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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1945.8~1950.6) 남한에서의 국악의 등장과 정체성 구성 = The Identification of Traditional Music as ‘Gugak’ in South Korean Post-colonial Days(1945.8-19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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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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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198(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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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thesis examines in post-Liberation five years, on ‘Gugak’(國樂) identity. One of its major foci is laid on the reading of appellations and practices concerned with Korean traditional music for our understanding of the competitions Korean traditional musicians made over the subject of developing Gugak and its categories or genre. Another focus is dissertation tracks the points of inclusion and exclusion from the category of Gugak.
After liberation, Traditional musicians associate their music with the ‘nation’ and call it Gugak.” Inside the traditional music world, there was severe competition over which could exclusively use the appellation of Gugak and which genre of Korean traditional music could be into the category of Gugak. Traditional music categorized as Gugak some genre of ‘court music’, ‘folk music', ‘classical music’, ‘Changgeuk’. On the other hand, nongak or farmer’s music in English was excluded from the category of Gugak. Through this process, the category of Gugak at that time included all the traditional music genres and even dance with the exception of shamanic music.
More importantly, Gugak contained linguistic elements, and also visual and dramatic ones. As a result, Gugak included not only the music appealing to auditory organ but also the dance appealing to visual senses or including dramatic or performative elements. This means that musical and non-musical elements coexisted in Gugak.
Competition over the genres included into Gugak was associated with the power struggles waged by the contemporary two major groups. Also, it was so with the identity struggle: which was the main genre of Gugak, or which music was the major part of Gugak. The issue of identity struggle was settled by the nationalization of Aakbu. The nationalization identified Aak(雅樂)-centered Gugak, and Aakbu-centered world of South Korean traditional music.
More noteworthily, the Aak-centered identification of Gugak was related to the contemporary competition over the national legitimacy of Korea between the ROK and the DPRK. As the ROK violently settled down the issue of the identity of traditional music, the dynamism the world of South Korean traditional music were removed. As a result, this was the contemporary expressions of the process of forming the identitie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throughout the modern history of Korea.
본 논문은 해방 직후 전통음악이 국악으로 호명되고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서양음악 종사자들이 민족음악 논의를 제창하고 전통음악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국악으로 호명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이와 함께 전통음악계 내부에서 국악의 주체와 구성 장르를 둘러싸고 상호 경쟁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국악이라는 명칭이 해방 직후에 등장한 계기, 그리고 국악원과 아악부의 ‘국’에 대한 상이한 이해, 또 담론 공간에서의 국악 장르는 음악뿐만 아니라 창극과무용 그리고 시조 등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
또한 국악의 장르로 위치되었던 창극과 농악이 전통음악계 내부의 경쟁 과정에서 국악의 장르로부터 배제되면서, 정부 수립 직후 각각 국극과 민예로 호명·규정되었다. 해방 직후 국악의 한 장르로 위치되었던 시조와 국악의 범주에서 배제되었던 무악 역시 국악의 장르로부터 배제되었고, 이후 문학과 향토문화예술로 배치되었다.
그런데 실제 방송 프로그램이나 전통음악 관련 공연대회의 성격에 따라 국악은 기악과 성악의 한 장르로 위치되거나 반대로 민속악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리매김되었다. 때로는 극적이거나 언어적인 성격을 가진 줄타기와 만담 등도 포함되어있었다. 이는 국악의 범주와 정체성이 유동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유동적인 국악은 당대 정치적 상황과 연동되어 국가화되었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족 정통성 경쟁 속에서 우익적 성향을가진 아악부를 1948년 12월에 국영화하고, 1950년 1월에 국립국악원으로 국가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해방 직후 인민 대중 중심의 전통음악 논의들은 국악 논의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궁중음악인 아악은 국악으로 등식화되었다. 그 결과 아악부와 아악이 중심이 되어 국악계와 국악의 정체성은 형성되었다. 이와 같이 국악과 국악계의 정체성은 해방 후 역사·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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