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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세 군키(軍記)에 드러난 지역의식의 표상화에 대한 고찰: 관서무사의 인식을 중심으로 = A Study of the Expression of Regional Consciousness in the Medieval Japan Kunki: Perception of the Kansai Bu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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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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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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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14(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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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discussing the history of Japan, it would be extremely difficult to not mention the military. In particular, it can be seen that in the history spanning several hundred years from the end of the Heian period, which type of literature was at the center of the history to the moment when the Edo Bakufu was established. Therefore, although various studies have been conducted, it is not enough to study the Japanese Bushi in the early period when the Bushi class emerged. In this article, I look at various works with a focus on Heike Monogatari, which is a representative work of Gunki Monogatari, to see how the Bushi in the Kansai area are depicted. In particular, I examine the recognition of honor and the view of life and death.
The images of these early Japanese Bushi described in Gunki Monogatari show that there are two characteristics. One is that they think that they can achieve “honor” as a Bushi through service to the imperial family centered on the court. Unlike the Kanto Bushi, the Bushi in the Kansai region recognized the court and imperial family as most important, rather than just praising their exploits as Bushi. On the other hand, the Kanto Bushi tended to emphasize their own power and personal ability rather than absolute loyalty to the throne. Therefore, the Kanto Bushi are sometimes portrayed in works as having more pride in their own exploits than in the prestige of serving royalty.
The second characteristic is the appearance of death, which is closely related to Buddhism, a religion widely impacting the area where the Kansai Bushi were. Impressed by the teachings of Buddhism, the Kansai Bushi tried to reduce their posthumous punishment by receiving the commandments of Buddhism, cutting their hair, and receiving ordinations before they died. In addition, they tried to chant a Buddhist prayer at the moment of death or try to be saved through the act of jumping into the water when they died. On the other hand, in the case of the Kanto Bushi, it was more important to keep their own honor as a warrior. In other words, it can be said that it was a more unfortunate death that ended the life on the battlefield than to be seized by the enemy. Therefore, there is no religious representation of these people, and only the values shared by the Kanto Bushi can be seen as being revealed by the Katarite.
As a result, it can be inferred that the cause of the two tendencies represented by the characteristics of the above mentioned local Bushi is that the difference in the environment in which the Bushi in each area resided was most influential. It can also be assumed that the patterns of the Bushi of the two provinces derived from these environmental differences are represented in the works of the person at the time, the Katarite. This finding reflects the appearance of the Bushi in each area, and it can be said that there is a clear difference between the Bushi according to the area where they were from.
일본의 역사를 논할 때에 무(武)를 제외하고 논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특히나 문(文)의 역사가 중심이 되어 진행된 헤이안(平安) 시대의 말기부터 근세 에도(江戸) 막부가 설립되는 그 순간까지 몇 백 년에 걸친 역사는 무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선행 연구자들에 의해서 여러 가지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무사 계급이 출현한 초기 시기의 일본 무사들에 대해서 연구한 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파악하였다. 그렇기에 본고에서는 군키 모노가타리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를 중심에 두고, 여러 작품을 살펴봄으로서 작품 내에서 관서(関西) 지방의 무사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그들 관서 지방의 무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명예에 대한 인식과 사생관에 대한 표상을 고찰해보았다.
군키 모노가타리에서 그려진 이들 초기 일본 무사들의 표상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그들이 조정을 중심에 두고 황실에 대한 봉공을 통해 무사로서의 ‘이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관서 지방의 무사들은 관동 무사들과 다르게 무사로서의 무공만을 칭송하기보다, 조정과 황실을 가장 중요한 존재로서 인식했다. 반면 관동 무사들의 경우에는 조정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보다는 스스로의 무력과 개인적 역량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때로는 이들 관동 무사들의 경우 조정의 위명보다는 스스로의 무명에 더욱 자부심을 가지는 것으로 작품 내에 표상화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특성은 당시의 관서 무사들이 활동하고 있었던 지역에 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죽음 방식이다. 불교의 가르침에 깊게 영향을 받은 관서 무사들은 죽기 전에 수계를 받거나, 머리를 깎고 법명을 받는 행위를 통해 사후의 벌을 가볍게 하려고 했다. 거기에 더해서 그들은 죽음의 순간에 염불을 외우고 구원을 받으려 하거나, 죽을 때에 스스로 물에 뛰어드는 행위를 통해 입수왕생을 이루려고 했다. 반면 관동 무사들의 경우에는 그들 고유의 무사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즉, 적에게 사로잡혀 수치를 당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더욱 무사다운 죽음이라고 여겼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그들에게는 종교적인 어떠한 표상은 존재하지 않았고, 관동 무사들이 공유했던 가치관만이 가타리테(語り手)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상기 언급한 관서 지방 무사들의 특징으로 표상화된 두 가지 성향의 발생 원인은 각 지역의 무사들이 처해 있었던 환경의 차이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적 차이점으로 인해 파생된 두 지방의 무사들의 양상이, 당대의 인물인 가타리테에 의해 작품 내에서 표상화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각 지역의 무사들이 보이는 양상을 반영한 것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었던 지역에 따른 무사들의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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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10-20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일본연구센터 -> 글로벌일본연구원영문명 : Center for Japanese Studies in Korea University -> Global 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6-01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일본학연구센터 -> 일본연구센터영문명 : Research Center of Japanese Studies in Korea University -> Center for Japanese Studies in Korea University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06-04-10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일본학연구소 -> 일본학연구센터영문명 : Research Center of Japanese Studies, Korea University -> Research Center of Japanese Studies in Korea University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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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8 | 0.58 | 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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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 | 0.39 | 0.778 | 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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