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논문 : 상주지역 퇴계학파(退溪學派)의 학문과 사상 ;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철학과 경세론 = Ubok(愚伏) Chung Kyung-se(鄭經世)`s Philosophy and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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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151.05
등재정보
구)KCI등재(통합)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30(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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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 정경세(1563-1633)는 서애 류성룡의 수제자로서 퇴계의 再傳 제자에 속한다. 그는 상주 출신의 남인으로서 서애의 뒤를 이어 중앙정계에서 활발한 관직생활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높은 권위를 유지하며 17세기 초반 영남 학계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으로 국난이 지속되던 가장 어려운 시기에 관직생활을 하였다. 우복은 서애로부터 퇴계의 『주자서절요』를 물려받아서 간행함으로써 퇴계학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주자대전』 가운데 중요한 글을 선택하고 모아서 『주문작해』를 편저함으로써 『주자서절요』의 한계를 보완하고 주자학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우복은 학통상 퇴계학파에 속하는데 일부에서 그의 리가설은 율곡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언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존 『우복집』을 분석해보면 그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퇴계학파의 입장을 지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리기설에 있어서 리와 기의 일물설을 비판하고, 리와 기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격물과 물격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도 퇴계의 理到學을 계승하여, 格物을 손님을 청하는 것으로 物格을 손님이 오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사단칠정론에 있어서는 사단을 칠정의 일부로 보지 않고, 양자를 구분해서 보려는 입장이다. 칠정도 형기가 아니라 성명에서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성인의 경우에 가능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어렵다고 인식한다. 공부론에 있어서는 存養은 靜時의 공부만이 아니라, 靜時와 動時를 겸한 統體 공부라고 인식한다. 공부는 성인의 경서에 대한 세밀한 학문적 탐구의 과정을 거쳐서 높은 단계의 정신 경지를 지향해야지, 그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안 된다고 여겼다. 우복은 선조대부터 시작하여 광해군을 거쳐 인조대까지 벼슬을 하였다. 그 중 광해군 때에는 시련이 많았고 낙향하여 은거하기도 하였으나 인조대에는 중용되어 대제학·대사헌·이조판서 등의 고위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우복은 선조대부터 경연관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인조대에는 8년에 걸쳐 장기간 경연에서 경서를 강의하면서 국정을 논하는 기회를 가졌다. 우복의 경세론은 그가 올린 상소문과 경연강의를 통해서 살펴볼 수가 있다. 광해군에게 올린 상소를 보면 우복은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 왕실이) 절검을 해야 하고, 인재의 선발과 등용이 공정해야 하며, 군주의 일심을 바르게 하기 위한 수양과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인조가 반정에 성공하고 나서 올린 『弘文館 八條箚」에서는 ``큰 뜻을 세울 것``, ``성학에 힘쓸 것``, ``종통을 중시할 것``, ``효와 경을 다할 것``, ``간쟁을 받아들일 것``, ``보고 듣는 것을 올바른 계통을 통해서 할 것``, ``궁궐의 법도를 지킬 것``, ``백성들의 인심을 안정시킬 것`` 등을 건의하였다. 정묘호란을 겪고 나서 올린 『玉堂論時務箚』에서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총포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총포 사수 1만 명을 양성하고, 조총 1만 정을 구입할 것을 제안하였다. 우복은 예론에서는 명분과 실제를 조화시키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아동교육에 필요한 예절과 관련하여 『養正篇』을 편저하였으며, 고금의 상례를 모아서 『喪禮參考』를 지으려 했으나 완성하지 못했고, 禮記에 대한 연구가 포함된 『思問錄』을 저술하였다. 요컨대 우복은 17세기 초반 예학 및 성리학 발전에 기여한 학자이면서, 동시에 생리학적 철학과 경세론을 실천으로 옮긴 모법적 관료이자, 민본주의적인 경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인 학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퇴계학을 서인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등 학문적 교류와 소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더보기Ubok(愚伏) Chung Kyung-se(鄭經世, 1563-1633) was a prominent official and scholar in the middle Chosun Dynasty. He was a leading disciple of Ryu Sung-ryong, whose mentor was Toegye Lee Hwang. Ubok represented the scholarly and political position of Nam-in(南人, Southern faction)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philosophy and Politics of Ubok Chung Kyung-se. In Li(理)-Qi(氣) philosophy, Ubok basically follows the philosophical theory of Toegye. According to Ubok, Li can not be one thing with Qi. The metaphysical characteristic of Li is to be distinguished from the material nature of Qi. In regard to the meaning of Gyeokmul(格物) and Mulgyeok(物格), he explains it as follows. If one investigates the principles of things, the principles of things arrive at one`s mind. This can be compared to inviting a guest. If one invites a guest, then the guest comes. Ubok recognizes the active aspect of Li. Regarding the way of self cultivation, the specific course of classical study is an essential step to attain the noble spirituality of the sage. With regard to politics, Ubok thinks the self-cultivation of ruler is most basic and important for good government. Preserving ruler`s mind and scholarly learning are two essential ways to self cultivation. Besides self cultivation, he emphasizes the financial retrenchment and just personnel administration. In addition to Li-Qi philosophy, Ubok had much interest in the ritual. In line with Kim Jang-saeng, he had led the era of ritual study in the early 17th century. In the practice of ritual, Ubok pursued the harmony between ritual norms and current customs. Ubok communicated with scholars from opposite school. Through academic exchange with Seo-in (西人, Western faction) scholars. Ubok made an effort to understand the scholarly position of other school and to explain his school`s theory of New-Confucianism toward Seo-in. Ubok not only have developed Korean Neo-Confucianism, but also have played the exemplar role of Neo-Confucian 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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