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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과 안정복의 東國正統論 재검토 = Re-examination of Yi Ik(李瀷) and An Jeongbok(安鼎福)’s Dongguk Legitimacy Theory(東國正統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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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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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various things changed in the historical narratives. It is said that the comprehension on the national narrative, especially on the ancient time period, had been reinforced since 17th century. New approaches were presented, which comprehend Korean history through the genealogy from Tan’gun(檀君), Kija(箕子), Wi Man(衛滿) to the Three Han States(三韓). The ‘legitimacy theory’ became significant basis in the historical narrative. This paper is an attempt to compare the two important works among diverse versions of legitimacy theory: ‘the three Han legitimacy theory’ asserted by Yi Ik and Dongsa Gangmok written by An Jeongbok. The latter being influenced by the former, comparison of the two would help to understand the progress of legitimacy theory.
Yi Ik discovered the legitimacy of Mahan(馬韓) from periodical, genealogical, and historical dimension. An Jeongbok, availing the legitimacy theory, glorified Tan’gun and highlighted Mahan. Tan’gun and Mahan were recreated: Tan’gun as a moral monarch who had no choice but to accept the Chinese culture due to periodical and geographical reasons and Mahan as a state which passed the genealogy of Kija down to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r and held the dignity of the legitimate state for long time. Legitimacy needed its opponent: the conducts of Wiman were defined as the first usurpation in the Korean history. The authors differentiated the legitimate succession from the usurpation of the throne, thereby establishing a basis of discerning where legitimacy was. While Yi Ik tried to explain his era through ‘the three Han legitimacy theory’, An Jeongbok attempted to describe Korean history based on the legitimacy theory in his work Dongsa Gangmok.
The historians in the Late Joseon period were subject to both sino-centric worldview and historic understanding of Korea as a legitimacy. Yet it is hard to find their intention to replace the Chinese history. Nor did they deviate sharply from the sino-centric world view. Until recently, it was the center of academic attention to find the juncture at which Korean historical works broke bounds of sino-centric view. Yet the historians of late Joseon period did not attempt to escape from the real world where they lived: their object of ‘escaping’ from the sino-centric world view was to justify what they understood the world. In the progress of view of history, there existed a series of phases including chauvinism and nation-centrism. It is hard to find the such case among the historians of late Joseon period. We should remember the fact that the end of nation-centrism was not positive at all. Keeping it in mind, we need to ruminate orientation and attainment of the view of history in the late Joseon period.
조선후기의 역사 서술에서 고대사에 대한 인식은 17세기~18세기 이후 강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단군-기자-위만과 삼한으로 이어지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계보화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정통론은 역사서술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본 글에서는 조선후기 동국 정통론의 시작점 중 하나인 李瀷의 「三韓正統論」과 安鼎福의 『東史綱目』을 분석하여 정통론의 추이를 살펴보았다. 이익은 「三韓正統論」에서 마한의 시기적 정통성, 계보의 정통성, 역사적 정통성을 발견했다. 『東史綱目』에서 안정복은 정통론을 기준으로 삼아 단군을 앞세우고 마한을 부각했다. 단군은 시기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중국의 문화를 전수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던 도덕군주로, 마한은 기자의 계통을 남쪽으로 이어 주고, 장기간 정통국가로서의 위엄을 지녔던 국가로 재탄생했다. 정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대비되는 존재도 발견해야만 했다. 위만의 행위는 우리나라 최초의 찬탈로 규정되었다. 선행 연구에서는 조선후기 역사서가 언제 화이관을 탈피하는지, 그들이 입각한 정통론이 어느 정도의 자주성을 가지는지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그러나 이익과 안정복은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적 세계관과 동국정통론적 역사인식을 모두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의 문화적 전통과 전수를 중요시하면서도, 중국사에 대한 일정한 주체의식과 청에 대한 위기의식을 함께 볼 수 있다. 하지만 동국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자국사를 서술한다거나, 중국사를 대체하겠다는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三韓正統論」과 『東史綱目』은 당대의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의 정체성을 정통론이라는 이념으로 정당화하고, 정통론을 기준으로 삼아 자국사를 서술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역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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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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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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