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창조(創造)』의 실무자 김환(金煥)에 대한 고찰 = 對《創造》的實務負責人金煥的考察
저자
이사유 (인하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3-62(30쪽)
제공처
『창조』 는 1919년 2월 1일 창간되며, 그 당시 일본 유학생이었던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김환과 최승만이 함께 만든 최초의 순문예 동인지로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창조』는 주요한 멤버를 중심으로 연구되어 왔다.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의 작가연구는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으나, 대표 작가가 아니지만 『창조』의 초창기 멤버이자 실무자로 끝까지 『창조』를 뒤받치는 김환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근대문학과 문단의 형성 및 전개에 있어 문학작품 뿐만 아니라, 자본과 네트워크의 개입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창조』를 한 매체로 보고 그의 생산 과정을 주목할 때 김환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인물이다. 필자는 김환의 생애와 동인지 활동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창조』를 둘러싼 동인들, 그들 사이의 관계와 『창조』의 발간을 유지하기 위한 협력과 갈등을 분석하고, 문학작품 바깥에 있는 사소하고 잡다한 사건의 조각들을 모아 보다 온전한 『창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환은 1893년 2월 26일 출생, 본적은 평안남도 진남포다. 그의 생애를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가 일본유학 전에 오산학교의 교사로 평안북도 정주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18년 4월 쯤 그는 오산학교를 떠나고 바로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 동경 어떤 사립미술학교에 학적을 둔 그는 사실상 아오야마학원 근처에 하숙집을 잡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김환은 그 주변의 조선인 학생, 특히 아오야마학원의 유학생들과 가까이 지내며,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여 자신의 문화적 인맥을 형성하였다. 이 인맥은 3·1운동 이후 주요 동인들이 각지로 흩어진 상황에서 『창조』 발행 및 편집의 이중적 책임을 지게 된 김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일을 통하여 광익서관과 인연을 맺었음은 『창조』의 발간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한성도서주식회사와의 협력이나 주식회사창조사의 창립 등 여러 가지 경영 대책을 시도하였지만, 기대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창조』 폐간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 문단을 떠난 그는 흥사단에 참가하여 중국 북경에 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김환을 어떻게 평가하든지 간에 그는 『창조』 완전한 모습을 파악하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인물이다. 『창조』는 결코 김동인·주요한·전영택의 작품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실무자 김환이 없었다면, 그 시대 대다수의 동인지와 마찬가지로 단명의 운명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환의 노력으로 『창조』는 자족적, 폐쇄적 성격이 어느 정도 개선되기 때문에 다른 동인지보다 훨씬 더 길고 빛난 역사를 창조하였다.
『創造』于1919年2月1日創刊, 是由當時在日本留學的金東仁, 朱耀翰, 田榮澤, 金煥和崔承萬共同籌劃的純文學同人誌。『創造』的出現代表了韓國近代文學的成型, 在韓國近代文學史上具有非常重要的意義。一般關於『創造』的研究主要圍繞核心作家展開, 而忽略了對其他成員的考察。金煥雖然不是代表作家, 但他一直擔當同人誌的發行事務, 對『創造』的發展起到很大作用。本論文將以實證的方法盡量還原金煥的生平, 主要考察他在『創造』時期的活動, 以此來分析『創造』成員間的關係, 并詳細梳理『創造』的發展史。筆者希望通過對金煥的考察, 來發掘作品外不爲人知的人事和歷史, 由此可以更加全面的認識同人誌『創造』。
金煥于1893年2月26日出生, 原籍爲平安南道鎮南浦市。由於資料不足, 無法了解他成長的過程, 只能確認他曾經在平安北道定州的五山學校里任職。1918年4月他離開了五山學校去日本東京留學, 在東京某所私立美術學校學習美學。雖然不能確定學校的名稱和入學及畢業時間, 但是通過他寄宿的住處可以發現留學期間他主要在東京青山區附近活動。在那裡他和青山學院的朝鮮留學生們經常來往, 由此形成了他主要的人脈。正是這些人際關係在以後發行『創造』的過程中起到了關鍵性的作用。『創造』于1919年初創刊, 但緊接著爆發了三一運動, 在大部分成員都離開東京, 分散于各地的情況下, 金煥擔負起編輯和發行同人誌的重任。爲了堅持發行同人誌, 他充分利用自己的人脈, 通過李一的介紹獲得廣益書館的幫助, 後又與漢城圖書株式會社合作, 但因爲關係不和而決裂。他還組織策劃了株式會社創造社的籌辦。金煥不僅在經營同人誌上竭盡全力, 而且積極促進了新成員的加入, 有效緩解了原有成員發稿不足的問題。由於株式會社創造社最終無法成立, 『創造』成員的失落和對文學熱情的減弱導致了『創造』的停刊。在離開『創造』和朝鮮文壇之後, 金煥投身獨立運動, 在中國度過了下半生。
無論如何評價金煥, 都不應該忽視他在『創造』成員中的作用。如果沒有金煥的努力, 『創造』也許和當時其他的同人誌一樣, 早早就結束了自己的使命。那個時代的同人誌都具有自給自足的封閉性特征, 這也是導致同人誌曇花一現的根本原因。正是因爲金煥的存在, 『創造』才避免了這種封閉性, 才能夠在韓國近代文學史上留下更長的一段足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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