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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의 장’과 식민지 고등교육 = Joseon Studies(朝鮮學) and Colonial Higher Education
저자
윤해동 (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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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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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97-15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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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on studies during the colonial period can placed within the tradition of national learning (國學). As such it is not possible to understand the full extent of Joseon studies through the narrow lens of the ‘Chosunhak Movement’. This article analyses the development process of Joseon studies using the concepts of academic fields and sub academic fields, emphasizing Joseon studies’ relationship with higher education was emphasized.
In the 1920s, through the declaration of Joseon Studies by Choi Nam-sun, the horizon of Joseon Studies gradually emerged in Korean society. However, during the 1920s, only minor and experimental research in the sub-field of linguistics and ‘invention’ (that is engineering) was led by Koreans in Joseon studies. Instead, Keijo Imperial University, which opened in 1926, laid the foundation for full-fledged Joseon studies. Japanese researchers who took office at universities, Korean graduates who had studied abroad, and from 1929, Korean graduates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came together at the same time to become the main agents of the Joseon studies boom.
The formation of Cheonggu Academic Society (靑丘學會) in 1930, signaled the full-fledged launch of Joseon studies. The first comprehensive academic society on Joseon studies centered on Japanese researchers appeared. Based on the academic discipline institutionalized at Keijo University, the Cheonggu Academic Society produced expertise in Joseon studies in earnest. As a result, from 1930, the sub-academic field of Joseon studies have been established in humanities such as language and literature, philosophy, folklore studies, and economics, as well as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disciplines such as medicine, ‘invention’, and natural science. The academic field of Joseon Studies thus came to be in full bloom in the early 1930s.
Based on the establishment of these sub-field, the Jindan Academic Society (震檀學會), a comprehensive society for Joseon studies centered on Koreans, was born in 1934. Paradoxically, the Jindan Academic Society put forward ‘scientific Joseon research’ as a slogan, and it was able to be launched as a sub-field alliance in humanities of Joseon studies. The reason why the nationalist right-wing group started the Joseon Studies Movement with Silhak (實學) as a symbol of Joseon Studies was this sense of crisis over scientific Joseon research.
식민지기의 조선학은 국학의 일종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학운동’이라는 좁은 렌즈만으로는 조선학의 전모를 이해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학술장이라는 개념을 분석도구로 삼아,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의 조선학의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분석과정에서 특히 고등교육과의 관련을 중시했다.
1920년대 벽두 최남선의 조선학선언을 통해 조선학이라는 지평이 서서히 조선사회에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1920년대 조선인들이 주도하는 조선학은 어문학과 발명학이라는 하위장에서만 새로운 시도가 있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1926년 개교한 경성제국대학을 통해 본격적인 조선학 연구의 토대가 구축되었다. 대학에 부임한 일본인 연구자와 1929년부터 배출되는 조선인 졸업생 그리고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는 조선인 해외유학생들이 조선학 붐의 주체가 되었다.
1930년 결성된 청구학회는 본격적인 조선학 출범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일본인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최초의 조선학 연구 종합학회가 출현한 것이다. 경성제대에서 제도화된 분과학문을 바탕으로 청구학회가 조선학 전문지식을 본격적으로 생산해내게 되었다. 한편 이를 계기로 1930년 이후 어문학, 철학, 민속학, 경제학 등의 인문학과 의학, 발명학, 박물학 등의 이공학 분야에서 조선학 하위 학술장이 족출하게 되었다. 조선학의 장은 이리하여 1930년대 초반 화려하게 만개하게 되었다.
이런 하위장의 성립을 토대로 1934년 조선인 중심의 조선학 연구 종합학회인 진단학회가 탄생하였다. 진단학회는 역설적이게도 과학적 조선연구를 슬로건으로 내세웠고, 조선학 전분야의 하위장 연합으로 발족할 수 있었다. 민족주의 우파 그룹이 조선학의 상징으로 실학을 내걸고 조선학운동을 시작한 것은, 이런 과학적 조선연구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었다.
조선학의 성립을 자극한 것은 일본의 조선 연구였다.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조선학 연구에 대한 자의식은 고등교육을 이수한 조선인 연구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경성제국 설립과 유학생의 유입이 조선학 형성의 신호탄이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선학에 대한 자의식은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강화하고, 고등교육을 통해 배출된 연구인력은 조선학 연구를 진전시켜 갔다. 식민지기의 고등교육은 조선학을 추동한 자극의 원천이자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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