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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사 조병호와 갑오년의 경상도 상황 = The governer of Gyeongsang-do and the Critical Situatiom in 1894
저자
신영우 (충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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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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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81-138(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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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공처
The governer of Gyeongsang-do is Cho Byeong-ho(趙秉鎬, 1847-1910) who is newly appointed in April 25th, 1894. He got related by married to King as well as had a career of some of the ministers. He had strong political background because His older brother Cho Kyeong-Ho(趙慶鎬) was a member of the family of Heong-Sun Dae-won-gun(興宣大院君)’s son-in-law and King Ko-jong’s brother- in-law.
When Cho Byeong-Ho started for post, the uprising of the the Donghak Peasant Army had been occured at the Jeolla-do and Chungcheong-do. He was worried the possibility of spreading to Gyeongsang-do. In those days, numerous farmers joined the Donghak Peasant Army and it was out of government control in several county.
The first problem which new governer of Gyeongsang-do must solve is reaching a peaceful settlement of the uprising of the Donghak Peasant Army. He dealt strictly with the corrupted officers while investigated the cause of the uprising. Because of continuous bad years for the rice crop, farmers suffered from a famine. Farmers resisting plundering government found their expression in the uprising of the Donghak Peakant Army in Gyeongsang-do. After the summer of 1894, Gyeongsang-do circumstances was same as Chungcheong-do. The uprising farmers were under arms and infringed on government authority.
The urgent question was about the Japanese army in Gyeongsang-do. The Gyeongsang-do was helpless against the Japanese army. Japanese constructed supply bases and military telegraphs in number of areas in Gyeongsang-do for preparing the war against to Chinese. The Donghak Peasant Army started to be hostile to the Japanese army.
Cho Byeong-Ho had authority its’ people but not for the Japanese. Gyeongsang-do could not take measure against the world politics. Neither the news from the capital was idealistic nor the central government was collapsed. Gyeongsang-do had to comply with the demands of the Japanese army such as providing military supplies, gathering workmans, and exchanging currency.
The Donghak Peasant Army risen to the national emergency and attempted to driving out the Japanese army from Chosun. They regared theyself as the army in the cause of justice. Their first target was Japanese supply bases and military telegraphs. It was the way that they did not need to confront the Japanese army directly.
The state of Gyeongsang-do before 2nd uprising was the first place of farmers rising in revolt as well as organizing the Minbo-gun for controlling the Donghak Peasant Army. The Japanese army made the round and had first engaged in battle with the Donghak Peasant Army.
1894년 4월 25일 새로 임명된 경상감사는 조병호(趙秉鎬, 1847~1910)였다. 조병호는 이미 판서를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국왕인 고종의 사돈이었다. 형인 조경호(趙慶鎬)가 흥선대원군의 사위이면서 국왕 고종의 매부였다. 그는 강력한 배경을 갖고 있었다.
조병호가 부임한 시기는 전라도와 충청도의 동학농민군이 봉기해서 활동하던 때였다. 경상도에서도 그런 사태가 비화될 것을 우려하였다. 많은 농민들이 동학 조직에 들어가 여러 군현에서 동학도들을 관아가 통제할 수 없었다.
신임감사가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은 농민항쟁의 수습이었다. 조병호는 항쟁의 원인을 조사해서 부정한 관리를 처벌하였다. 정부는 경상도의 폐정개혁과 관련한 논의에서 심각한 흉년을 거론하고 있었다. 당시 연이은 흉년으로 인해 많은 농민들이 기근에 시달렸다. 경상도에서 벌어진 농민항쟁은 자연재해 속에서도 농민들을 수탈하는 지방관에 대한 항거로 나타났다.
다음에는 동학도들이 다수의 위력으로 관치질서를 무너뜨리는 사태를 막는 일이었다. 여름 이후 경상도의 사정도 충청도와 비슷하였다. 동학 조직이 무장을 하고 군현의 읍내와 관아를 점거할 기세였다.
이와 함께 경상도에 들어온 일본군을 대처해야 하는 일이 시급하였다. 경상도는 임란 이후 일본의 재침을 막기 위해 병영과 수영, 그리고 산성이 포진한 곳이었지만 갑오년에 마구 들어오는 일본군을 막을 무력이 없었다. 경복궁을 기습점령하고 동맹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본이 청과 전쟁을 위해 부산에 제5사단을 상륙시켜서 북상해왔다. 경상도 여러 지역에 일본군 병참부와 군용전신소가 설치되었고, 동학 조직이 일본군에게 적대하기 시작하였다. 감사로서 이 문제는 갑작스런 현안이 되었다.
경상감사 조병호는 탐관오리의 징치나 농민항쟁 수습 등 내정에는 감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일본군과 관련된 문제에는 대책이 없었다. 일본군 혼성제9여단이 경복궁을 기습점령해서 벌어진 비상사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정부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국왕은 인질 상태에 있었으나 위해를 당한 것도 아니었다. 내정간섭에 대한 소식은 속속 들어왔지만 정부는 전과 같이 경상감영의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더구나 동맹조약을 강제로 맺은 뒤에는 일본군에 협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경상감영은 군량과 말먹이 제공, 인부 모집, 조선화폐 교환 등 일본군의 요구에 응해야 했다.
나라가 위기에 직면하자 동학 조직이 가장 먼저 일본세력을 축출하려고 시도하였다. 무력을 통한 축출을 목표로 전쟁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여러 군현에서 봉기를 준비하면서 이들은 스스로를 의병이라고 생각하였다. 동학도들의 첫 번째 공세 대상은 경상도 지역에 설치된 일본군 병참부와 군용전신소였다. 전신주를 쓰러뜨리거나 전선은 단절하는 것은 직접 일본군과 마주치지 않고 공세를 취하는 방법이었다.
동학도들은 봉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지주들에게 강제로 돈과 곡식을 헌납 받았다. 그런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예천에서는 민보군과 충돌해서 커다란 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예천 인근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을 정탐하던 일본군 대위가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일본 히로시마대본영이 진압군 증파를 결정하게 된다.
2차봉기 이전의 갑오년 상황을 보면, 경상도의 동학농민군은 전라도의 2차봉기와 충청도의 기포령 이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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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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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urnal of Donghak Studies ->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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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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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 | 0.7 | 0.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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