華陽講會 그리고 「華陽講會 日記」의 내용은 그 시대적 문학적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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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12-01-01 | 평가 | 탈락(현장점검) (기타)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3-2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한문학보 -> 漢文學報외국어명 : 미등록 -> Han Mun Hak Bo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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