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金錬漢 硏究 = A Study on Kim Jong-han(金錬漢)
저자
박호영 (한성대)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6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001.305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31-255(25쪽)
제공처
김종한은 1935년에 시를 통해 문단에 등장하면서 1944년 만 3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왕성한 문필 활동을 한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친일 행적과 원만하지 못한 성격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989년 후지이시 다카요(藤石貴代)에 의해 그에 대한 연구가 행해졌고, 2004년 오오무라 마쓰오(大村益夫)의 정년퇴임 강의는 윤동주와 김종한에 관한 것이었다. 2005년에는 방대한 그의 전집까지 간행되었다. 일본에서의 이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친일문인으로서의 그를 재평가하려는 인상이 짙다. 같은 친일 문인인 김용제를 일본이 외면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러면 과연 김종한은 어떤 인물인가? 친일문인이라는 평가에 무언가 문제점이 있는가? 그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그의 가장 뚜렷한 활동은 민요에 대한 경사이다. 민요를 직접 썼고, 민요에 대한 그 나름의 이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민요를 '新民謠'와 '土民民謠'로 구분했는데, 토민민요란 예부터 내려오는 민요를 일컫는다. 신민요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에 부응하는 민요이다. 그가 7·5조의 민요를 쓴 것은 재래의 3·4조, 4·4조를 탈피한 신민요의 시도였다. 그는 또 민요를 '읊을 민요'와 '노래할 민요'로 구분하였다. '노래할 민요'는 전래해 내려오는 민요를 말함이요. '읊을 민요'는 형식을 과감히 바꾼 민요로서 안서나 소월의 민요체의 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그 나름으로 생각하는 '신민요' 내지는 '읊을 민요'를 창작했다, 그러나 그의 민요는 너무 단순하고 형식적이어서 작품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의 다른 시인들의 작품과 견주어 볼 때 수준이 훨씬 떨어진다.
그가 시 창작 면에서는 실패하였지만, 시 이론 면에서는 해박하고 날카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지용과 백석의 시를 옹호하고, 김기림이나 이상의 시를 비판한 것은 확고한 그의 주관에 따른 것이었다. 그의 순수시론은 말라르메나 발레리의 순수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고 '寒山詩論’이다. 이것은 그의 고전에 대한 관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가 문학의 典範으로 삼은 일본의 고전 『萬葉集』이나 『古事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그가 시의 진수를 가장 잘 아는 시인으로 손꼽은 사또오 하루오(佐藤春夫)의 영향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의 순수시론은 일제 말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상에서 볼 때 그는 시인으로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시론가로서는 상당한 역할을 한 셈이다.
임종국은 그의 『친일문학론』에서 김종한을 친일문인으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이번 『김종한 전집』 편자 중의 한 사람인 마쓰오는 당시 상황을 생각할 때 그의 친일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옹호하였다. 또 『국민문학』에 발표한 그의 시 〈園丁〉의 '反歌'에서 '母'가 고향이요, 대지요, 조선을 뜻하기에 이 작품도 그런 쪽으로 해석을 내려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돌배나무에 능금의 어린 싹을 접목하려는 것을 그렇게 순수하게 볼 수가 없다. 다분히 일본으로의 문화의 이식 내지는 예속의 필요성을 은근히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반가'의 내용인 "어머니의 의향을 거역하면 너도 나도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의 함축적 의미를 생각할 때에도 '어머니'가 결코 고향이나 조국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가 민족이나 민속에 관심을 두고 조선인으로서 고민을 한 흔적이 시집 '후기' 깉은 데에서 엿보이지만, 그의 문학 활동 내지 사회 활동 전체를 살펴볼 때 그가 친일문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일본 쪽에서 보는 김종한과 우리 쪽에서 보는 김종한이 다른 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Kim Jong-han is a poet and critic, who made his debut as a poet in the late 1930's. He wrote many literary works energetically until 1944, the year he died. His writings have been classified into various literary genres: poetry, essay, criticism, translation, etc. Especially, he was interested in ballads, and his poems were recommended in the 'Munjang,'(文章) which was one of the most famous literary magazines. His poems, however, could not be praised as superior. He rather showed his ability in the poetic theories. He liked the pure poetry, which was not linked to Mallarme or Valery, but to Han-san(寒山) who was a poet in the Chinese Tang(唐) dynasty. Supposedly it might be so because of his concern about 'Man'yo-shu'(萬葉集) and 'Kojiki'(古事記), which are Japanese classic works.
The studies on Kim Jong-han have been rarely accomplished because of his pro-Japanese activities. He propagandized the compulsory military services for Japanese imperialism, praised the wars brought about by Japan, and took part in the Korean Literary Men's Association, a pro-Japanese club, as a secretary. Recently Japan scholars have studied on him and published his complete works, '金鐘漢 全集'. which was of large quantity. Especially Fujiishi Takayo, (藤石貴代) one of the editors of the complete works, already read a paper, 'On Kim Jong-han', in 1989. Also Omura Maso(大村益夫), an editor as like, gave a lecture on him at his retirement ceremony. He protected for Kim's pro-Japanese tendency. According to his assertion, Kim's attitude was beyond control. Probably Japan scholars have defended Kim because they thought Kim should be reevaluated. But the judgement which Kim was a pro-Japanese writer was correct if his literary and social activities were considered. I think that the different evaluations of Korean and Japanese critics have been caused by the different points of view of two 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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