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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글신문의 조선문화운동론 = Opinions of Chosun Culture Movement Seen by Dongailbo and Chosunilbo in 1930s.
저자
조규태 (한성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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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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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15-256(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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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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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930s, Dongailbo and Chosunilbo carried often articles about national culture. They introduced ‘Chosun culture’ in an editorial or articles. Occasionally they emphasized preservation of historical remains, which were connected with historical heroes of Korea. Sometimes they stressed on protecting picturesque places in Korea, for example Keum-gang Mountain. So they developed Chosun culture movement.
Writers of Dongailbo and Chosunilbo expressed their hopes of developing Chosun culture. But their thoughts about the methods of developing Chosun culture were not in accordance.
First group of them, who thought ‘Chosun culture’ as all Korean’s aggregate power, wanted to increase Korean’s power of all parts. They intended to increase all sides of Korean’s power.
Second group wanted to change traditional culture of Korea to the Occidental culture. Namely they unfolded new culture movement. They accentuated on freedom, independence, self-control, and vitality instead of dependence and laziness. The representative person of this group was Lee Gwang-soo. They succeeded to the cultural movement theory in 1920s.
Third group intended to develop traditional cultures and characteristic sprit of Korea. So they lay stress on ‘Dangoon’who was the founder of Old Chosun, and the science of Chosun. The representative persons of this group were Ahn Jae-hong and Moon Il-pyeong.
After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articles of Chosun culture were disappeared little by little. On the contrary, articles of national sprit come into view step by step. In this times, Dongailbo and Chosunilbo followed the tone of articles of Maeilshinbo.
1930년대 한글 신문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전시체제 하 조선총독부의 동화정책이 진행되던 상황에서 민족문화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양 신문은 조선과 조선민족의 실상을 파악하라고 역설하고, 조선문화의 발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두 신문의 기사의 내용과 논조는 동화정책의 강화와 전시체제의 공고화로 인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양 신문은 1930년대 초 이충무공ㆍ을지문덕ㆍ권율 등 위인의 유적보존에 관한 글과 조선의 정취, 민족정신, 조선의 독자성에 관한 글, 그리고 조선의 사상과 학문에 관한 글을 자주 소개하였다. 이를 통하여 양 신문은 조선의 정신을 고취하고, 조선의 역사와 사상의 계승을 강조함으로써 조선의 문화를 유지 혹은 발전시키려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에는 조선문화에 관한 기사의 내용이 변하였다. 위인과 관련된 유적의 보존에 관한 사설이 점차 사라지고, 대신에 勝景과 국토의 보존에 관한 글이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또 1937년 이후에는 민족주의와 민족정신에 관한 사설을 대신하여 국민주의와 국민정신에 관한 글이 다수 실렸다.
두 신문의 사설에 소개된 조선문화 관련 기사의 내용이 이렇게 변화를 보인 것은 1930년대 초 우가키 총독이 ‘內鮮融和’의 정책에 따라 조선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어느 정도 용인한 데 반하여, 1936년에 부임한 미나미 총독이 內鮮一體의 정책으로 동화정책을 강화한 것과 관련이 깊었다. 또 1937 중일전쟁 이후 국민총동원체제가 강화됨에 따라 조선인에게 忠良한 일본 臣民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강요한 데에 영향을 받았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사설에 보이는 조선문화운동론은 사상적 기저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민족의 실력양성을 주장하는 민족문화발전론이고, 둘째는 서구의 근대문화 수립을 지향하는 신문화건설론이다. 그리고 셋째는 우리 민족문화의 독특성을 찾아 이것의 계승을 주장하는 전통문화계승론이고, 넷째는 일본국민으로서의 도덕을 발흥할 것을 요구하는 국민정신작흥론이다.
민족문화발전론은 1920년대 실력양성론의 주장을 계승한 것으로 이광수로 대표되는 이른바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주장한 이론이었다. 이 운동론의 입장을 지지한 논자들은 현재는 민족경쟁의 시대인 만큼 저급한 수준의 우리의 민족문화를 발전시켜 민족의 번영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족 모두가 각기 문화적 역량을 발전시키고, 특히 지식인과 유산자를 중심으로 한 중심세력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하였다.
신문화건설론은 서구의 자율적 합리적 사상에 입각하여 조선의 사상과 문화를 혁신하여 서구의 근대문화를 수립할 것을 주장한 이론이다. 이는 1920년대 자유주의적 문화운동론을 주장한 민족주의 우파의 견해를 계승한 이론이다.
전통문화계승론은 우리의 역사에서 독특한 민족정신과 전통을 찾아 이것을 계승할 것을 주장한 이론이다. 이 이론을 주장한 사람들은 조선 말과 조선 글의 사용을 주장하였고, 조선학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이 이론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다.
국민정신작흥론은 1936년 미나미 총독이 부임하여 내선일체론에 입각하여 황민화정책을 강화하고, 국민정신총동원운동에 따라 국민정신작흥을 강요함에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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